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노래의 앙상블 - 시 노래패 징검다리
시(詩)와 노래의 앙상블 - 시 노래패 징검다리
  • 경북인
  • 승인 2009.10.1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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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여행 기차타고 노래에 살짝 빠졌네

▲징검다리

사람들에게 통기타 선율로 시 전하는 노래패 '징검다리'
외로움이 먼저 젖는 이 가을,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 이젠 이름마저 그리운 옛 연인에게 편지를 보내고픈 날, 하늘에는 청초롬 오롯한 두 개의 달이 떴다. 칠흑 같은 밤, 기차 타고 어디론가 가는 길에 구색 삼아 달빛이 비친다면 문득 시 한편 생각나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지난 10월 9일 밤 안동시민회관 강당에서는 소중한 공연이 있었다. 마음과 마음, 서로의 가슴에 따뜻함이 가득하길 바라는 안동 유일의 시 노래패 ’징검다리‘의 소리울림이 바로 그것이다. 나와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이었지만 실제로 그들의 음악을 공연장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연주를 들으며 귀에 익은 시들은 반가움에 눈을 감았고 생소한 시들은 설렘에 감았던 눈을 떠 흐릿한 달빛에 비추어 보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시와 징검다리를 이끌고 있는 위대권(42)씨의 시가 함께한 한 시간 반 여정의 음악 여행에 200여 명의 시민들과 함께 몸을 실었다. 무대엔 하늘로 웃자란 갈대숲과 보름달이 비추고 징검다리 5인의 연주와 국악인 이정순의 해금, 임성국의 대금연주로 시와 음악은 더 이상 둘이 아니었다.
요즘 들어 시에 음악을 입혀 노래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 졌다. 우리 조상들은 시와 노래를 달리 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부터 시는 시로만 읽히고 있어 안타까웠는데 이런 공연들이 많아지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언제나 사람들과의 소통에 목말랐던 그들이었기에 올해로 4번째 맞는 징검다리의 이날 공연은 객석을 가득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비로소 시와 음악과 사람이 하나 되는 순간이었다.

‘뱃사공에 술을 세던 칠십년 한 세월을 내 어찌 이 한잔 막걸리에 다 담을 수 있으리오’ (삼강주막中, 시 위대권)

이날 공연은 징검다리의 4번째 공연이자 위대권씨와 그의 아내 강미영씨의 첫 앨범을 기념하는 연주회이기도 했다.

공연에서는 「밤기차, 시 안상학」,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시 김소월」 , 「삼강주막, 시 위대권」, 「먼 강물의 편지, 시 박남준」를 선보였고, 「엄마, 시 정채봉」, 「못잊어, 시 김소월」등의 시 낭송과 해금, 대금, 기타의 연주가 어우러져 수준 높은 공연이 되었다.

멤버 모두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음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이렇게 아름다운 연주회를 선보이는 그들의 열정에 새삼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시에 대한 부족한 사전설명과 친일 시인 서정주의 시를 비롯한 단조로운 선곡들은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연습실에서 들어본 '징검다리' 이야기
밤9시경 공연은 끝이 났다. 인터뷰 약속은 미리 잡혀있었으나 그들을 재촉하진 않았다. 공연 후 밀려오는 피곤함을 짐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인사와 감사의 말들이 한동안 이어졌고 한 쪽에서는 무대를 정리하느라 무척이나 바빠 보였다.

악기들을 챙겨 태화동 모처에 있는 그들의 연습실로 자리를 옮긴 후 늦은 식사 자리에 동참하게 되었다. 안동 유일의 시노래패 징검다리,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현재 징검다리를 이끌며 교도행정 일을 하는 위대권씨와 그의 아내 강미영씨, 낮에는 택배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카페에서 노래를 하는 김용현씨, 웨딩 작가로 일하고 있는 조병선씨, 그리고 전직 피아노 조율사이자 현재는 종묘회사에서 일하는 배영일씨가 이번 공연의 주인공들이다.

