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산 김창숙 선생 강연회’ 개최
‘심산 김창숙 선생 강연회’ 개최
  • 김용준 기자
  • 승인 2019.08.2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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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군 성주문화회관에서 21일 오후2시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관장 김희곤)은 성주의 김창숙 선생을 ‘2019년 경북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821() 오후 2시부터 성주군 성주문화원에서 강연회를 개최한다. 강연회에서는 심산 김창숙기념관의 홍윤정 학예연구실장이 김창숙 선생의 삶과 독립운동에 대해 강연한다.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 출생인 심산 김창숙(金昌淑, 1879~1962) 선생은 제1·2차 유림단의거를 주도한 유림 독립운동의 상징이다. 선생은 1907년 성주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08년에는 대한협회 성주지회를 조직하였다.

19193.1운동이 일어나자 선생은 유림들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제1차 유림단의거(파리장서운동)를 주도하였다. 선생은 유림 137명의 서명을 받은 연서(連署)를 중국 상해로 가져갔고, 이를 영문으로 번역하여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된 김규식에게 보냈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선생은 임시의정원 경상도의원를 맡아 활약하는 한편 대중국 외교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1925년 김창숙 선생은 만주와 몽고 국경지대의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필요한 군자금 모집을 위해 국내로 들어왔다. 그러나 20만원을 목표로 한 군자금은 3,000여 원에 지나지 않았고, 이에 선생은 민족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의열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나석주의거를 지원하였다.

1927년 김창숙 선생은 상해 공제의원에 입원 중 붙잡혀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4년 형을 선고받은 선생은 대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1934년 질병으로 가출옥하였다.

그러나 1945년 건국동맹 관련으로 다시 붙잡혀 해방 이후 출감하였다. 광복 이후 선생은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하는 등 민족재건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반독재 민권운동을 전개하였다. 평생을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선생은 1962년 향년 84세로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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