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령이씨 석계 종택 세 가지 보물,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
재령이씨 석계 종택 세 가지 보물,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
  • 편집부
  • 승인 2017.10.2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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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인 안동장씨와 관련된 전가보첩, 학발첩, 동경 등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이용두)은 10월 26일 영양 두들마을의 재령이씨 석계종택이 400년 넘도록 가보로 전해오던 보물급 자료 3점을 기탁했다고 밝혔다.

기탁한 보물급 자료는 ‘전가보첩’, ‘학발첩’, ‘동경’으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어머니의 전형으로, 현존 최고(最古)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을 남긴 정부인 안동 장씨와 관련된 유물이다.

►정부인 안동장씨가 사용하던 구리 거울(동경)

동경은 정부인 안동장씨가 손수 사용하던 유품으로 일명 ‘수복동경’이라 불린다. 거울의 뒷면 가운데 길상을 뜻하는 ‘목숨 수(壽)’ 자와 ‘복 복(福)’가 돋음 양식으로 새겨져 있다. 수복 글자를 중심으로 사방에는 학, 거북, 두루마리 등의 표상적 요소의 정교한 물상이 배치되어 있다. 자루가 달린 병경(柄鏡) 형태로 뛰어난 당시의 공예기술을 보여준다. 정부인 안동장씨는 평소 이 거울을 보며 마음을 다스리면서 청정한 삶을 지향했다고 한다. 생전에도 부덕과 현모양처의 상징으로 존경받은 ‘여중군자’ 장계향. 그의 마음과 연결된 듯한 구리거울은 분명 생활용구인 화장구로서의 기능을 넘어, 문화유산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시, 글씨, 자수의 삼절로 일컬어지는 《전가보첩》

전가보첩은 이름 그대로 집안에 대대로 전하는 보배로운 수첩(繡帖)이란 뜻이다. 여덟 마리의 용과 구름이 수 놓여져 있기 때문에 ‘팔용수첩’이라 불리기도 한다. 정부인 안동장씨가 열 살 무렵에 성현을 흠모하며 쓴 ‘성인음’과 빗소리를 듣고 표현한 ‘소소음’ 두 시가 자수로 아로 새겨져 있다. 이 두 편의 시는 정부인 안동장씨의 문예적인 수준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표적 작품. 그런데 이 시를 남편인 석계 이시명(1590∼1674)이 새로이 글씨를 쓰고, 둘째 며느리 무안박씨가 그 위에 푸른 깁을 덮어 수를 놓은 뒤, 다시 아래위로 석계공과 일곱 아들을 상징하는 여덟 마리 용과 구름을 수놓았다. 바늘 한 땀 한 땀의 섬세한 정성이 시와 글씨와 조화를 이루어 무한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정부인 안동장씨의 친필 초서로 쓰여진《학발첩》

학발첩에는 정부인 안동장씨 (1598~1680)의 대표적인 시작품인 ‘학발시’가 호쾌한 초서로 쓰여져 있다. 백발의 노모가 군역으로 멀리 떠난 자식을 그리워하는 안타까움이 절절히 담겨있는 시다. 시인으로서 천부적 재능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양민들의 고뇌와 슬픔, 좌절과 분노가 시속에 은근히 드러나 있다. 글씨도 정부인 안동장씨의 친필인데 서체의 맑은 기풍과 굳센 필세가 호기롭고 굵직하다. 당대 서예의 대가였던 정윤목(1571~1629)은 이 글씨를 보고 기풍과 필체가 활달하여 우리나라 사람의 글씨와는 다르다고 극찬했다. 조선시대 여성의 글씨가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 시첩은 매우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세 유물은 현재 문화재 지정대상으로 선정되어 지정예고 절차를 거쳐 문화재로 확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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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주 2017-10-28 20:50:02
조선 중기에 활동한 여성들의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귀중한 유물은 더욱 희귀합니다. 정부인 장씨의 다른 유물은 알수가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