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편지'
'우리 시대의 편지'
  • 백소애 (기록창고 편집인)
  • 승인 2019.10.1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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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편지 (1)

이제 우편함엔 고지서와 각종 홍보물만이 들어있는 시대다. 그나마 고지서도 이메일이나 모바일로 받는 경우가 많다. 2018년 12월 지금 현재, 우표 값이 얼마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나마 보낼 우편물이 있어도 우표 대신 우체국에서 발급하는 가격표 스티커를 붙이는 걸로 끝나니까. 자신의 역할이 부조금을 품는 것이 아니라 편지를 품는 것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편지봉투는 이제 우편번호란이 없어진 채로 제작이 되고 있다. 우체국이 아니면 네모 5칸이 그려진 봉투를 찾는 것도 어렵다. 이 글은 침 바른 혀끝으로 우표를 붙여본 적이 있거나, 6자리 우편번호에 익숙하거나, 새주소체계로 바뀌기 전의 몇 동 몇 번지에 익숙하거나, 풀이 없어 밥풀을 이용해 편지봉투를 붙여본 적이 있거나, 언니 오빠 몰래 뜨거운 수증기에 연애편지 봉투를 몰래 열어본 세대에게 바치는 연서다.

편지는 일기와 함께 가장 사적인 기록 중에 하나다. 국어사전에는 ‘상대에게 전하고 싶은 안부와 용무, 소식 따위를 적어 보내는 글’이라고 정의한다. 예로부터 서한, 서간문, 서찰로도 불렸다. 주로 개인과 개인 간의 연락 수단이자 교류, 소통의 수단이었다. 의견을 주고받기도 하고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교감을 나누기도 했다.

퇴계 이황이 손자 안도에게 보낸 편지와 기대승과 나눈 편지, 자신의 머리로 미투리를 삼은 원이엄마의 남편 이응태에 대한 그리움의 편지, 이오덕과 권정생이 주고받은 편지 등 안동에서도 널리 알려진 편지 이야기들이 많다. 우리는 그러한 내밀한 기록을 통해 시대적 상황과 그들의 개인사를 알게 된다.

우표.

근현대사의 아픈 세월을 함께 해 온 편지

분단의 국가에서 이산의 아픔을 겪은 우리 민족에겐 ‘부치지 못한 편지’의 사연이 깊다. 생사를 알 수 없는 가족에게 편지를 쓰고, 그렇게 쓴 편지를 보내지도 못한다.

월남으로 파병 간 아들이 부모에게 혹은 남편이 아내에게,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난 산업역군이 가족에게, 독일로 떠난 간호사와 광부가 남겨진 가족에게 그리고 고향을 떠나 서울 어디 허름한 공단에 취업한 자식이 부모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개인사뿐만 아니라 우리 근현대의 모습을 비출 수 있는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는 것이다.

편지는 당선, 합격, 축하처럼 기쁨을 알리는 경우도 많지만 부고장, 계고장, 경고장, 입영영장처럼 받는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경우도 많다.

2018년 현재 우체국에서 30원에 판매되고 있는 편지봉투

방학의 불행은 행운의 편지로 시작된다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문어는 삶아야 제 맛이고 방학은 행운의 편지로 시작해야 제 맛이라던가. 발신자가 없거나 별로 친하지 않은 같은 반 아이에게 편지를 받을 때면 불길한 기운을 떨칠 수 없었을 것이다. 친한 친구에게서 받으면 배신감마저 드는 그 편지. 똑같은 편지 7통을 4일 안에 보내지 않으면 끔찍한 불행이 온다는 악담을 서슴지 않던 행운의 편지였다. 보낸 사람에 대한 응징 따위는 잊고 얼른 이 불행을 걷어낼 생각에 손가락 아프게 베껴 써내려갔던 편지. 아마도 무료한 방학을 보낼 것이라 오지랖 넓게 생각한 아이들에게서 시작된 일이 틀림없다고 믿었던 시절이다.

러브레터

지금의 홈플러스 자리에 있던 학다방, DJ가 있던 이층에서 본 거리, 안동 찜닭골목 사거리 그문화 다실에서 조지 윈스턴을 들으며, 혹은 맘모스 제과 앞 CNC에서 토스트를 먹으며, 것도 아니면 시내 옥류관 앞 아뜨리에 커피숍에서 성냥을 쌓으며, 청춘들이 함께 했던 공간에는 낭만과 함께 사랑도 꽃피었을 것이다.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에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 암담한 현실, 어긋난 사랑에 대한 괴로움이 함께 있었으리라.

편지가 문학성을 담보로 한 것은 아니지만 당대의 유행하는 시와 에세이가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청춘들의 편지에 인용이 많이 되곤 했다. 1986년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1987년 서정윤의 《홀로서기》는 편지 속에 자주 등장 했다. 물론 윤동주, 황동규, 이해인 등도 많이 등장했으며 1990년대 들어서는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의 원태연과 같은 대중가요 스타일의 시가 많이 인용되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사진03_05>

영화 속 편지

이와이 슌지 감독의 1995년 영화 《러브레터》는 죽은 첫사랑에게 보낸 편지에 답장이 오게 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난 잘 지낸다. 당신도 그곳에서 잘 지내냐’는 물음에 답은 오지 않지만 죽은 첫사랑과 같은 이름을 한 사람에게서 편지는 온다. 2003년 개봉한 곽재용 감독의 영화 《클래식》에서는 대필해 준 편지로 인해 사랑에 빠지게 되는 1968년의 엄마와 2003년의 딸, 두 모녀의 이야기가 나온다. 편지라는 매개체로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을 전해주는 두 영화는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데 있어 편지만큼 낭만적이고 진실하게 호소할 수 있는 도구가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이유 〈밤편지〉

모바일 시대의 편지

김광진의 노래를 좋아한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로 시작하는 〈편지〉를 특히 좋아한다. 이별도 낭만이 될 수 있던 시대를 지나 소통의 어려움에 직면한 현대인들이 비대면 커뮤니티에서 활발한 대화를 나누는 시대다. 카카오톡의 1이 사라지나 안 사라지나, 페이스북의 좋아요가 많은지 안 많은지, 아프리카TV의 별풍선을 받는지 못 받는지,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가 많은지 안 많은지가 중요한 일과가 돼버린 지금 말이다.

또박또박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전했던 진국 같은 마음의 울림을 요즘 세대는 알까 싶은데, 〈밤편지〉가 흘러나온다.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보낼게요’하고 아이유가 노래한다. 하 많은 사람과 관계 속에서 어쿠스틱한 감성이 제법 남아있음을 깨닫는 어느 겨울밤이다. 그리고 이런 날은 옛날처럼 편지 한 장을 써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 <기록창고>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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