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에 대한 이견
유시민에 대한 이견
  • 김대호 소장
  • 승인 2009.06.1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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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제 민주주의> 서평 2
유시민의 견해에 결코 동의 할 수 없는 부분은 무엇보다도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이다. 유시민의 평가는 이렇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시대적 과제에 잘 대응했지만 정치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경제, 사회, 외교적) 제약조건을 극복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사회자유주의적 정책 패키지를 만들어가기에는 역량이 부족했다.’(p 343)

유시민은 참여정부가 시대적 과제에 잘 대응했다는 것은 정책의 기조를 사회자유주의로 잡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분명하다. 유시민이 말하는 사회자유주의적 정책의 골격은 이렇다.

참여정부는 국민의 정부보다 훨씬 더 뚜렷한 자유주의적 기조를 지니고 있었다.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 정경유착과 권언유착 등 권력 카르텔을 해체함으로써 헌법 규정에 부합하는 권력의 민주화와 분권화를 추진했다. 해묵은 권위주의 문화를 청산하는 동시에 기업에 대한 정치권력의 부당한 간섭과 자의적 개입을 극소화했다. 시장경제라는 국민경제의 기본질서를 확고하게 승인했고……한미FTA를 체결하는 등 자유무역확대에도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참여정부는 동시에 사회적 형평과 사회통합, 그리고 기회균등을 이루기 위한 국가 개입을 확대 강화했다. 과거사 진상 규명과 과거의 국가 범죄에 대한 정부의 사과, 신행정수도 건설과 지역균형발전정책 추진, 노사정위원회와 저출산 고령사회 연석회의, 투명사회실천협의회 등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기구 신설과 강화 노력, 국가사회지출의 대폭확대,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기초노령연금 도입, 아동과 장애인 지원 확대, 교원 확충, 종부세 등 보유세 강화와 강력한 부동산 거래와 신용 규제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이런 정책에서는 참여정부의 진보적 성향이 뚜렷이 나타났다(p 338)

참여정부가 추구한 무수히 많은 가치와 실행한 정책 중에서 유시민이 어떤 것을 강조하는지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참여정부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이 중에서도 굵은 글자로 표시한 부분이 정수 중의 정수가 아닐까 한다. 어쨌든 전근대, 근대, 탈근대적 요소가 중첩된 한국 사회는 자유주의적 정책도 절실히 필요하고, 사회적 형평과 사회통합, 그리고 기회균등을 이루기 위한 국가 개입의 확대 강화 정책도 동시에 필요하다. 이를 사회자유주의라 부른다면, 김대중 정부가 제시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처럼, 그 때나 지금이나 매우 적절한 정책 노선이 아닐 수 없다. 단언컨대 한국 사회의 독특한 모순.부조리 구조를 아는 정책 전문가들은 그 어떤 정당보다도 참여정부의 정책기조에 대해 높은 평점을 줄 것이다. 유시민이 참여정부가 시대적 과제에 잘 대응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고르바초프와 등소평

하지만 정책의 큰 방향을 잘 잡았다고 해서 시대적 과제에 잘 대응했다는 것은 비약이다. 1980년대 구소련 과 중국의 시대적 과제가 개혁, 개방(자본주의적 요소 대거 도입, 국가=당의 경제 개입 축소, 민주화, 분권화, 개방화 등)이었음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와 등소평이 채택한 수순과 실행 결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고르바초프는 구소련이 가야 할 전략적 방향을 페레스트로이카=개혁과 글라스노스트=개방으로 정확히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수구정치(구 소련공산당 보수파) 세력만도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고르바초프가 실패했다고 해서 구 소련의 개혁, 개방이 틀린 방향이 아니듯이, 노무현이 실패내지 좌절했다고 해서 사회자유주의라는 큰 방향성이 틀린 것은 아니다. 물론 큰 방향을 잘 잡았다고 해서 시대적 과제에 잘 대응한 것도 아니며, 노무현이 고르바초프 같은 실패를 했다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문제는 전략적 방향성 그 자체라면, 참여정부의 문제는 전략적 방향성이 아니라 일을 풀어가는 수순이나 맵시였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개혁의 선후완급 상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오류의 뿌리에는 한국 사회에 대한 얕은 이해가 있다.

참여정부가 범한 중대한 오류는 한 둘이 아니다. 여기에는 유시민이 적확하게 언급한 것도 있고, 두리뭉실하게 언급한 것도 있고, 전혀 인식하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제1의 적

참여정부는 소중한 정치사회적 에너지를 집중하여 타격할 주적 혹은 최우선 순위에 놓아야 할 가치를 잘못 잡았다. 단적으로 자유주의 개혁의 간판 상품처럼 얘기한 ‘정경유착과 권언유착 등 권력 카르텔 해체’ ‘분권화’ ‘권위주의 문화 청산’ ‘정치권력의 부당한 간섭과 자의적 개입 극소화’는 필요한 일이 분명하지만 우선 순위 상의 문제가 있다.

