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물 먹이려고, 우릴 물 먹이나!”
“누구를 물 먹이려고, 우릴 물 먹이나!”
  • 권영창 (안동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영창필름 대표)
  • 승인 2016.08.30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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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댐 취수량 늘리고, 길안천 취수공사 당장 중단해야
수자원공사 교만함에 시민이 나서야한다
[특별기고] 권영창 (안동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영창필름 대표)

덥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덥다. 내리쬐는 햇볕이 얼마나 강한지 집에 가만히 누워 있어도 금세 이마엔 땀방울이 맺힌다. 에어컨이라도 빵빵하게 틀면 좋으련만 전기세 걱정에 그마저도 겁이 난다. 시원한 물에 풍덩 뛰어들어 물장구라도 치고 싶어서 남들 다 가는 워터파크나 가까운 영덕 바다를 찾고 싶지만 비용이나 거리가 부담이다. 이럴 때면 항상 나의 무의식 속에서 ‘길안베이’ 라는 단어가 파밧! 하고 스쳐간다. ‘길안천’과 워터파크 ‘캐리비안 베이’의 합성어로서 안동 인근의 젊은 시민들이 ‘물놀이 장소로서의 길안천’을 칭할 때 애용하는 용어이다. 이 단어를 통해 길안천이 시민들에게 물놀이 장소로서 큰 역할을 해왔음을 엿볼 수 있다.

길안천은 안동시민들이 매년 혹서기마다 가족 또는 친구들과 부담 없이 피서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물이 맑고 시원한 것은 물론이고 주변이 온통 푸른 나무와 풀들에 둘러싸여 있어 언제나 공기도 상쾌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물놀이를 하다가 지쳐갈 때 쯤, 큰 물안경을 쓰고 강바닥을 쓱 훑으면 돌멩이와 바위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부리(다슬기)를 쉽게 볼 수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줍다 보면 한 바가지는 금방 채울 수가 있는데, 일단 집에 들고 가면 늦은 귀가로 예약된 어머니의 잔소리가 사랑의 골부리국으로 바뀌어 돌아오는 따뜻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길안천은 점점 죽음의 하천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다. 언젠가부터 피서를 위해 길안천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그곳에는 더 이상 물놀이를 할 만한 물이 없다. 물의 양이 줄어들어 수심이 많이 얕아지고, 물의 흐름도 느려졌다. 때문에 수중엔 시퍼런 녹조가, 수면엔 보기만 해도 흉측한 이끼들이 한 가득 떠다닌다. 자연스레 하류로 떠내려가야 할 버드나무들도 이때다 싶어 뿌리를 박은 탓에 육지화가 제법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사람들도 들어가기 꺼려지는 물에 골부리가 예전처럼 마음 놓고 살 리 만무하다. 생명의 하천이었던 길안천이 이렇게 황폐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성덕댐 건설 이후 길안천으로 합류하는 물의 양이 현저하게 줄어든 까닭이다. 성덕댐은 경북 청송군 안덕면에 위치한 다목적댐으로 길안천과 합수하는 보현천의 물길을 틀어막고 있다. 이 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경산·영천으로의 안정적 용수공급에 있다. 이는 실제로 성덕다목적댐 건설사업의 제1목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한국수자원공사(이하 수공)는 이미 오래전부터 길안천의 물을 취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이 계획에 안동시민들이 크게 반발하자 나름의 대안으로서 성덕댐을 지은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목적으로 기껏 댐을 만들어 놓고선 정작 이곳에서는 물을 긷지 않고 있다. 수공이 경산·영천으로 보내는 물을 길안천에서 취수하겠다는 계획을 다시 실행했기 때문이다. 이미 2015년 9월부터 길안면 송사1리, 절경이 빼어난 천지갑산 절벽 바로 앞에서 취수공사가 이루어지고 있고 현재 40%정도 공사가 진행되었다.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둘러싸인 길안천에 돌연 등장한 포크레인과 덤프트럭, 콘크리트 구조물과 철근더미들은 흉악해보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수공은 왜 성덕댐 본댐에서의 직접취수는 제쳐두고 굳이 댐의 30km 하류에 있는 길안면 송사리에서의 취수를 고집하는 하는 것일까? 심지어 성덕댐 직접취수보다 사업비용이 9억 원이나 더 소요되는데도 말이다. 이에 대해 수공은 표면상 ‘댐 직접취수에 대한 청송군민들의 반대’, ‘성덕댐의 취수량 불충분’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사실 길안천 1급수 맑은 물에 대한 수공의 수리권 확보가 주된 이유다. 자연하천인 길안천은 관습적으로 그 소재지인 안동시와 안동시민에게 수리권이 있다. 그러나 수공은 안덕면 쯤에서 합류되는 길안천의 물도 수공이 관리하는 성덕댐에서 내려 보낸 것이기 때문에 길안천의 수리권이 수공에 있다며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어찌 보면 성덕댐의 건설도 결국 길안천 취수를 위한 결정적 ‘꼼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길안천 취수반대의 이유는 명확하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안동시민들이 맑은 물을 마실 수 있는 수리권 확보다. 안동시는 안동댐과 임하댐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물이 풍부한 지역이다. 그러나 정작 안동댐과 임하댐의 물 모두 식수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안동댐은 상류지역인 봉화의 폐광과 석포제련소에서 떠내려 온 중금속 찌꺼기 5만여 톤이 상시적으로 가라앉아 있고, 임하댐은 장마철이 지나면 무려 5개월 동안이나 탁수 상태로 있다. 안동시민들이 마시는 식수는 용상동 안동고등학교 앞 반변천 유역에서 취수되는데, 이 물은 임하댐과 길안천의 물이 합수된 것이다. 그나마 길안천의 맑은 물이 섞여 있기 때문에 식수로서의 역할을 겨우 해내고 있다. 그런데 수공에서 길안천 맑은 물을 취수해 경산과 영천으로 보내게 된다면 결국 안동시민들은 더러운 임하댐 흙탕물을 식수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길안천 취수공사를 반대하는 두 번째 이유는 취수공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수공은 이미 1989년 길안댐 건설계획부터 지난하게 길안천과 안동시민들을 괴롭혀왔다. 하지만 그렇게 긴 시간만큼 안동시민들도 끈질기게 버티어 왔다. 길안댐 건설과 같이 초기 이슈들은 주로 김휘동 전 안동군수를 비롯한 지역정치인들의 뚝심으로 십 수년을 버텨왔고, 비교적 최근인 2012년과 그 이듬해까지 논란이 된 한밤보 건설 문제에는 3만 5천여 명 이상의 시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길안천을 지켜냈다. 수공이 성덕댐을 짓고 본격적으로 길안천 취수공사를 시작한 이후로는 수십 명의 시민들이 매일 아침 출근길에 1인 시위를 하고 길안천 취수반대 시민결의대회를 가지는 등 적극적인 반대운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민들의 반대운동에도 수공은 시민들의 의사를 진지하게 듣고자 하는 노력도 없이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길안천 취수공사가 곧 안동의 사드(THAAD)이자 강정기지요, 765kV 송전탑인 셈이다.

