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편지함'
'받은 편지함'
  • 백소애(기록창고 편집인)
  • 승인 2019.10.1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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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편지 (2)

소심한 성격만 아니었더라면 나에겐 더 많은 일기와 편지가 남겨져 있을 것이다. 개학을 하루 앞두고 몰아쓰기 신공으로 쓴 일기로 상을 받을 정도였으니 그리 수준이 낮진 않았을 거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아둔 일기장은 어느 여름방학, 성냥불에 태워지는 운명을 맞게 된다. 친척 언니 오빠와 우리 남매들이 둘러앉아 만화책 보듯 다음 권을 독촉한 것은 만화책도 아니요, 바로 나의 일기장이었던 것이다. 그 길로 불태워버린 일기장이 꽤 되었고 남아있으면 안된다고 자체 판단한 편지도 함께 운명을 다했다. 거기엔 옛 남자친구의 편지, 싸웠던 친구의 편지, 남자사람친구가 입대하고 난 뒤 싱숭생숭한 마음을 전했던 편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사와 대청소, 결혼을 하면서 자신의 일기와 편지, 사진 따위를 본가에서 분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 와중에 분실하거나 혹은 없애버리기도 한다. 대청소를 하다가 옛날 사진과 편지 따위에 정신이 팔려 정작 청소를 못했던 경험도 많을 것이다. 일기에 오롯이 ‘나’에 대한 많은 것이 담겨있다면 편지는 나와 관계했던 사람들에 대한 내용과 함께 교감했던 이야기, 함께 나누었던 당시의 고민, 문화, 소식이 담겨있다. 보낸 사람도 받은 사람도 까마득한 받은 편지함을 들춰내 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안동에서 청도 5학년과 펜팔을 했다.
안동 영가국민학교 5학년 때 청도 중앙국민학교 5학년과 펜팔을 했다.

펜팔의 추억

소개팅, 미팅, 반팅이 있었다면 학교와 반별로 이뤄진 단체 펜팔도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4반 때, 청도의 5학년 4반 친구와 펜팔을 했다. 펜팔 친구는, 자신의 소개와 함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 고장의 명물에 관해 소개를 해놓았다. 복숭아가 많이 나고 공장이 없어 공기가 좋다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편지에는 가족이 6명이며, 반공포스터 그리기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육상선수로 활약하고 있고, 자신이 분단장이라는 얘기로 마무리 되었다. 학창시절에는 편지가 학생들의 정서함양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서인지 위문편지, 학교별 펜팔 등을 적극 권장하곤 했다.

1991년 3월 17일 일요일, 점촌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 초대권
1991년 3월 17일 일요일, 점촌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 초대권

안녕, DJ

1980~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 중, MBC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를 한 번도 듣지 않고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 있을까. 밤 10시면 프랑크 푸르셀의 〈Merci Cerie메르시 쉐리〉 시그널이 어김없이 흘러나오곤 했다. 지역에서는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아닌 안동MBC 권중기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려줬는데 질풍노도의 시기에 우리는 그것이 항상 불만이었다. 이문세의 별밤이 아니라서 듣고 싶지 않다곤 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권중기의 별밤도 고정 팬 층이 탄탄해 사연 채택은 쉽지 않았다. 사연과 신청곡이 채택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껏 멋을 낸 우편엽서에 부단히도 사연 담은 신청곡을 DJ에게 띄우곤 했었다.

법상동 입구의 아세아 레코드와 아름드리 레코드, 삼산동의 궁상각치우 등에서 좋아하는 곡으로 플레이리스트를 채운 테이프를 구입하기도 하고 라디오에서 신청한 신청곡이 흘러나오면 녹음버튼을 눌러서 녹음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간혹 간주에 DJ의 목소리가 녹음된다거나 채 노래가 끝나기 전에 광고가 나온다거나 하면 그때까지 녹음했던 것은 모두 헛일이 되어 분노를 했던 기억이 난다. 오토리버스가 되는 마이마이(mymy)에 좋아하는 곡으로 꽉 채운 테이프 하나로 즐거워했던 그 시절, 경쟁자를 물리치고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에 다녀온 친구가 자랑하며 보낸 초대권. 초대가수는 유열이었던 모양이다. 친구는 유열의 팬이었다.

직접 만들어서 주고받았던 크리스마스 카드
직접 만들어서 주고받았던 크리스마스 카드

메리 크리스마스카드

예전에는 직접 만들 정도로 정성이 깃든 크리스마스카드를 많이 주고받았다. 검은색 종이 위에 흰색 물감을 묻힌 칫솔을 흔들어 뿌리면 하얀색 눈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연말이면 친구, 친척들과 크리스마스카드 혹은 연하장을 주고받는 것이 연례행사 중 하나였다. 특히 방학 중에는 담임선생님께 편지를 보내기도 했는데, 40명이 넘는 반 친구들에게 일일이 답장하기 힘들었을 고충은 생각도 안하고 복사지에 이름만 다르게 해서 보내온 답장에 실망했던 기억이 새롭다.

우편엽서
우편엽서

엽서

엽서는 봉투에 넣지 않고 그대로 보낼 수 있는 카드형식의 우편이다. 관제엽서, 그림엽서, 봉함엽서, 왕복엽서 등이 있었다. 관제엽서는 정부에서 즉 지금의 정보통신부 산하 우정사업본부(옛날 체신청)에서 만든 우편엽서를 말한다. 편지보다 간결하게 쓰고 짧은 소식을 전할 때 혹은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거나 경품 응모, 공지사항 전달에 긴요하게 쓰였다. 봉투에 넣지 않다보니 중요한 사연이 오가거나 하진 않았다.

