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우뚝 선 산처럼, 휘감는 물처럼"
[포토에세이] "우뚝 선 산처럼, 휘감는 물처럼"
  • 유경상 (경북기록문화연구원 이사장)
  • 승인 2019.02.11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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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에 안겨 있는 학가산'
- 사진에게 말을 걸다 (1)
[사진에게 말을 걸다] - 1995년 가을, 내성천에 안겨 있는 학가산 정상에 서다.
[사진에게 말을 걸다] - 1995년 가을, 내성천에 안겨 있는 학가산 정상에 서다. ⓒ유경상

산도 흘러내린다. 산 등줄기를 타고 함께 흘러내리던 한 두 물줄기가 도랑을 일궈 천(川)과 강(江)을 창조해 낸다.

학가산 최고봉 882m 너머 아래에 내성천이 흘렀다. 모래톱은 마치 거대한 흰 뱀이 구불렁거리듯 땅을 휘감아 기어갔다. 학가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내성천 광경에 눈물을 찔끔거렸다. 아~ 천혜의 산하를 몸으로 깨닫기 시작한 시점이다. 벗들과 함께 오르며 남겨진 1995년 즈음 이 사진을 볼 때마다 감탄이 흐른다.

1987년 이십대 초, 시인 이산하의 <한라산>을 읽으며 ‘분단의 역사’에서 죽임을 당한 자와 죽지 못한 자의 통곡에 분노했다. 청년시절 사람 구실하며 살고자 했으나 뒤돌아보니 추상과 관념이란 울타리에 갇혀 있었다. 2000년 8월 삼십대 중반, 시인 이성부의 <지리산>을 읽으며 ‘산하’와 ‘조국’에 대해 다시 통감했다. 내 가까이 우뚝 서 있어서 언제든지 바라보고 오를 수 있는 학가산을 재발견한 계기가 되었으리라.

백두대간 문수지맥에서 솟아오른 학가산을 안동인은 진산으로 꼽았다. 영주의 앞산이고 예천의 동산이었다. 수많은 승려와 선비가 드나들며 정진하며 유람으로 삼았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흰 모래톱 내성천에 의지해 세 고을의 민초는 마을과 전답을 일구었다. 이젠 물길을 거대한 댐에 가둬 썩히며 모래는 사막화 해 먼지로 날려보내고 있다.

2011년 6월, 군 입대를 앞둔 아들과 학가산을 넘어 내성천에 갔다. ‘살아갈수록 이 땅을 알아야 한다. 이곳은 소백산의 정기가 흐르는 줄기이다. 내성천의 맑은 기운을 받은 대지다. 산줄기와 물줄기를 보고 만지며 이 땅의 사람으로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

들려주듯 중얼거렸지만 내 수준에서 가당찮은 일이다. 그러한 바람을 소망할 뿐이었다. 한 생을 산처럼 강처럼 살아가고 싶은 욕심을 냈으나 헛된 망상에 머물렀다. 잠깐 살아보니 우뚝 서서 맞닥뜨릴 시절이 있고, 고비를 돌며 희노애락을 맛보는 유장한 시절이 있다. 서 있으되 흘러가는 것이 인간사의 일부이다.

지나온 십여 년, 산 속 깊숙이 들어가 강물처럼 살고 싶었다. 내성천을 건너고 학가산 골짜기 그 언저리에 숨어살고 싶었다. 소백의 산줄기와 내성의 물줄기에서 살아갈 날이 곧 오리라는 상상만 키우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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