‘선거제도가 우리 삶을 좌우 합니다’
‘선거제도가 우리 삶을 좌우 합니다’
  • 하승수(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 승인 2016.08.2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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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논의 보다 선거제도를 포함한 정치시스템을 바꿔야 삶이 개선된다
[특별기고] 하승수(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얼마 전 스웨덴 최초로 27세에 장관(고등교육 및 성인교육 담당 장관)이 된 사람이 음주운전 단속에 걸려 2년 만에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됐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그는 무슬림 출신이고 여성이었다.

이 기사를 보면서 ‘음주운전’ 사실보다 관심을 끌었던 것은 27살 여성이 장관이 될 수 있는 스웨덴의 정치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아이다 하드지알릭(Aida Hadzialic)이라는 이 여성에 대해 찾아보았다. 그녀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태어났고, 5살에 내전을 피해 스웨덴으로 이주한 이민자 출신이었다.

그녀는 16세에 스웨덴 사회민주당에 입당했고, 대학을 졸업한 후 23살에 할름스타드(Halmstad)라는 도시의 부시장으로 일했다. 그리고 27살에 장관이 된 것이다. 그녀는 권력자에 의해 발탁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활동을 통해 검증된 역량으로 장관이 되었고, 음주운전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장관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고 한다.

현재 스웨덴이라는 국가를 운영하고 있는 사회민주당-녹색당의 연립내각에는 1983년생 장관도 있다. 녹색당 소속의 구스타프 프리돌린(Gustav Fridolin)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1994년 11세의 나이에 스웨덴 녹색당에 입당했고, 녹색당 청년조직에서 활동하다 2002년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리고 2011년에는 녹색당 공동대표가 되었고, 2014년 총선 후에 구성된 연립내각에서 교육부장관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어떤가? 지난 4.13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을 보면 ‘청년’이라고 할 수 있는 국회의원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중에는 ‘청년’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있지만, 모두 ‘발탁’된 케이스이다. 스웨덴처럼 정당 활동을 통해 검증된 청년이 자력으로 비례대표 공천을 받은 경우는 없다.

스웨덴과 대한민국의 차이를 낳는 원인은 정치제도에 있다. 스웨덴의 경우에는 청소년들도 정당에 가입을 하고 활동한다. 그래서 10대 때부터 정치적 경험을 쌓고 20대에는 선거에 출마하거나 공직을 맡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웨덴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국회의석이 배분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다. 그래서 돈이 많거나 타고난 ‘수저’가 좋지 않더라도, 정당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역량을 쌓으면 정당내부의 민주적 절차를 거쳐 후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따라 국회의원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선거제도는 정체성이 분명한 정당들이 정책으로 경쟁하는 구조를 만든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자신의 가치에 맞는 정당을 통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그래서 스웨덴에서는 20대 장관, 19세 국회의원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선거제도의 차이는 단지 정치의 차이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스웨덴 같은 선거제도를 가진 나라가 더 평등하고 지금의 시대적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부러워하는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네덜란드, 독일 등의 국가들은 나라마다 구체적인 선거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스웨덴과 비슷한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다.

‘헬조선’의 원인은 선거제도?

한편 ‘헬조선’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대한민국의 선거제도 탓으로 볼 수도 있다. 흔히 대한민국을 두고 1 대 99의 사회라고 한다. 상위 1%가 정치, 경제, 사회적 힘을 쥐고 있고, 99%의 삶은 팍팍하고 소외돼 있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으로는 1%가 압도적 부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왜 정치적으로까지 1%가 지배해야 하나? 대기업 주식은 재벌 회장이 많이 갖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1주도 없다고 하더라도, 선거에서는 재벌 회장이든 비정규직 노동자든 모두 1표를 갖고 있지 않나? 그런데 왜 정치적 힘에서도 평등하지 않을까?

“돈이 정치를 지배하니까 그렇지”라고 얘기하고 끝내지는 말자. 서양의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부유한 남성들에게만 투표권이 인정되었다. 그때라면, “돈이 정치를 지배하니까 선거해봐야 소용없어”라는 얘기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가난한 사람과 여성에게도 투표권이 인정되었다. 그런데도 왜 정치가 상위 1%의 이익을 위해 좌우될까? 이 의문을 푸는 것이 바로 한국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는 길이다.

역시 비밀은 선거제도에 있다. 한국의 선거제도는 1인 1표제임에도 불구하고 상위 1%의 지배체제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이다.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지역구에서 1등을 해야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지역구에서 1등을 하려면 거대정당의 공천을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연줄도 있고 스펙도 있고 돈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무나 될 수 없는 선거제도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20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직업통계를 찾아보았다. 253명의 지역구 당선자들이 쓴 직업 중에 농민은 한 사람도 없었다. ‘회사원’으로 표시한 사람은 두 사람에 불과했다.

