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을 꿈꾼 도덕군자’ 인동장씨 문중특별전
‘실천을 꿈꾼 도덕군자’ 인동장씨 문중특별전
  • 김용준 기자
  • 승인 2019.07.0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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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진흥원, 인동장씨 남산파 문중전 개최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조현재)73()실천을 꿈꾼 도덕군자라는 주제로 인동장씨 남산파의 문중특별전 개막행사를 개최한다.

조선중기의 대학자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637)을 비롯해 조선예학을 크게 발전시킨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1815~1900), 일제강점기에 파리장서의 초안을 작성한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1851~1926)에 이르기까지 인동장씨 남산파의 관련 자료 100여 건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 성리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여헌 장현광과 관련된 자료를 집중 소개한다. 16세기의 조선 성리학계에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율곡 이이가 있다면 17세기에는 여헌 장현광을 꼽는다. 그는 성리학자이면서 과학사상가로, 열여덟 살에 우주원리와 인간의 관계를 밝힌 우주요괄첩宇宙要括帖을 저술할 정도로 뛰어난 학자였다.

그의 저서 중 역학도설易學圖說은 그를 조선 역학의 1인자로 만들어준 역작이며, 성리설性理說은 조선성리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장현광은 평소 스스로의 인격완성을 기반으로 한 도덕적 실천을 강조했다. 그가 추구했던 학문적 목표는 이념적 세계에만 그치지 않고 현실세계에서 구체적인 실천 행위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163612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여러 군현에 통문을 보내 의병을 일으키게 하고 군량미와 음식, 군수 물품을 모아 보냈다. 그러나 이듬해 2월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땅을 치면서 하늘도 땅도 없어졌으니 어디로 가면 좋으랴!” 하며 통곡하고는, 동해안 입암산으로 들어가 반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장현광의 사상은 인동장씨 남산파 후손들에게 계승되어 가학家學 전통으로 이어졌는데, 예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미헌 장복추는 생활과 직결되는 가례 · 가훈 · 인륜 등과 같은 실천예학을 중시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장복추의 가례보의家禮補疑가 소개될 예정이다. 이 책은 주자가례의 상례에서는 다루지 않은 실제 의례과정에서 발생하는 변례變禮를 보완해둔 것으로, 우리나라의 실정을 잘 반영시킨 독자적인 예서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 때 회당 장석영은 1919년 프랑스 파리만국평화회의에 보낸 독립청원서인 장서의 초안을 작성했는데, 그 일로 성주경찰서에서 심문을 받고 대구교도소로 이송되어 징역 2년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그는 당시의 일을 흑산일록黑山日錄이라는 옥중일기에 남겼는데, 이 책에 파리장서 초안이 수록되어 있다.

이처럼 도덕에 바탕 한 인격완성과 이를 현실에서 실천하고자 했던 가학 전통은 후손들에게 이어져 다양한 영역에서 구현되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인동장씨 남산파 사람들이 추구했던 군자君子로서의 시대적 소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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