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적 삶 가꿀 언론 우리가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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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부환
  • 승인 2009.09.01 1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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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환 칼럼> 안동의 지역 신문과 콘스탄츠 신문

영남신문 발행인
콘스탄츠는 독일의 중소도시 이름이다. 콘스탄츠는 우리 안동과 닮은 것들이 많다. 적어도 외형적으로 보면 그렇다. 인구규모도 비슷하고 호수를 가지고 있다는 점 또한 그렇다. 우리에게 안동호수가 있듯이 독일 콘스탄츠에는 보덴호수가 있다. 물론 호수의 규모나 종류는 다르다. 엄격하게 이야기하자면 보덴호수는 독일의 것만이 아니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3개국에 걸쳐 있는 국제호수다. 3국이 공동으로 호수를 관리하며 규모로는 스위스 레만 호수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 큰 호수다. 보덴호수는 생긴 모습이 심장을 닮았다하여 유럽의 심장이라고 불려 지기도 하며 사시사철 유럽인들이 몰려들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콘스탄츠의 일정면모를 관광도시로 봐도 무방하며 정신문화의 수도란 기치아래 각종 관광인프라를 확대해야 하는 안동과도 닮았다.

독일 콘스탄츠는 4세기 중반, 로마황제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가 만든 역사적인 도시다. 기록상 안동의 뿌리도 신라의 고타야군(古咤耶郡)으로 거슬러 간다니 역사로 따지자면 안동도 독일 콘스탄츠보다 못할게 없을 것이다. 묘하게도 국립대학이 있다는 것도 닮았다. 국립안동대학이 있듯이 콘스탄츠에도 국립 콘스탄츠대학이 있다. 물론 독일에는 거의 모든 대학이 국립이며, 대도시인 베를린 대학이나 중소도시 콘스탄츠대학과는 학력 수준의 차이나 대학서열이 없다는 점은 우리나라와는 확연히 다르다.

대학이니 만큼 안동대학이나 콘스탄츠대학에도 물론 도서관이 있다. 그러나 규모로 따지자면 도저히 우리네 도서관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그들의 도서관은 너무나 방대하다. 학생들은 강의실과 도서관에서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도서관에 들어가기 전,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모든 신문이 비치되어 있다. 독일의 전국지와 지역신문 그리고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유력지, 하물며 한국의 신문도 그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 유학생 몇몇이 도서관에서 한국 신문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가끔 독일 학생들이 신문에 실린 한국의 대통령이나 주요 정치인의 사진을 보고서는 누구 아니냐고 물어오는 경우도 있어 반가울 때도 있다. 한국에 남달리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부 독일 학생들은 상당한 수준으로 한국 상황을 꿰뚫고 있어 심도 있는 토론도 가능할 정도다.

그 공간에 비치된 수많은 종류의 독일신문이 있지만 따지고 보면 대부분 지역신문들이다. 사실 독일의 전국지는 ‘디 벨트’지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그리고 ‘쥬드 도이체 차이퉁’ 등 서 너 개일 뿐, 모두가 지역신문들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빠지지 않고 애독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콘스탄츠 차이퉁’(콘스탄츠 신문)이다. 학생들은 전국지와 지역신문을 보면서 하루의 일과를 열고 있는 셈이다.

인구 규모가 안동과 비슷한 규모의 독일 중소도시 콘스탄츠의 ‘콘스탄츠 차이퉁’은 물론 학생들에게만 애독되는 것이 아니다. 콘스탄츠 시민은 물론 모든 상가나 식당에도 빠지지 않고 애독되는 신문이다. 당연히 일간지고 또한 유가지다. 유럽인 특히 독일 사람들은 통상 전국일간지 하나와 지역신문을 동시에 구독한다. 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들은 지역신문을 선호한다. 전국지에 담긴 굵직한 정보들은 다른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동과 콘스탄츠가 닮았지만 이점은 달라도 한참은 다르다.

영남신문은 예천과 안동을 비롯하여 경북북부지역을 기반으로 재창간되는 환골탈태하는 신문이다. 영남이라는 이름을 되새긴다면 콘스탄츠와는 지역규모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 우리 안동이나 독일 콘스탄츠나 사람이 살아가기는 마찬가지일 것이고 또한 지역에 애착을 가지며 살아가기도 비슷할 것이다. 물론 지방자치제도의 역사와 착근 그리고 중앙정부의 의존도 등은 우리와 비교하기 어렵다. 그러나 왜 지역일간지‘콘스탄츠 차이퉁’은 있으나 우리의 삶터를 가꾸고 다듬고 비춰야 할 안동의 사랑받는 지역일간지는 도대체 없는 것일까?

재창간으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는 영남신문은 이제 여기에 답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시민과 군민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겸허히 호흡하지 못한다면 재창간의 행보는 한 점의 의미도 가지지 못할 것임을 영남신문은 다시 한 번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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