노무현 집권시기는 ‘정.권’(정권 실세, 유력 정치인, 정당 등)’과 ‘경.언’(재벌대기업,토건업자, 보수언론)’의 유착 보다는 ‘경.언’에 의한 ‘정.권’의 포획이 본격화 되는 시기였다. 이는 2002년 대선 자금 수사 과정에서 ‘유력 정치인들’의 코를 꿰려는 의도가 선명한, 재벌들의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정치자금 공여 행태에서 힘의 역전 현상이 뚜렷이 드러났다. 그리고 2009년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진, 노무현 정권 유력자들에 대한 재계 서열도 보잘것 없는 한 재력가(박연차)의 적극적인 코 꿰기 작업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박연차나 유력 재벌은 ‘정치자금을 주기 싫은데’도 불구하고 ‘정.권’의 주먹이 무서워서 마지못해 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권’을 적극적으로 포획하려고 준 정황이 뚜렷하다. 단적으로 부동산 관련 규제 하나만 풀어줘도 수백 억을 챙길 수 있고, 민자유치 사업 하나만 잡아도 수천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정.관’에 비해 ‘경.언’의 힘이 점차적으로 커져왔고, 재벌끼리의 빅딜 등 기업.금융 구조조정이 대충 마무리 된 김대중 정부 말기부터는 힘의 역전 현상이 확연했다. 다만 ‘경.언’이 무서워한 것은 과거에 싸질러 놓고 미처 수습하지 못한 (2세 상속 과정의) 불법들이었다.

어쨌든 ‘정.권’은 임기도 짧고, 선거를 통한 검증과 재신임 과정도 있다. 또한 ‘경.언’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치 치밀한 견제.감시 하에 놓여있다. 그에 반해 ‘경.언’은 허술한 상속.증여 제도 등으로 인해 사실상 자자손손 거대한 권능을 세습할 수 있고, 자의적으로 휘두를 수 있는 권능도 크고, 선거를 통한 검증과 재신임 여지도 없다. 당연히 감시.감독 기구와 사법권력을 포획할 수 있을 정도로 그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은 막강하다. 시장지배적 보수 언론의 문제는 유시민도 잘 지적하고 있다.

정보를 통제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최강 권력은 언론이다…..그들이 네모난 창을 만들면 국민은 네모난 하늘을 본다…..그들은 국민의 눈과 귀, 국민의 입을 자처하지만 그 눈과 귀와 입은 사실 그들 자신의 것이다. 그들은 선출되지 않으며 신임을 묻는 일도 없다. 교체되지도 않으며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그들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다. (p 194)

그런데 ‘정.권’에 비해 힘이 비약적으로 커진 것은 ‘경.언’ 뿐만 아니다. 흔히 마피아로 불리우는 검찰, 재경부, 건교부, 국세청, 지방정부, 사법권력(법원, 헌법재판소) 등도 ‘경.언’과 비슷한 반열로 올라오고 있다. 애초에 한국의 권력 시스템은 제왕적 권력의 자의적이고 탈법적인 통제에 의해 작동하도록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게 설계된 구석이 많다. 그러다 보니 제왕적 권력이 법이 허용하는 권력만 행사를 해버리자(스스로 손.발을 묶어 버리자) 선출되지 않은 무소불위 권력, 특히 검찰, 언론, 헌재, 재경부, 지방정부가 권력을 횡재 해 버렸다. 다시 말해 민주적이고 제도적인 견제.감시가 허술한 가운데 끼리끼리의 이익을 추구할 여지를 주다 보니 제왕적 권력에 눌려있던 하위 권력들이 마피아적 속성을 강하게 드러내게 된 것이다.

본래 마피아는 ‘私邪’를 위해 ‘公共’을 짓밟는 집단이다. 배신자(?)을 가혹하게 응징하고, 자기들만이 아는 암묵적 서열이 있는 폐쇄적인 집단이다. 이는 기수 문화가 있는 곳, 특히 검찰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기여.부담에 비해 훨씬 많은 권리.이익을 향유하려고 하는 도적의 속성과 단기적인 소출 증대를 위해 생태계 전체에 불을 지르는 화전민의 속성이 있다. 한마디로 가치생산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이 버린 권력을 횡재한 하위 권력기관 뿐만 아니라 대기업.공기업 노조와 각종 전문직능 협회도 마피아적 속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 사실 한국 사회의 경제적 잉여의 배분 구조를 보면, 사회적 강자와 노블레스 전체가 도적과 화전민의 속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 더 나아가 현 세대 및 기성세대 전체가 미래세대와 청년 세대의 권리.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자연 환경에 대해서는 현 인류(문명) 전체가 도적과 화전민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가 없다.

