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당에 앉아 옛 그림 더듬으니 무엇 하나 걸림이 없다
강당에 앉아 옛 그림 더듬으니 무엇 하나 걸림이 없다
  • 김선남
  • 승인 2010.04.2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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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탐방>어울러져 자연스럽게 흐르는 ‘고산서원’

▲안동광음리 고산서원

안동에서 대구방면으로 옛길을 따라서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넓게 흐르는 미천을 따라 작은 길을 걸어 들어서면 조용히 봄바람이 팔에 감긴다. 바람결에 묻어오는 강물 냄새도 오늘은 달갑다. 바람느낌이 좋다.

아~ 이제 정말 봄인가 보다. 햇살 반짝이는 날이었다면 이제 막 물오르기 시작한 고목의 연두 빛이 눈부시겠지? 내가 느끼는 봄의 빛깔은 꽃이 아니라 검은 고목의 마디 끝에 매달린 연두 빛 새순에서 부터 찾아온다. 꽃은 저 혼자 아름답지만 연두 빛 새순은 고목까지 아름답게 만든다.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 34번지, 고산서원. 봄바람에 이끌려 고산서원으로 들어서면 그 바람이 전해주는 향긋한 솔향기에 머리를 들어 올려다보게 된다. 키 큰 소나무는 시끄러운 세상과 경계라도 만들듯 서원을 호위하는 듯 우뚝하다. 학문하는 공간이라 마을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다.

▲ 고산서원은 정조13년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고산서원 향도문(響道門) 앞의 큰 돌들은 서원 철폐령 때 훼철된 정허루의 초석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한다. 고산서원은 1789년(정조 13)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 ~ 1781)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선생이 학문과 후진양성을 위해 건립했던 고산정사 자리에 짓게 되었다. 선생의 본관은 한산(韓山)으로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이며 퇴계 학맥을 이은 학자이다.

“대산 문인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영남의 선비로 언행이 겸손하고 눈빛이 단정하여 묻지 않아도 대산문인임이 드러났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가까운 일직면 망호리에 선생이 태어나신 한산이씨 대산종가가 있다.
▲향도문 앞의 큰 돌들은 서원 철폐령 때 훼철된 정허루의 초석으로 추측된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복원 되면서 이상정 선생의 아우 이광정도 추가 배향되었다 한다. 고산서원은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형태를 띠고 있다. 동, 서재를 비롯하여 사당인 경행사(景行祠), 전사청, 주사(廚舍)가 있다.

마음보다 더 바쁜 걸음은 벌써 서원 안을 향한다. 서원의 넓은 마당을 차지한 봄날의 햇살이 동무 해줄 듯한 넉넉함, 그 가운데 앉아 오늘을 즐기는 내가 세상의 시간을 잠시 잊어도 좋을 듯만 하다. 지나간 것들에 대한 아련함 보다는 지금 가진 것만으로 충분히 따사로운 곳이다.
▲서원 앞을 흐르고 있는 미천, 연두빛 새순은 고목까지 아름답게 만든다.

내 바쁜 걸음에 나 혼자 피식 웃음을 흘리게 만들고 담장 너머로 건너온 작은 다리는 벌써 잊은 지 오래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 고요가 적막하지 않은 것은 봄날의 기운이 이곳에 있고 아직 남아있는 서원 곳곳의 풍경들이 자리를 지키기 때문이리라.
▲높은 산은 완만한 곡선으로 편안하게 눈길 잡아주며 유난히 느긋하게 흐른다.

고산서원의 강당에 앉아 옛 그림을 더듬어 그리다보면 바람결에 소나무향기 나풀거리며 담장을 넘어와 내게 안긴다. 높은 산은 완만한 곡선으로 편안하게 눈길 잡아주며 그 산위에 걸린 구름조차 오늘은 유난히 느긋하게 흐른다. 무엇하나 걸림 없는 풍경이다.

본다는 것은 그것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옮겨 담는 것일 게다. 욕심 없이 바라보면 그저 낮은 담장하나에서도 아름다움을 만나게 된다. 절경이 있어 아름다운 풍경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 어울러져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 아름다운 풍경 이란 것을 고산서원은 말해주는 듯하다.

* 김선남, ‘엉뚱나미의 심심한 동네’ <blog.naver.com/snk8513> 파워블로그 운영자

* 주변 볼거리는 일직면 망호리에 한산이씨대산종가, 소호헌이 있으며, 조탑동오층전탑도 가까이에 있다. 안동으로 들어오는 길에 안동마령동기와까치구멍집과 낙암정도 만날 수 있다.

* 찾아가는길 : 안동에서 대구방면으로 국도를 따라가다가 암산유원지 방면으로 구 도로로 내린다. 암산유원지 굴다리를 지나 유원지로 들어가는 작은 다리를 따라 들어가면 유원지 위쪽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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