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선적인 폭군을 물리친 삼태사를 배우자’
‘독선적인 폭군을 물리친 삼태사를 배우자’
  • 김수형(경북기록문화연구원 회원)
  • 승인 2018.05.3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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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선거에서 찾아야 할 안동 정신문화의 정수는 무엇인가?

안동 정신문화의 핵심은 어디에서 잡아야할 것인가? 필자는 퇴계선생에서 안동 정신의 핵심을 잡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물론 퇴계선생은 위대한 학자이며 아주 인간적인 분으로 존경하고 본받아야하며 선생의 학문과 생활을 배우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퇴계선생을 통해 안동 전체를 볼 수 있을까? 퇴계선생 이전의 역동선생, 이후의 의병과 독립운동을 모두 연결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고 본다. 퇴계선생보다 안동의 정신은 삼태사에게서 찾으면 어떻게 될까?

929년 12월 고창 전투는 고려 건국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였다. 이 전투로 안동이 역사의 무대에 제대로 등장을 하게 된다. 이 전투의 의의는 어떤 것일까? 위기에 몰려 죽음을 앞둔 왕건이 대역전을 하면서 절대자가 되는 순간이 바로 이 고창전투이다. 만약 왕건이 이 전투에서 졌다면 그는 역적으로 역사에 평가되었을 것이며 견훤이 최종승자가 되었을 것이다. 즉 역적으로 죽을 사람을 절대자로 만들어 준 것이 안동의 삼태사이다. 그런데 이는 좀 더 깊이 살필 필요가 있다.

중략하고 927년 견훤은 경주로 진격해서 경애왕을 죽이고 경순왕을 즉위시킨다. 신라의 왕을 죽인 것으로 민심이 흉흉해진다. 왕건은 이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이끌고 공산(지금의 대구 팔공산)에서 견훤과 맞붙었으나 대패를 하고 신숭겸, 김락 등이 전사하였다. 겨우 왕건은 목숨을 건졌지만 전세는 완벽하게 견훤 쪽으로 기울었고 왕건의 재기는 힘들어보였다.

929년 7월 견훤은 5천여를 거느리고 의성부를 공격했고 왕건의 지지자였던 성주 홍술이 이때 전사한다. 견훤은 죽령을 봉쇄하고 고려군의 퇴로를 막은 상태에서 의성에서 고창(안동)으로 진격해왔다. 당시 고려군은 3,000명의 군사였다고 하는데 왕건의 고려군과 견훤의 후백제군이 서로 마주보며 진을 치고 대치하고 있을 때 안동의 삼태사가 군사를 이끌고 원군이 되어 나타나 대역전극을 이루었다.

이때 견훤의 후백제군은 8,00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러자 경상도 지역의 30여 개 군현과 명주(강릉)에서 흥례부(울산) 까지 110여 개의 성이 고려에 항복했다고 한다. 그리고 충청 일대에서도 30여개의 성이 고려의 지배하에 들어왔고 신라계를 비롯한 각 지역 호족들이 가세하여 왕건의 후삼국 통일의 기반을 만들게 된다. 반면 후백제는 고창 전투 패배 이후에 급격히 동력을 잃고 왕위 계승을 둘러싼 부자간의 갈등으로 패망의 길에 접어든다.

여기서 왜 안동의 삼태사와 안동 사람들은 왕건을 도왔을까? 대세는 견훤에게 있었지만 삼태사와 안동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를 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민심은 견훤을 떠났을지 모르나 그 위협적인 공포에 대항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미 왕건을 지지한 의성의 홍술의 죽음은 무엇이겠는가? 견훤에 반대하면 곧 죽음이라는 메시지가 전국으로 퍼지고 있었다. 당시 곳곳을 유린하며 살생을 일삼는 견훤군에게 대항하지 않고 협조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을 것 같은데 당시의 안동 사람들은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행동에 들어간다.

살아남기 위해 비루하게 목숨을 부지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민심에 따라 새로운 시대를 열고 혼란의 후삼국 시대를 종식하기 위해 강세의 견훤이 아닌 열세인 왕건 쪽에 서서 싸워준 것이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안동 인근, 또 강릉에서 울산까지 거기에 충청도 일부까지가 견훤을 버리고 안동을 따라 왕건의 고려 쪽으로 지지를 표시하면서 한 시대가 종식되었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이후 세월이 흘러 몰락하는 고려에서 새로운 사상인 성리학을 받아들여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는 것에도 또 임진왜란, 병자호란이라는 외세의 침략에도 매번 의병을 일으켜 나아가 싸우는 것도 1894년 갑오 의병 때에도 그러했다. 그들은 싸워 이기지 못할 것을 알았지만 당당히 나아가 싸우는 것을 선택한다. 그 흐름은 안동의 독립운동사로 연결이 된다. 이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외세 앞에 당당히 맞서 싸운 것이 안동의 독립운동이다.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불리는 안동의 핵심 사상은 무엇일까? 굳이 어렵게 성리학 구절을 말하는 것까지 갈 것도 없는 것 같다. 충효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절체절명의 왕건을 도와 구시대를 종식시키고 새시대를 연 삼태사와 그리고 공민왕의 몽진을 도와 나라를 지키고 성리학을 다시 받아들여 시대를 바꾸고 임란과 호란 그리고 구한말에 의병을 일으키고 결국 36년간 독립운동으로 나라를 되찾으려 했던 안동사람들의 정신은 무엇일까?

이는 아마도 약자의 고단함과 아픔을 알고 독선적인 폭군에게서 그들을 구하고 인본사상인 성리학을 받아들이고 하는 것이 안동의 삼태사 때부터 시작된 하나의 흐름이 아닐까한다.

6.13 선거를 앞두고 삼태사의 후예들이 안동에서 보여준 모습은 과거의 영광도 없고 현재의 당당함도 없고 미래를 여는 새로움도 없는 것 같다. 한분의 국회의원에 또 한분은 시장에 또 한분은 도의장의 자리에 있었다. 세분이 새로운 안동을 위해 보여준 모습에는 약자를 위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독선적이고 폭군 같은 기질이 너무나 잘 드러난 것 같다.

► 김수형(경북기록문화연구원 회원)

고령화, 저출산, 청년문제, 지방소멸, 남북관계와 대외정세 등으로 나라는 1,089년 전 929년 당시처럼 혼란스러운데 새로운 시대를 위해 안동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중앙이 시키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시키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를 보고 옆을 보고 뒤를 보고 힘들어 하는 사람을 도왔으면 한다. 어린 사람을 키우고 재능 있는 사람을 쓰고 재물은 모이게 하고 사람도 모이게 하고 그 큰 변화의 중심에 다시 안동이 섰으면 좋겠다. 그 변화의 훈장으로 받은 이름이 안동이며 그 훈장과 그 전통을 만든 분들이 삼태사이시다.

안동 6.13지방선거! 지금이라도 멋진 모습을 기대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위해 지역을 망치고 나라를 망치는 일은 안 했으면 한다. 다시 안동에서 변화가 일어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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