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어둠을 보는 자에게만
'노무현'이 보인다
시대의 어둠을 보는 자에게만
'노무현'이 보인다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 승인 2009.07.09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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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것은 어둠이 짙게 드리웠기 때문이다. 별빛을 가리는 구름이 걷히고, 간밤의 비로 혼탁한 도시의 대기가 깨끗해졌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별처럼 빛나는 것도 시대의 짙은 어둠이 다시 밀려왔기 때문이다. 무원칙과 몰상식, 반칙과 특권, 기회주의와 권위주의, 위선과 유착이 다시금 밀려왔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짙은 어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노무현은 뜬금없는 자살자일 뿐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자살 충동을 부추기고, 국가의 품격과 위신을 실추시킨,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될 사람 일 뿐이다.

시대의 어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안중근은 살인자고, 4.19 학생들과 5.19 광주 시민들은 폭도고, 6월의 광장 시민들은 교통 방해나 일삼는 불법폭력 시위자다. 전두환 장군은 구국의 영웅이며, 이명박은 CEO 대통령이며, 검찰은 정의의 사도고, 조선일보는 시대를 이끌어가는 정론지다.

주권자 국민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았던 것은 앞으로 가는 대한민국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서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칙과 특권을, 기회주의와 권위주의를, 위선과 유착을 후미진 뒷골목으로 쫓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권자 국민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았던 것은 앞으로 가는 대한민국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서 활력과 박진감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추진력과 일 솜씨를 통해 747에 가까이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권자 국민이 노무현의 죽음을 애도하고, 분노하고, 미안해하는 것도 앞으로 가는 대한민국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왼쪽 주머니에는 노무현의 가치를 담고 싶고, 오른쪽 주머니에는 이명박의 가치를 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데 이명박은 ‘잃어버린 10년’ 운운 하면서, 대한민국의 기본 중의 기본인 노무현의 가치를 야비한 방식으로 짓뭉개려고만 할 뿐, 자신의 사명을 조금도 이행하지 않았다. 이명박은 권, 언, 법, 경, 학이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히고 설켜서, 정의와 양심을 부르짖은 미운 오리새끼를 목 졸라 죽이면서 또 한번의 백 년을 기약하는 반역의 세상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이명박의 총체적 역주행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만고의 근본이 되어야 할 위대한 정신이 치여 죽는 상황에서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으랴! 노무현이 정의의 칼을 갖고 눈을 부라리던 시절, 후미진 뒷골목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온갖 조폭과 불량배들이 이명박 집권을 계기로 우르르 몰려나와 맨 먼저 그들을 쫓아낸 호민관을 폭행치사 하기에 이르렀으니 어찌 그리움과 미안함이 폭풍처럼 일어나지 않을 수가 있으랴!

우리가 노무현의 죽음을 특별히 애통해하는 것은 그의 인간적 결점과 정치인으로서의 오류가 우리에게 그대로 있고, 원칙과 상식을 지키면서 그가 겪은 좌절과 고통도 우리에게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서민 중의 서민, 비주류 중의 비주류로 태어나 주류에 굽실거리지도 빌붙지도 않고, 오로지 원칙과 소신에 입각하여 대성공을 거둔, 생전에 다시 보기 힘든 도전과 희망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노무현을 특별히 숭모하는 것은 시대의 어둠을 깨칠 위대한 정신의 한 자락을 그에게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입을 막고, 목을 조르는 시대의 어둠을 증거하기 위해, 또 우리 눈과 마음에 끼인 혼탁한 무언가를 씻어내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태워 가슴과 영혼을 파고드는 거대한 섬광을 만들었다. 그는 역사와 씨름하는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비춰보는 위대한 거울이 되었다. 한국 사회가 너무나 결여한 책임 정신, 희생 정신의 상징으로서 몇 십 년이 가도 변함없이 초저녁 샛별처럼 빛나는 별이 되었다.

우리가 노무현을 특별히 사랑하는 것은 노무현의 기쁨과 성공에서, 양심 하나는 부둥켜안고 살아온 자기 자신, 부모, 자식, 친구들의 기쁨과 성공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무현의 좌절과 눈물에서, 배경이 보잘 것 없는 인생들의 좌절과 눈물을 보았다. 그의 고통과 죽음에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부여잡고 씨름한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을 보았다.

내가 특별히 그를 아쉬워하는 것은, 시대의 어둠을 깨치는 위대한 방법을 찾기 위해, 같이 머리를 맞대고 밤을 세울 기회가 코앞에 닥쳤는데 홀연히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5년의 재임시보다 퇴임 이후에, 수십 년에 걸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민족적 자산으로 생각했다.

시대의 짙은 어둠을 보아야 노무현의 가치가 보인다.
시대의 짙은 어둠을 보아야 노무현의 한계와 오류가 보인다.
그래야 더 나은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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