그 중에서도 강미영씨와 김용현씨는 매일 밤 카페에서 노래를 한다. 두 사람은 이미 안동에서는 이름난 가객들이다. 팀 내에서 베이스를 담당하고 있는 조병선씨는 대학시절엔 음악 동아리 활동을 했었고 한때 레코드 가게도 운영했었다. 비록 공간이 크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집에 가는 길에 들을 수 있었던 그의 노랫소리가 생각났다. 주로 팝과 통기타 음악을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그가 이번 앨범의 사진과 디자인을 책임졌다고 하니 넉넉한 웃음소리만큼 재능의 다양함도 느껴졌다. 다른 멤버들의 기타와 노래 실력 또한 공연을 하기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징검다리’와 나눈 공연 뒷담화
공연에서 기타와 노래를 맡았던 김용현씨가 먼저 소주잔을 들며 말했다. “늘 평소에 기타를 치던 사람들이라 한 2주 정도 집중적으로 연습을 했다.” 그의 목소리에 성공적으로 공연을 끝낸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드럼 담당의 배영일씨는 "평소에는 기타를 늘 쳤었는데 이번 공연 때문에 드럼 치는 걸 약간 배웠죠. 하지만 이번 공연은 기타 위주로 편곡이 되어 있어서 드럼이 복잡하지는 않았어요."라며 심벌 하나와 탬버린, 작은 북으로 구성된 드럼의 기본 역할 수행을 이야기했다.

다른 약속으로 약간 늦게 도착한 강미영씨는 “징검다리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면 어디든 갈 겁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끼리 온라인 카페에서 만나기도 하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노천공연과 막걸리 집 같은 곳에서 모여 노래하기도 합니다.”라며 징검다리를 이야기했다.

실제 취재를 위해 노래패 징검다리의 카페를 인터넷으로 검색하자 회원수가 3400명이 넘고 하루 방문자 수만 해도 400명이 넘는 탄탄한 카페를 찾을 수 있었다.

짬뽕 한 그릇에 팔린 노래 ‘삼강주막’
공연 중, 위대권씨의 자작시에 노래를 붙인 ‘삼강주막’의 판권이 베이스를 맡았던 조병선씨에게 넘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본인에게 좀 더 자세히 묻자 그는 "두목에게 앨범 곡 중에서 한 곡만 달라고 했더니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기에 무작정 안동에서 제일 잘한다는 짬뽕집으로 데리고 가 한곡을 받는데 성공했다"며 짬뽕 한 그릇에 판권이 넘어 온 얘기를 웃으며 말했다. 앞에 있던 위대권씨는 “그때 짬뽕이 왜 그리 맛있던지...허허허” 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언제까지나 음악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고파
끝으로 징검다리가 생각하는 음악과 앞으로의 바람에 대한 공통질문을 했다. 그러자 멤버들은 하나같이 “음악을 즐기며 언제든 사람들과 함께 있고 그 속에서 나눔과 정이 넘칠 수 있는 그런 음악을 죽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라며 입을 모았다.

그렇게 인터뷰가 끝나고 나는 아쉬운 마음에 두목이라고 불려지는 위대권씨와 음식점 밖에서 한참이나 대화를 나누다 헤어졌다. 그리고 통기타 음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열정이 지역에서 더 많은 통기타 공연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 징검다리의 1집 앨범
“시노래는 시인의 손끝에서 비롯되어
가인의 가슴으로 스며들어
노래하는 입으로 흘러나오는 감동의 릴레이다”
-안상학 시인-

‘징검다리’ 멤버로 활동 중인 위대권(42)씨와 강미영(35)씨 부부의 1집 앨범이다.
이 앨범에는 안상학, 김소월, 박남준 시인의 시와 위대권씨가 직접 쓴 시에 리듬과 울림을 입힌 9곡의 음악이 수록되어 있다. 통기타의 잔잔한 선율이 감수성을 풍부하게 해 가을이 깊어가는 요즘의 날씨와 잘 어울린다.

앨범에는 다소 흥이 느껴지는 타이틀곡 「밤기차」가 있고, 통기타 소리와 위대권씨의 잔잔한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삼강주막」,「위하여」,「아쿠우야께이」등 다양한 분위기의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아쿠우야께이」라는 재미있는 노래 제목은 옛 안동 사투리 ‘아이쿠어쩌나’ 라는 뜻이다. 또한, 김소월의 시로 만들어진 곡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는 강미영씨의 가냘프면서도 애절한 목소리와 강렬한 음악으로 인해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그동안 지역에서 꾸준히 활동을 해 왔던 두 사람의 새로운 시 읽기는 통기타의 따뜻한 음색과 만나 환상의 하모니를 들려준다.  이 가을, 메말랐던 가슴을 촉촉이 적실 수 있는 통기타로 듣는 시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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