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튀는 ‘막걸리戰’ 이야기
톡톡 튀는 ‘막걸리戰’ 이야기
  • 배오직 기자
  • 승인 2010.04.23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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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펼쳐지는 그들만의 리그

바람 불고 어둑해지는 비 오는 날은 마음이 바쁘다. 젊은 군상들이 시장 안을 바쁘게 찾는다. 스멀스멀 골목 안을 가득 메운 생선 냄새와 배추전 부치는 바쁜 소리로 대포집이 늘어선 그곳엔 ‘술쪼’(酒組)들로 구성된 이른바 그들을 위한 리그가 시작된다.

잠시 인기가 식어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고교야구처럼 새로운 신생팀들이 생겨 그 리그의 인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바로 술쪼들의 구미를 당기는 막걸리 리그전이다.

요즘 리그의 특징이라 하면 예전의 전통막걸리 단일리그를 넘어 여러 종목들이 뒤 섞인 퓨전리그까지 등장하며 세대간 양대리그를 형성하고 있는데 눈여겨 볼만한 다양한 관전 포인트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의 양상을 보면 전통적 강호들의 강력한 재등장과 함께 ‘참살이’ 라는 신무기를 장착한 신진세력들의 무서운 상승세라고 요약할 수 있다.

전통적 강호들은 소규모 단일 품종을 내세우며 전국 방방곡곡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이에 신진들은 다품종 대량생산으로 맞서 막걸리 리그전에서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다. 이들 양대리그의 특징은 한결 같이 질 좋은 ‘세균전(효모균)’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 자가 양조 금지로 전통주 비틀
광복 후, ‘식량관리법’으로 일본식 개량주가 점령

그런데 이 ‘세균전’은 달리 해악이 아닌 우리 몸에 좋은 구실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본래부터 우리나라의 세균 다루는 전술(?)은 가히 세계적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막걸리에 있는 세균, 즉 효모는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필수 아미노산과 비타민, 무기질 등이 포함되어 있어 젊음을 유지하고 장수를 돕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때 우리 민초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한 650여 종이 넘는 전통의 강호들은 1909년 2월 일제가 자가양조를 금지하라는 터무니없는 리그규정(주세법)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가슴에 울분을 머금은 채 몸 사리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광복 후에도 친일세력의 득세로 인해 편파적인 리그규정의 골격은 유지 되었다. 한국전쟁 후에도 식량부족을 이유로 아쉽지만 새로운 리그규정(식량관리법)이 생기면서 밀주 단속이 표면화 되었는데, 이러한 여러 이유로 우리의 전통의 강호들은 점점 정통성을 잃은 채 일본식 술 빚기에 물들었고 결국에는 국적 불명의 획일적인 개량주들이 우리의 막걸리 리그를 잠식하게 되었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 판매되는 술의 종류들은 많게 잡아도 100여 가지 남짓으로 보여 지는데 조선후기 당시 우리 술의 가지 수가 650여 종이 넘었다니 가히 술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좋겠다.

비 오는 날 펼쳐지는 그들만의 리그

술의 어원을 살펴보면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으나 술을 빚는 과정, 즉 찹쌀을 쪄서 식힌 후 누룩과 주모(酒母)를 버무려 섞고 일정량의 물을 부어 발효시키는데 이때 열을 가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술 단지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현상을 보고 물에 난데없이 불이 붙어 끓는다는 뜻의 ‘수불’이라고 했을 것이다.

어원의 형태적 변화는 결국 수불이 수블>수울>수을>술로 변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질시루’에서 출판된「아름다운 우리 술」을 참조 하시라)

우리나라 문헌 가운데 술이 처음 등장하는 기록은 고려 충렬왕 13년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帝王韻紀,1287년)이다. 고구려 시조 주몽(朱夢)의 탄생설화와 관련되어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가 하백(何伯)의 세 딸의 아름다움에 반해 궁궐을 짓고 술대접을 했는데 이 때 술에 취한 유화가 해모수에게 반하여 눌러 살다가 그 후 낳은 이가 있으니 바로 주몽이라는 얘기다.

이후 고려 후기부터는 집에서 술을 빚는 가양주(家釀酒)라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고 재료도 멥쌀 위주에서 찹쌀로 바뀌었고 또한 한번에 술을 빚는 단양주법(單釀酒法)에서 여러번 덧술을 입혀 빚는 중양주법(重釀酒法)으로 변화했다. 이렇듯 발효에 따른 효모를 증식시켜 이용하는 중양주법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집집마다 독특한 비법의 가양주들이 탄생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추측된다.