물론 모두의 문제는 아무의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해결의 우선순위도 있다. 전인류의 문제나 현 세대 전체의 문제는 일단 후 순위다. 이 시대 한국의 시대적 과제는 사회적 상벌체계 내지 가치생산생태계를 황폐화 시키는 사회적 강자와 노블레스의 각개약진(전후방 가치 생산 사슬에 대한 노략질)을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의 힘으로 제어하는 것이다. 사회적 강자들의 사익추구 에너지를 ‘공공성’에 복무하도록 법.제도.문화를 만들고 실행하는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와 가치생산생태계의 건강성을 위협하는 제1의 적은 불과 임기 5년(실제로는 레임덕 때문에 더 짧다)의 제왕적 권력이 아니다. 오히려 산업화, 민주화 이후 줄기차게 성장하여 권력을 포획할 수준에 이른 사익집단 혹은 마피아 집단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들을 제대로 규율.제어 하지 못하는 허약한 ‘선출된 권력’이다. 사실 가지고 있는 규제.촉진권능 크고 그래서 사익 집단의 집요한 로비를 부를 수 밖에 없고, 권능 행사 기간은 짧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정.권’은 고온 다습한 여름날 음식물 쓰레기통에 던져진 고기 덩어리나 마찬가지라고 보아야 한다. 엄청난 방부제를 층층이 쳐 바른 특이 체질 아니면 견뎌 낼 수가 없는 환경 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정경유착과 권언유착을 깨고 용케 ‘독야청청’에 성공했다고 해서 시대적 과제에 제대로 부응한 것이 아니다. 이는 설사 용케 성공했다 해도 아주 작은 성공에 불과하다. 그나마 ‘박연차’발 검풍으로 인해 이 작은 성공조차도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침팬지 의식'보다 더 큰 외상값들

유시민은 참여정부와 범진보개혁 세력이 공히 한국 사회(민주주의)가 후불해야 할 비용(외상값)을 과소 계상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대통령을 왕처럼 여기는 ‘신민 의식’ 혹은 가장 힘센 수컷이 ‘짱’으로 군림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침팬지 집단의 의식을 들었다. 유시민은 이 엄청난 외상값을 민주공화국 시민들의 분투.노력으로 갚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외상값 항목 중 ‘신민의식’이나 ‘침팬지 의식’ 못지 않게 큰 몇몇 항목도 빠뜨렸다. 대표적인 것이 힘있는 개인(노블레스)과 사회적 강자 집단에 뿌리 깊이 박힌 도적 충동과 화전민 충동이 그것이다. 이는 근원적으로 뒤틀린 근.현대사가 남긴 외상값인데, 한국 정치 전반과 진보개혁 세력의 무능 및 사익편향성으로 인해 미처 갚지 못하였다.

거듭 말하지만 참여정부에게 부여된 핵심적인 시대적 과제는 제왕적 권력의 ‘독야청정’을 넘어, ‘私邪’를 위해 ‘公共’을 짓밟는 존재들을 규율하는 튼실한 민주적 통제 체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동시에 민주적 통제 체제의 핵심인 ‘정치’를 강력하고 유능하게 하기 위해 정치를 품고 있는 모태인 ‘정치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참여정부가 해야 할 정치개혁은 정경유착.권언유착 폐절, 당정분리, 지역주의 해소(전국정당화), 당내 민주화.분권화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예컨대 사법권력이 사법고시를 통과할 엘리트들에 의해 독점 되는 것을 막고(배심제, 참심제 도입),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깨고(공직비리수사처 신설), 법관과 검사 인사 제도를 개선하고(그 수장에 인사 전권이 쥐어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통제력이 작동하도록 하고), 선출직 공무원에게는 비리 유혹에 대해 더 강한 내성을 갖도록 더 높은 처우와 더 투명한 감시 시스템을 만들고, 독과점과 불공정거래를 더 단호하게 응징하도록 감시.감독.처벌 기능을 강화하고, 정치생태계에 더 많은 청년인재와 더 많은 합법적 자금이 흘러가도록 하고, 정치가 유능해 지지 않을 수 없도록 헌법, 선거법, 정치자금법 등을 개혁하는 것 등 이었다.

요컨대 참여정부는 골목골목에서 활개치는 수많은 마피아들을 소탕하고, 아니 마피아들이 활개칠 수 있는 골목을 불도저로 밀어 만인이 지켜보는 광장으로 만들어버리고, 마지막으로 스스로, 제도적으로 청산해야 할 제왕적 권력임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선후를 잘못 잡았다. 무엇보다도 제도나 구조 개혁보다는 문화나 마인드(고정관념) 개혁을 앞세웠다. 그러다 보니 참여정부의 위세에 눌려 잠깐 숨어들었던 골목 마피아들이 그들과 죽이 정말 잘 맞는 정부를 맞아서 더 활개를 치게 되었다.

