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뱅이 언덕에서 권정생을 그리다
빌뱅이 언덕에서 권정생을 그리다
  • 김석현
  • 승인 2009.11.10 1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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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빌뱅이 언덕 밑에 가면 아동문학가 고(故) 권정생님이 살았던 집이 있다. 자신의 소유로 가진 유일한 재산이었던 7평 남짓한 슬레이트 지붕의 흙벽돌집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분이 귀천(歸天)하면서 남긴 유언에는 이집마저 헐어 자연 상태로 되돌려 줄 것을 당부하셨지만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집은 1983년 필자를 비롯한 송리, 조탑리 마을 청년들이 논흙을 파와 일직교회 마당에서 흙 볏짚 물을 배합하여 진흙덩이를 만들어 벽돌을 찍고 햇볕에 말려 빌뱅이 언덕으로 운반해 두 달 넘게 걸려서 지은 집이었다.

▲故 권정생 선생 생가

이 집을 둘러보면서 마당입구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 26년 전을 회상하니 1983년 8월 조촐한 집들이가 기억난다. 집을 짓느라고 수고한 우리들에게 수고비로 민중서림에서 나온 한한대사전 옥편 한권마다 “4316. 8. 정생 드림” 서명을 하여 주셨다. 또한 필자에게 이곳은 권정생님과 생전에 교분이 잦았던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의 전우익 선생, 영덕의 전국농민회총연맹 권종대 의장, 의성에서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회장 김영원 장로 등 이곳을 다녀간 많은 고인들의 추억이 묻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마당가 한쪽에는 그 당시 심었던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제법 긴 그늘을 지울 만큼 크게 자랐다. 은행열매 조차 주워가는 사람이 없으니 묵은 열매와 햇 열매가 함께 나무 밑에 쌓였다. 붉은 산수유 열매가 가을을 재촉 하듯 주렁 주렁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건만 그 열매를 채취하는 사람 또한 없다. 이제 그분이 귀천한 지 2년 5개월이 지났건만 사람이 살지 않는 텅 빈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마당에 풀 한포기 자라지 않을 정도로 많은가 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우고 가는지는 잘 모르겠다. 또한 살아 생전 그분을 찾아오던 손님들을 보지 못했던 마을 노인네들은 그분이 돌아가신 이후에 관광차를 타고 단체로 오는 손님들이 이렇게 많은 것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눈치이다.

그분이 살아있던 그때에는 집 앞 마당이 풀밭이었다. 심지어 방문 앞으로 이어지는 소로 길도 풀들이 살아 있었다. 사실 그분은 돌맹이 하나 풀 한 포기에도 귀중한 생명이 있음을 알았기에 풀을 가꾸고 있었던 것이었다. 풀 한 포기의 생명도 귀함을 몸소 실천하며 우리들에게 보여주셨던 분이었다. 이곳 텅 빈 집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이 그분의 풀 한 포기도 귀히 여기는 생명정신을 배우고 갔으면 정말 좋겠다.

그저 유명한 아동문학가 한분이 24년간을 살았다는 그 사실 하나 때문에 관광 온다. 수십평 아파트에서 생활해온 대다수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작은집에서 사람이 살 수 있었지?” 수세식 화장실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악취가 나는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지?” 사람 한사람 겨우 누울 공간에서 주옥같은 글들을 쓰셨다는 말을 들으면 모두들 놀라움을 표시한다.

사실 그분은 7평 남짓한 집을 소유 한 것도 부담스러워 하셨다. 그분의 동화 속에 ‘이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라는 글귀가 있다. 그분은 이 세상 모순이 한정된 자원을 서로 자기의 소유로 가지려고 하는 것에서 다툼이 시작된다고 보시고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신 것이다. 그분을 가까이서 지켜본 필자의 기억으로는 한평생 자신을 위해 돈을 쓰시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화려한 외출복 한 벌 없이 검소한 작업복에 검정 고무신 한 컬레로 지내신분이다. 또한 평생 폐결핵의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몸을 위해 보약 한 첩도 고기 한근도 쉽게 사드시지 않은 그런 분이었다. 일직면 조탑리 빌뱅이 언덕아래 이곳은 그런 분이 살다 가신 곳으로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기억되면 좋겠다.

▲김석현(시인)
요즘 국회 국정감사에서 회자되는 정부의 4대강 사업이 마침 녹색사업이나 되는 것처럼 환경사업이나 되는 것처럼 생명사업이나 되는 것처럼, 녹색이니, 환경이니, 생명이니 하는 단어들을 너무나 쉽게, 가볍게 수식어로 쓰면서 그 외에는 살길이 없는 마냥 강행을 주장하고 있어 안타깝기도 하다. 물론 토건족 들이야 건설경기 활성화로 막대한 이문을 챙겨 배불릴 수 있지만 국민대다수가 식수로 쓰는 4대강에 보를 막고 물을 가두는 것은 물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라기 보다도, 물의 생명을 죽이는 사업이 되지나 않을까 몹시도 우려된다. 4대강 사업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추진된다면 언젠가 자연의 대재앙이 우리를 거꾸로 심판할 지도 모른다. 만약 권정생님이 살아 계시다면 ‘흐르는 물길을 그대로 두는 것이 녹색이요. 환경이요. 생명이다’ 고 단호히 말씀하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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