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언론, 지방적 가치에 충실하자
지역언론, 지방적 가치에 충실하자
  • 김성진
  • 승인 2009.09.01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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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성진 안동시의원, 전 경북북부신문 편집장

김성진 안동시의원
생각해 보니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결혼 날 잡아 놓고 서울서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쓰고 안동에 내려와 신혼살림 차리고 말 그대로 백수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지금은 아동문학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춘희 대학동기의 연락을 받고 찾아간 곳은 주간 안동신문 창간 준비를 하고 있는 사무실이었다. 선택의 여지없이 출근하기로 결정하고 창간을 준비했지만 그저 눈앞이 캄캄했다.

사장님겸 발행인과 주간님 그리고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직원 모두가 신문에 관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 중에 안동대학교 학보사 경험이 있는 후배가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어쩌면 우리들은 신문을 만들고 신문사를 경영해 나간다는 현실적 문제 보다는 통상적인 관점에서의 신문의 사명, 그리고 언론의 사명에 더 관심이 많았는지도 모른다. 거기에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지역신문’의 역할에 대해 토론하고 고민하는 소중한 경험을 가질 수 있었다.

그때에 나는 가난한 신혼인데다 운전면허도 없어서 용상동에서 시내까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였고, 시청·군청을 드나들 때도 저전거를 타고 다녔다. 차라고 해봐야 신문사 전체를 통틀어 한 대 밖에 없었을 때였다. 그렇지만 당시 시·군청을 출입하는 기자들은 대부분 차가 있거나 취재를 위해서는 차가 필요 없는 붙박이 기자들이 있었던 관계로 자전거를 타고 취재를 다니는 내 모습은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여기저기 창간 축하 원고도 받고 창간특집 기사로 근근히 꾸려서 어렵사리 창간호를 발간했으나 제작상의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여 창간호를 당시 찍는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흔히들 활자가 마술을 부린다고 하여 신출내기들이 아무리 교정을 제대로 본다고 해도 그대로 배부할 수 없는 실수를 범하기 일쑤였다. 어쨌든 극소수의 관심 있는 시민들과 다수의 무관심한 시민들 앞에 지방화 시대를 앞둔 상황에서 주간 안동신문이 1989년 11월에 창간되었고 이어서 1990년 초에는 주간 경북북부신문이 창간되었다.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지역신문이 발간되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긍정적인 목적에 의해 창간되고 극소수로부터 적극적인 관심을 받는다고 하여도 신문은 그 속성상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경영적인 면에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임직원의 급여와 신문 제작비 그리고 유·무가지 배부에 따른 비용을 감안하면 광고시장이 지극히 빈약한 지역의 현실에서는 경영을 정상화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신문사 경영의 원활성 여부는 현장을 뛰는 기자들에게 있어서는 사기는 물론 기사의 질까지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되며 이는 결국 독자들의 신문에 대한 관심과도 연결된다.

우리는 현재 약 15년에 걸친 지방자치를 해 오고 있으면서도 중앙집권적 가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군부독재를 청산하면서 탈권력, 탈권위를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권력과 권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오히려 권력과 권위 그리고 중앙적 가치에 합목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사회와 국민의식이 이렇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언론과 언론을 대하는 국민의 시각에 큰 책임이 있다.

중앙적인 것은 의미가 있고 중요한 것인데 비해 지방적인 것은 하찮다는 국민들의 의식, 그리고 그 국민들의 의식에 편승하여 중앙일간지건, 지방일간지건 신문의 거의 대부분이 중앙기사를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다. 이러한 보도 태도와 국민의식이 결합하여 지방의 중요한 문제, 지역의 소소한 이야깃거리는 묻혀버리고 마는 것이다.

지역신문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시장, 군수, 국회의원, 의장 등 명망가 중심으로 보도를 하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행사위주의 보도가 거의 모든 지면을 장식한다. 행사보도의 특성은 칭찬은 있으나 비판이 없고 사회적 통합 내지는 지역의 공동선을 위한 진지한 논의와 고민이 없다. 거기에 참석한 몇몇 인사의 마음에 들려는 아니면 주최측의 비위에 맞추려는 기사가 계속 생성되는 한 진지한 의미에서의 지역 언론은 존재할 수 없다.

부정적인 특정사안을 침소봉대하여 비판하는 언론도 문제이지만 건전한 비판을 두려워하거나 건강한 의견을 제시하는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 또한 언론이 아니다. 언론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제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갈 때 긴 의미에서 몸과 같아서 그때그때 건강을 진단하지 않으면 병들게 되어도 깨닫지 못하고 비판 없이 오로지 홍보만 하다가 보면 비만에 이르러 되돌리기에 너무나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흔히 언론은 입법, 사법, 행정의 3부에 더하여 4부라고 한다. 이것을 자칫 언론권력으로 해석한다면 큰 오해다. 탈권력과 탈권위를 지키는 4부여야 하고, 시민의 의식과 사회의 의식을 올바르게 지켜가는 4부여야 한다.

지방화시대에 있어 지역 언론은 지역민의 관심에 의해 그 성장의 여부가 결정되고 올바른 성장을 위한 지역민의 관심은 바른 언론을 키우는 기본이다. 또 한 가지 디지털시대, 인터넷시대에 있어 또 다른 정보소외 층인 아날로그 세대에게 지역신문은 다양한 내용으로 그들의 정보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동시에 인터넷 세대에게도 흥미위주의 정보 향유를 지양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일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던져주는 역할 역시 지역 언론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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