역사 감각과 철학적 오류

참여정부는 시대적 과제를 잘못 잡았다. 주체역량을 정확하게 타산하지 못했고, 한국의 모순.부조리 구조도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열린우리당 중진들의 속성, 능력과 열린우리당의 구조도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권력을 횡재한 존재들과 관료들에 대한 신뢰도 지나쳤다. 이 근본에는 역사 감각과 철학적 오류도 있었다. 이를 좀 상세하게 풀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관에서 유가적 편향이 있었다. 인간을 움직이는 동인으로서 상벌체계의 중요성을 간과하였기 때문이다. 권력자가 인간(중간 지도자)을 다스리는 유력한 수단인 욕망(정치적 거래)과 공포(채찍)를 너무 멀리하는 등 정치적으로 순진(naive)했기 때문이다. 법/제도/구조개혁 보다 지도자의 모범이나 도덕적 신뢰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하드웨어(상벌체계) 개혁을 동반하지 않은 소프트웨어 개혁에 치중한 면이 있다.

둘째, 정의관이 협소하였다. 경쟁의 입구(경쟁 기회, 조건, 출발선의 평등=공정) 관리에 치중하고 경쟁의 출구(경쟁 결과의 합리적 불평등=공평) 관리는 등한시했다. 그 결과 한국의 사회적 강자 집단을 선발하는 시스템(고시, 공시, 대학 입시, 선거제도 등)의 불합리성을 교정하지 못하였고, 따라서 정치, 경제(산업), 사회 발전의 관건인 청년인재의 극히 불건전한 흐름(글로벌 경쟁과 먼 곳, 국가의 보호 규제가 높이 쳐진 곳으로 달아나는 현상)을 교정하지 못하였다.

셋째, 균형 발전을 중시하긴 했으나 이를 다소 협소하게 해석하여 수도권과 지방, 권력기관간 견제와 균형에 치중하였다. 그로 인해 사회적 상벌체계=동기부여체계의 왜곡(불균형)과 수많은 가치생산 생태계의 피폐에 둔감하였다. 단적으로 원청 기업의 약탈주의적 거래 관행으로부터 하청 기업을, 힘있는 생산자로부터 소비자(학생, 학부모, 금융소비자, 납세자 등)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였다. 모든 정치인을 잠재적 정치자금법 위반자로, 뇌물수수자로 만드는 정치적 가치생산 사슬의 불균형(정치생태계의 피폐) 문제도 방관하였다.

넷째, 봉건/식민/분단/전쟁/권위주의/미국의 한반도 전략/1997년의 그늘은 잘 보았지만 1987년의 그늘은 잘 보지 못하였다. 이는 이명박과 이회창의 간판 상품으로 되었다. 사회적 추진력 약화, 기강과 질서의 훼손, 무분별한 분권.자율에 대한 분노, 진보 이익집단에 대한 분노, 공공부문에 대한 분노(크지 않아야 할 것이 크고, 높지 않아야 할 것이 높고, 안정되지 않아야 할 것이 안정을 누리는데 대한 분노) 등을 두 이씨가 상당부분 받아 안았기 때문이다. 진보가 주도적으로 만든 1987년의 그늘 보다 보수가 주도적으로 만든 그늘이 더 크고 짙다고 하더라도, 1987년의 그늘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진보는 대체로 보수의 문제가 더 크고 심각하다고 말할 뿐, 또 보수 언론의 농간이라고 말할 뿐 자신이 주도적으로 만든 그늘을 해결할 어떤 대안도 내놓지 못하였다.

다섯째, 거버넌스(Governance)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 거버넌스를 조직 내 상하간의 분권, 자율로 오해한 나머지 행정부의 집행력(추진력)을 떨어뜨렸다. 3권 분립(헌재를 포함하면 4권)을 통해서 견제할 정부를 하부(예컨대 검찰의 평검사)가 상부(법무부장관과 대통령)를 견제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

여섯째, 사회자유주의라면 좌파적 개혁과 우파적 개혁을 병진할 수 밖에 없는데, 모순될 수밖에 없는 정책기조를 묶어 통일성과 일관성을 부여해 주는 중심가치가 부재하였다. 원칙과 상식이 있긴 있었지만 그것은 원래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그로 인해 큰 틀에서 제대로 된 노선을 취하고도 개념 없이 좌충우돌하는 정부처럼 여겨졌다.

위에서 열거한 대부분의 오류는 범진보개혁 세력이 대체로 공유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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