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꼭 해야 할 일
지금 꼭 해야 할 일
  • 김태선
  • 승인 2010.06.0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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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정서행동치료사)
벌써 십년 전이다. 어린이날 행사 준비관계 등 딴에는 시민운동을 한다는 핑계를 대며 무지 바쁜 척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걸려온 언니의 전화는 ‘니가 아니라도 그 일을 할 사람은 있다. 여기 니가 꼭 돌봐줘야 할, 너 같은 사람들이 살펴줘야 할 애들이 있으니깐 빨리 와 봐라’부탁을 받고 마지못해 찾아간 곳이 지금 십년 째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곳. 안동시종합사회복지관이 운영하고 있는 장애아동들의 ‘늘푸른교실’ 이었다.

담당 복지사는 아무 설명도 없이 아이들이 있는 교실로 나를 데리고 갔다. 사실 복지관이 집 바로 근처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세 평 정도도 채 안될 정도의 작은 교실 안에 여섯 명의 아이들이 우리가 들어가자 웃음을 띠며 미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선생님’ 하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장애가 무엇인지 길거리에서 가끔씩 마주치는 사람들의 모습만 보고,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내게 아이들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앞으로 너네들과 함께 지낼 선생님이란 소개 한마디에 여섯 명의 아이들은 ‘선생님, 선생님’ 하며 반가워했다. 다운 증후군, 자폐, 뇌성마비, 발달장애, 정신지체, 발달장애... 그날 처음으로 정신지체장애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알았다.

아이들의 말을 거의 알아듣지도 못한 상태에서 두 시간을 보내고 나왔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것도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내가 저 애들을 돌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과는 달리 ‘오시는 분마다 몇 달을 못 견디고 가셔서 아이들이 상처를 많이 입는다’ 는 관장수녀님의 말씀에 불쑥 “제가 저 애들과 10년같이 놀죠.”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많은 아이들이 오고갔다. 이름조차 듣지 못했던 장애를 가진 많은 아이들이 짧게는 몇 달을, 길게는 나와 같이 10년의 세월을 같이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하더니,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초등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이 모두 성인이 되었다. 통상적으로 성인이 된다함은 자기를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아직도 성인의 날보다는 어린이날을 더 좋아하고 기다린다. 지적인 능력이 다른 이에 비해 좀 늦지만 그래도 이미 몸은 성숙한 어른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요즘같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사회적 상황에서 이렇게 장황하게 개인사를 늘어 논 이유는 바로 우리 아이들이 커서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성인이 되었다는 것은 사회적 참여를 의미한다. 장애우들, 특히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사회적 참여의 기회가 거의 막혀있다. 취업 뿐 아니라 국민의 기본 권리인 선거권 행사에 있어서도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겐 제대로 된 권리행사가 이루어지기 힘든 실정이다. 우리 아이들은 이번에 처음으로 투표를 하게 된다.

그런데 아이들은 선거란 말들이 참 생소하고 낯선 말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름 선거가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 무엇을 보고 해야하는지를 설명하지만 아이들이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확신할 수가 없다. 그래도 나는 한다. 아이들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선거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포기하지 말고 당당히 국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힘들게라도 자기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임을 인식시키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작은 권익이라도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장애를 가진 자녀를 가진 부모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어떤 선택이 우리 자녀들을 위한 것인지를 잘 살펴보고 결정하시라고. 선거바람에 휩쓸리지 말고 후보자들의 공약을 꼼꼼히 따져보고 어떤 후보자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어떤 공약을 걸었는지를 알아보고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장애를 가진 자녀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길이 된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장애우의 문제는 개인적인 차원이나 부모가 감당해야 할 차원에서 해결된 문제가 아니다. 동정이나 수혜대상자로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그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법을 만들어내고 집행하는 사람들을 뽑아내는 선거에서 장애우는 물론 그들의 부모, 형제자매, 친척들의 올바른 한 표는 참으로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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