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의 정치통계와 해설(2)
김대호의 정치통계와 해설(2)
  • 김대호
  • 승인 2009.02.12 09:5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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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실업자에도 못 낀 300 만명

진보는 대선에서 낙관과 자만으로 망하고, 총선에서는 비관과 자학으로 망하다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자칭, 타칭 진보(개혁/민주/평화/미래) 진영은 여론조사가 발달한 상황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대참패를 당했다. 유권자 대부분에게는 이 결과는 충분히 예견되었으나, 선거를 주도한 진보 세력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노무현과 차별화 쇼’ ‘대통합 쇼’ ‘부패(BBK) 난타전’ ‘신자유주의 난타전’이 상당한 효과를 거두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8년 총선과 서울시 교육감 선거 당시의 정치 지형은 대선에 비해 진보 진영에 훨씬 유리한 정치 지형으로 변해 있었으나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였다. 진보 진영의 주도 세력은 대선에서는 지나친 낙관과 자만으로 망했다면, 총선과 교육감 선거에서는 지나친 비관과 자학으로 망했다고 할 수 있다. 정치 지형에 대한 오판의 이유는 명확하다. 다수 유권자의 눈으로 자신과 상대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보기에 도저히 지지를 받을 이유도 자격도 없는 존재들이 압도적 지지를 받는 이 당혹스러운 사태를 해명하지 못하자, 진보 일각에서는 유권자의 착각과 시민적 덕성의 타락을 성토하기도 하고, 더 확고한 진보(좌파)노선으로 선회할 것을 주문하는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기도 했다. 한편 승리한 보수 진영에서는 자신들의 압승 이유가 정말로 ‘지난 10년의 좌파적 행보’에 대한 반감인 줄 알고, 극우파적(?) 행보를 거칠게 하다가 급격한 민심 이반을 자초하고 있다.

대선, 총선 패배는 시대정신 통찰의 문제

여론과 감성은 바다로 말하면 비와 바람의 영향을 받아 요동치는 표층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찰랑이는 물결과 거친 파도는 주로 이 표층에서 일어난다. 이 표층의 흐름은 바닷물의 위도에 따른 온도차, 달의 위치, 해저지형 등에 크게 영향을 받는 중층, 심층의 흐름에 규정을 받는다.

배가 대양을 항해 할 때는 먼저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바람과 기상을 살피고, 동시에 대륙간 이동을 하는 거대한 해류도 살핀다. 이처럼 여론과 감성의 흐름을 분석할 때도 표층 흐름과 중층, 심층 흐름을 같이 살펴야 한다.

진보 진영의 지난 대선, 총선 참패는 간단한 여론 조사를 통해서 누구나 파악할 수 있는 표층심리 통찰의 문제가 아니라 심층심리 통찰의 문제였다. 그런 의미에서 시대정신 통찰의 문제였다.

시대정신을 찾아내는 방법론이 필요

시대정신은 몇몇 사건, 사고에 따라 크게 요동치지 않으면서도, 방향성과 지속성이 있는 국민의 정신적, 심리적 경향성이다. 이는 그 시대 그 나라 국민들의 절실한 기대와 요구, 고통과 불만의 총화이자, 국민들의 이상(욕망)과 현실적 한계의 타협이다. 여기에는 국민들의 유전적 특징에서부터, 기후와 지형, 역사와 문화, 정치와 경제 구조 등 온갖 요소가 영향을 끼친다.

사람들의 기대와 요구, 고통과 불만이 천차만별이기에 시대정신도 사람에 따라 너무나 다르게 나타난다.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자명하지만 많은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시대정신을 추출하는 방법론이 필요한 것이다. 즉 무수히 많은 기대와 요구, 고통과 불만 중에서 가장 절실하고 중요한 것을 찾는 방법론이 필요한 것이다.

정치인, 정당, 정치세력의 명운은 시대정신을 정확히 파악하고 구현하는데 달려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2007년과 2008년, 더 나아가 2006년 선거에서 진보 진영의 참패는 이들이 파악하고 체현하고 있는 시대 정신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즉 가치, 정책의 우선 순위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사회적 평가보상(상벌)체계의 핵심을 천착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기대와 요구, 고통과 불만의 근원은 사회적 평가보상(상벌)체계와 다른 나라나 자연환경의 도전이다. 한국은 아직은 다른 나라나 자연환경의 도전이 국민들의 자유와 안전을 결정적으로 위협할 정도는 아니며,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대다수 국민들은 자본주의 시장 시스템 속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한국인의 기대와 요구, 고통과 불만의 근원은 아무래도 개개인의 능력, 노력, 행운에 사회적 평가보상체계이다. 여기에는 개개인의 물질적 생활을 뒷받침하는 일자리, 소득(flow), 자산(stock) 구조가 주요하게 포함된다. 또한 정치 권력이 주도적으로 관리, 통제하는 재정과 규제권(독점권과 처벌권 포함)과 권력을 위임받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리더십)가 포함된다.