걸쭉한 이화주를 아시나요

우리가 흔히 막걸리라 부르는 탁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술의 하나이다. 이미 삼국시대에 술 빚는 기술이 정착되었고 술을 빚는 과정으로 보아 크게 탁주와 청주로 구분해 본다면 탁주류가 먼저 즐겨 음용되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동양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계명주(鷄鳴酒), 미인주(美人酒) 등은 모두 곡물을 주재료로 하여 빚는 탁주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점차 사람들의 기호에 맞는 다양한 맛과 향, 알코올 도수 등 보다 발전된 모습으로 변모했다.

탁주를 만드는 순서로는 크게 4가지를 들 수 있다. 그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 언급하기 어려우나 첫째, 누룩 만들기 둘째, 누룩 띄우기 셋째, 곰팡이를 제거하는 법제 넷째, 술 거르기를 들 수 있다.

탁주라는 말보다는 막걸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탁주류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술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즉 ‘막되고 박한 술 또는 함부로 아무렇게나 걸렸다’ ‘술 빛깔이 흐리고 탁하다’ 는 뜻에서 탁배기, ‘일반 가정에서 담그는 술’ 이라는 뜻의 가주, ‘술 빛깔이 우유처럼 희다’ 는 뜻의 백주, ‘농사일에 널리 쓰는 술’ 이라는 의미의 농주 등 여러 이름으로 쓰인다.

반면 고급탁주로는 순두부만큼이나 걸쭉한 이화주(梨花酒)를 비롯하여 추모주(秋?酒), 혼돈주(混沌酒)가 대표적이다. 용수라는 도구로 청주를 뜨고 난 후 이양주(二釀酒)와 삼양주(三釀酒), 사양주(四釀酒) 등 중양주의 술지게미에 물을 타서 짜내면 막걸리 형태의 고급탁주가 된다.

이와 같은 전통 탁주류는 약간의 단맛과 신맛, 쓴맛, 떫은 맛, 매운 맛 등의 오미(五味)를 느낄 수 있다. 서양과 달리 주재료들을 모두 달리하여 향보다는 맛에 우선을 두었다는 점은 선조들의 탁월한 미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람 냄새 풍기는 신(新)대포문화를 꿈꾸다

최근에는 가히 신진들의 상승세가 전통의 강호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역전(歷戰)의 ‘술쪼’들에게는 크게 환영받진 못하지만 젊은 층이나 여성들을 상대로 다양한 색과 맛으로 그들만의 밤 리그에 스며들고 있다.

유기농 현미막걸리에 딸기, 키위, 파인애플, 구기자, 산수유, 오미자등 다양한 과일을 섞는 막걸리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여기에 오가니(술 찌꺼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하는 최신기계의 개발로 여성 및 신세대 소비자들이 보다 쉽게 즐길 수 있는 다양성과 접근성까지 갖추었다.

대포(大匏)란 큰 바가지 술잔이란 뜻이다. 우리의 술잔은 아는 것 보다 훨씬 크다. 이름 하여 대포라고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문헌에 보면 세조(世祖) 때 여진족을 토벌하고 돌아온 신숙주에게 궁벽을 타고 오르던 달덩이 같은 박으로 대포를 만들어 막걸리를 가득 붓고 입을 번갈아 대며 취하도록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그랬기에 생사고락을 함께 약속한 사이를 대포지교(大匏之交)라고 부른다. 신명(神明)과 어우러져 누구나 마실 수 있었던 술의 보편성을 신인결합(神人結合)이라는 의리의 다짐이요, 공동체 운명을 확인하는 의식용 술잔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각설하고,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우리들만의 막걸리 리그를 돌아보면서 수십 년간 상실했던 막걸리 문화가 강력하게 재등장하고 있는 지금, 어쭙잖은 민족주의가 아닌 그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민초들의 심정으로 우리의 대포문화로 부흥했으면 하는 바람을 말하고 싶다.

우석훈 교수가 말하는 ‘88만원 세대’를 보면 이미 기성세대로 편입된 소위 386세대와 90년 초반의 이른바 X-세대들이 현재 20대들을 착취하는 구조로 우리 사회를 규정한다. 얼핏 들으면 섬뜩한 얘기지만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모습을 곰곰이 살펴보면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오로지 승자만이 용인되고 패자는 도태되어 재기조차 어려운 냉혹한 경쟁 속에 지쳐 지금도 어느 대포집에 둘러앉아 초라한 현실과 암울한 미래를 막걸리 사발로 삼키고 있을 그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리다.

바라는 바,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큰 술잔에 막걸리를 가득 붓고 한 순배씩 돌려가며 희망과 낭만을 들이키며 시대와 정의를 논했으면 좋겠다. 한 판 경쟁에서 패했더라도 흔쾌히 또 한 판 패자부활전으로 기회를 주는 막걸리 사발만큼이나 넉넉하고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신(新)대포지교를 꿈꾸는 그들만의 리그규정을 만들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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