실제로 1000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국회 안에서 찾아보기가 어렵고, 250만 농민도 마찬가지다. 세입자, 소규모 자영업자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이 거대정당에 들어가 당선 가능한 지역구에서 공천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47명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통해 약간의 보완이 이뤄지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 대한민국 국회의 구성은 ‘서민’과는 거리가 멀다. 뿐만 아니다. 국회의원 평균 재산이 41억원에 달한다. 이런 식의 국회에서 불평등을 완화하고 약자들의 입장에 서는 정책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성 비율도 10%를 약간 넘는 수준이다. 대한민국의 국회에서 성평등 이슈가 제대로 논의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역구에서 1등을 해야 하는 선거제도는 거대한 기득권 정당을 낳게 되고, 그것은 결국 사회경제적 약자를 배제하는 정치구조를 만든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것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스웨덴이 부럽다면?

스웨덴이 현재와 같은 선거제도를 만든 것은 20세기 초반의 일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선거제도를 통해 1920년대에 스웨덴에서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사회민주당)이 국회에서 몇 석을 얻는 정도가 아니라 국회의 제1당이 되었다. 스펙, 연줄, 돈이 없던 노동자들이지만, 스스로 만든 정당을 통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1925년부터 사민당 당수였던 페르 알빈 한손은 가난한 노동자 가정 출신에 제도교육을 4년밖에 받지 못했지만, 14년간 총리를 지내며 복지국가의 기초를 닦았다. 지금도 스웨덴 총리는 고졸 용접공 출신의 ‘스테판 뢰벤’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핵심적 차이는 바로 선거제도에 있다. 스웨덴식 복지국가는 스웨덴식 선거제도의 산물이다. 그래서 스웨덴의 복지가 부럽다면, 스웨덴의 선거제도를 배워야 한다.

꼭 계급, 계층적인 이해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면서 많은 시민들은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런데 기후변화 문제가 정치에서 제대로 토론되는 나라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거제도로 택하고 있는 국가이다. 녹색당과 같은 정당이 의회에 진입해 있기 때문이다.

소수자 인권, 동물복지 등의 의제들이 제대로 다뤄지는 국가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국가들이다. 다양성이 인정되는 정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세계에서 동성결혼 법제화가 가장 먼저 이뤄진 국가는 네덜란드이다. 네덜란드는 정당 득표율이 0.67%를 넘으면 국회 의석 1석이 배분되는 철저한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다. 네덜란드 국회에는 11개의 원내 정당이 존재하고, ‘동물을 위한 정당(Party for Animals)’도 2석을 가질 정도로 다양한 정당들이 제도권에 진출해 있다. 이런 선거제도가 국토 면적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를 높은 ‘삶의 질’을 누리는 나라로 만든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배우자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비교적 최근에 선거제도를 전면적으로 바꾼 뉴질랜드 같은 사례도 있다. 뉴질랜드는 지역구에서 1등을 해야만 국회의원이 되는 소선거구제를 택하고 있다가 1993년에 국민투표를 거쳐 독일과 유사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바꿨다. 그 결과 두 거대정당이 지배하던 뉴질랜드의 정치는 다양한 정당들이 경쟁하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선거제도의 변화는 실질적인 삶의 변화로도 이어졌다. 정책차이가 별로 없던 두 거대정당들은 1980년대에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밀어붙였다. 그런데 선거제도가 바뀐 이후에는, 다양한 정당들이 경쟁하는 구조가 되면서 민영화 정책이 중단되고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지는 변화가 일어났다. 최저임금이 오르고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가 단행되었으며, 공공임대주택이 개선되었다.

뉴질랜드가 이렇게 선거제도를 바꾸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뉴질랜드 녹색당과 같은 소수정당 당원들,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알려 나갔

다. 정파를 초월한 시민단체인 ‘선거제도 개혁 시민연합(ERC, The Electoral Reform Coalition)’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져서 전국적인 캠페인을 벌여나갔다. 국회 내의 개혁적인 정치인들도 이런 움직임에 호응했다.

▲하승수(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어떻게 보면, 지금 대한민국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움직임일지도 모른다. 최근 여야의 주요 정치인들이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지만, 세계의 역사를 보면, 진정한 정치 변화는 헌법 개정이 아니라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이뤄졌다. 1987년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헌법 개정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헬조선’으로 전락한 이유는 선거제도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선거제도를 포함한 정치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정치를 바꾸고, 우리 삶을 바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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