정보화, 자유화, 개방화에 힘입어 지난 20년 간 상전벽해를 방불케하는 격변이 일어난 문화 현상이 일종의 상부구조라고 한다면 일자리, 소득, 자산, 재정 구조, 권력 구조 등은 일종의 하부구조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변화가 더디면서도, 개개인의 행복과 불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의 모순과 부조리, 위기와 기회, 정치.사회적 권력의 성격이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곳은 아무래도 일자리, 소득, 자산, 재정, 권력 구조 일 것이다.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실업자 바깥에 있는 300만명

한국인의 물질적 생활의 토대인 일자리 구조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를 조망해 보자. 2008년 현재 한국의 경제활동 참가율=[(취업자+실업자)/15세 이상 인구]은 61.5%, 고용률 59.6%이다. 경제활동참가율은 1994년 수준에 머물고 있다.(최고점은 1997년의 62.5%였다)

한국 사회는 실업률은 4% 내외로 낮지만 실제 일자리 사정은 매우 열악하다. 이는 고용보험 장기 가입자가 아닌 한, 실업자로 등록해도 아무런 혜택이 없기 때문에 구태여 까다로운 실업자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취업자의 정의는 670명의 조사원이 전국 3만 3천 가구 15세 이상 남녀(대략 7만 1천 명)를 대상으로 행하는 표본 설문조사에서 매월 15일이 낀 1주일 동안 1시간 이상 일한 사람을 말한다. 다만 무급가족종사자는 한 달에 18시간 이상 일해야 취업자로 인정된다. 실업자는 해당 기간에 주당 1시간도 일하지 않았고, 구직활동을 해야 하고, 즉시 취업이 가능해야 하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OECD 주요국과 비교해 보면 15세 이상 64세 이하 인구를 기준으로 따지는 “OECD 기준 경제활동 참가율”은 영국, 미국에 비해 10%쯤 낮고, 일본에 비해서도 6.3%가량 낮다. 한국은 국가. 사회적 차원의 실업 및 노후 보장책이 매우 취약하기에 경제활동인구가 그렇게 낮을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낮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15~24세 연령대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낮은 것은 긴 취학기간(높은 대학 진학률)과 징병제 등으로 인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만, 25~54세 연령대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여성의 육아, 가사 노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자리의 절대 수 부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15~24세 연령대의 낮은 경제활동참가율과 부모에 학비. 생활비를 오랫동안 의존하는 문화와 취약한 노인 복지는 55~64세 노년층의 높은 경제활동 참가율로 나타난다. 한국의 일자리 절대수의 부족 현상은 비슷한 문화권의 일본과 비교하면 확연하다. 한국은 전 연령대에 걸쳐서 일본에 비해 참가율이 낮다. 프랑스와 한국은 공히 청년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낮은데, 이는 둘 다 조직노동(기득권 노동)의 힘이 강하다는데 공통점이 있다.

한국의 일자리 부족 현상은 평소취업자(2,284만 명)와 취업경험자(2,584만 명)의 격차(300만 명)로 부터도 엿볼 수 있고, 사유별 비경제활동 인구 조사로부터도 엿볼 수 있다. 단적으로 그냥 쉬었다는 사람들이 2006년 현재 128만명으로 4년 동안 41%가 증가하였다.

평등 이전에 기회 부족의 문제

한국의 대다수 진보정치인과 여론주도층이 가장 집요하게 문제 삼고, 사회적 주목도 많이 받는 것이 비정규직 문제이다. 최근에는 열악한 영세자영업 문제와 청년실업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비정규직 문제에 비할 바 아니다. 이는 비정규직이 비록 중소기업에 많이 분포하지만, 자영업자나 청년실업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직화가 쉽고, 정규직과 살을 맞대며 일하는 직접적인 경쟁자(대체자)이거나 하위 협력자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규직과 차별의 부당성이 이해하기 쉽고, 열악한 처우의 책임을 ‘자본과 정부’에 돌리기 쉽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치열한 노동 투쟁(뉴코아, KTX여승무원, 기륭전자, 시간강사…)은 대부분 비정규직 문제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이 투쟁들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는 정규직과의 차별철폐, 곧 평등이다. 정규직이 누리는 처우가 노동의 양,질에 상응하는 수준인지는 묻지 않고, 기업의 지불능력도 묻지 않는 (정규직으로의) 상향 평준화라고도 할 수도 있다. 자본이나 학교재단을 압박하여 차별을 해소하는 해법의 옳고 그름은 접어두고라도, 한국의 일자리 구조를 뜯어보면 평등 이전에 ‘일할 기회’ 내지 ‘경쟁할 수 있는 기회’의 문제가 더 근원적이고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동영이 주창했던 ‘차별없는 성장’도 중요한 가치가 맞지만, 이 이전에 청년세대, 미래세대가 주로 포함되어 있는, 경제활동인구나 비정규직에도 포함되지 못한 수백만 명의 사실상 실업자에게 기회를 늘려나가는 성장, 기회와 과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공정과 공평(합리적 차별)이 더 중요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김대호는 1963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진주고를 거쳐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했다. 1982년 대학 입학 후 뒤틀린 역사와 정의를 바로 세워보겠다고 떨쳐나선 수십만 386 세대의 일원으로서, 이 세대에게 부과된 고난과 고뇌의 짐을 지는 현장에서 대충 몸을 빼지는 않았다. 1년간의 무기정학, 2차례의 징역, 2년간의 공장생활을 거쳐, 1990년을 전후하여 5년간 구로지역에서 노동 상담/교육/정책연구를 했다. 1995년 초 대우자동차에 입사하여 2004년 초까지 연구/개발/기획 업무에 종사했다. 이후 김대호산업경영연구소를 창업하여 몇몇 기업 및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경영전략 컨설팅과 정책 연구 용역을 수행했다. 현재는 사회디자인연구소(사) 소장으로 진보개혁 세력의 정치적 부활을 위한 철학, 가치, 이념,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사회평론, 2001),
[한 386의 사상혁명](시대정신, 2004)
[진보와 보수를 넘어](백산서당, 2007)
[희망한국 프로젝트(공저)](백산서당,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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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xSawL 2009-07-25 12: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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