취수공사가 이렇게까지 진행된 데에는 지역 정치인들의 반성이 불가피하다. 물론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지역 정치인들이 시민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며 함께 싸워주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필드를 누비며 길안천 취수 반대의 운동을 함께하는 정치인들도 몇몇 있다. 그러나 흔히 안동지역의 기득정치권으로 여겨지는 국회의원과 시장 이하 여당 소속 지방의회 의원들은 언제부턴가 길안천에 대한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다. 2014년 9월, 다섯 명의 안동시 시의원들이 구성한 ‘성덕댐 용수 길안천 취수반대특별위원회’는 초기에 만장일치로 의회의 반대의사를 이끌어 내 큰 힘이 되는가 싶더니, 2015년에 돌연 수자원공사와 길안천 취수와 관련한 공동 협약서를 체결하고 같은 해 9월에는 안동시에 취수를 허가하라고 통보했다. 그간 길안천 취수 반대에 뜻을 함께했던 지역 의원들이 2014년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시민들의 뒤통수를 친 것이다.

이에 반발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이러한 기세에 권영세 안동시장은 2015년 12월 14일, ‘시민단체가 추천하는 환경연구기관의 연구결과에 따라 취수공사를 재검토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공사중지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2016년 7월 5일, 수공은 경상북도로부터 취수공사 중지명령이 부당하다는 행정심판을 받아내고, 권영세 안동시장은 시민들의 요구와는 반대로 길안천 취수를 승인하는 바람에 취수공사는 계속 진행하게 되었다. 대의정치의 진면목을 보여주어야 할 지역 정치인들의 무능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길안천 취수에 대한 환경영향 연구결과가 나올 때까지 취수공사를 중지토록 하여 종전의 발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함이 마땅하다.

혹자들은 ‘경산과 영천에 물이 부족하면 좀 나누어 줄 수도 있지 않느냐?’, ‘물은 어차피 공공재인데 너무 지역이기주의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냐?’, ‘이것도 결국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냐?’하고

►권영창 (안동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영창필름 대표)

반문할 수 있다. 물론 대안은 있다. 간단하다. 임하댐의 취수량을 늘리는 것이다. 이미 임하댐에서는 영천댐으로 매일 40만 톤 이상의 용수를 전달해주고 있다. 그런데 수공에서 계획하는 길안천 하루 취수량은 임하댐 전달분의 1/10수준인 약 42,000톤 밖에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임하댐에서 영천댐으로 전달하는 취수량 조절만 잘해도 안동과 경산·영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취수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은 인간이 최소한의 생명력을 이어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그만큼 인간이 물을 마시고 소비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존중받아야 할 고귀한 가치다. 국책사업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을 감싸서 물의 ‘생존가치’를 ‘화폐가치’로 둔갑시키는 한국수자원공사의 교만함에 우리는 과연 언제까지 남의 일 마냥 무관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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