롤링페이퍼
롤링페이퍼

롤링페이퍼

주로 졸업시즌이나 모꼬지라 불린 MT에 가서 캠프파이어로 분위기를 고조시킨 후 친목도모를 이유로 학창시절 한 번씩은 해보는 롤링페이퍼.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이유에서 솔직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데 그래도 대부분은 덕담 위주의 메모를 남기곤 한다.

1989년 도서출판 오선에서 발행한 《대중가요》
1989년 도서출판 오선에서 발행한 《대중가요》

애독자 펜팔코너

1980~90년대는 통기타교본으로 독학을 하던 시대였다. 언니가 과외를 하고 산 세고비아 기타는 우리 오남매에게도 정복의 타깃이 되었다. 통기타 입문은 바로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로 시작하는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기본중의 기본 코드로 진행되는 이 노래는 C코드로 시작해 Am를 짚고 Dm를 넘어서 G7코드로 반복되는 통기타 초보가 꼭 넘어야만 하는 코스인 것이다. 당시 유행했던 《대중가요》, 《최신가요》, 《포크송대백과》 따위의 통기타 교본 뒤에는 펜팔코너가 따로 있었다. 자신의 이름과 나이, 직업, 취미생활, 주소를 밝히고 펜팔을 원하는 대상까지 실려 있었다. 그 대상에는 모든 분, 이성 친구부터 펜벗까지 다양했다. ‘펜벗’이라 함은 그냥 편지만 주고받는 친구를 원한다는 내용으로 보인다. 관계의 경계 시대가 되어버린 요즘에 보기 힘든 낭만이었다.

이메일의 시대

그렇게 펜팔이 한 시대를 풍미한 뒤 컴퓨터가 등장하고 변화가 생긴다. 하이텔(KT통신), 천리안(데이콤), 나우누리(나우콤) 등 ‘삐~ 삐리리리’소리를 내며 전화선을 타고 접속하던 PC통신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하이루” “방가방가”가 유행하던 채팅문화의 전성기가 1990년대 중후반 유행을 하고 세기말, 밀레니엄 시대를 앞두고 다음 한메일이 무료계정 보급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2000년대 본격적인 인터넷 활성화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사서함 등으로 보내는 군 위문편지가 아닌 이상 더 이상 손편지를 쓰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 휴대폰이 일반화 되면서 안부인사도 편지로 할 이유가 없어졌다. 사람들은 ‘아이러브스쿨’로 동창생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스카이 러브’로 채팅하고 ‘프리챌’로 대화를 나누고 ‘싸이월드’로 일촌을 맺고 소식을 주고받았다. 휴대폰으로 충전했던 도토리가 무용지물이 되고 네이버, 다음 등의 포털사이트 시대가 되면서 이메일이 대중화 된다. 사람들은 SNS로 실시간 대화를 나누고 모바일 청첩장을 보낸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매일 아침 메일함을 열어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열어본다. 10년도 훨씬 더 된 언젠가 친구가 신청한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습관적으로 열어본 세월이 벌써 그렇게 된 것이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 고도원 씨가 ‘좋은 글귀 하나가 하루를 행복하게 한다. 때로는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2001년 8월 1일부터 시작해 매일 아침 이메일로 인상적인 글귀에 의미 있는 짧은 단상을 덧붙여 보내기 시작한 편지다. 현재는 38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아침을 열어주고 있다.

2018년의 크리스마스 씰
2018년의 크리스마스 씰

크리스마스 씰

크리스마스시즌이면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씰을 구입할 수 있다. 결핵퇴치 모금운동의 일환으로 진행된 크리스마스 씰을 우표 옆에 가지런히 붙여 보내곤 했다. 지금도 학교에서 필요한 학생들에게 판매하곤 하는데 얼마 전 초등1학년 조카가 3,000원에 10개를 들고 왔다.

할머니의 생신을 축하하는 손녀의 편지
할머니의 생신을 축하하는 손녀의 편지

편지, 그 느림의 미학

할머니, 할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엄마에게 축하인사를 강요받은 아이들이 쓰는 편지가 그나마 요즘 볼 수 있는 손편지가 되어버렸다. 오늘 부치면 내일 도착하는 세상에 살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는다. 이메일 시대에 하루 한번은 꼭 받은 편지함을 확인 하면서도 말이다.

누군가 글을 잘 쓰려면 ‘필사’를 하는 게 제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성실하게 한 글자씩 따라 쓰다보면 글을 쓴 사람의 문장력을 습득하고 글의 행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편지의 서두는 언제나 날씨로 시작한다. 봄에는 벚꽃, 개나리 등의 꽃이야기로 여름에는 더위 이야기로 가을에는 낙엽과 단풍, 겨울에는 흰눈과 추위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곤 한다. 그건 누군가를 만났을 때 밥은 먹었냐, 로 시작되는 우리네 정서와 맞물려 있음이다. 손글씨로 보낸 편지는 필사하듯, 천천히 받는 사람을 오롯이 생각하며 쓴 글이므로 그렇게 음미하듯 받아보는 즐거움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 2018년 겨울호 <기록창고>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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