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렴치 할머니의 운남 여행기 (1)
파렴치 할머니의 운남 여행기 (1)
  • 조영옥
  • 승인 2009.02.16 12: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월 8일부터 떠나는 여행, 7일 날 딸아이네 집으로 갔다.

딸아이는 12월 15일 아기를 낳아 퇴원 후 2주 동안은 도우미 아주머니가 날마다 와서 아이들 돌봐주고 있었다.

태어난 지 25일 손녀딸 하윤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옛말이 실감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태어난 지 6일째에 보고 계속 생각나고 보고 싶은 아이라 나는 여행 하루 전날 가서 아기도 보고, 또 뭔 큰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에서였다.

소고기 장조림도 만들어가고 또 연한 상주 쇠고기를 사서 불고기를 저며 놓기도 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아기도 안 봐주고 어디 여행을 가느냐는 거였다. 참! 전혀 죄의식이 없는 상태로 가려고 하였는데 주변에서 이러니..갑자기 찜찜해지던 차에 새해 안부 메일을 보내온 조카녀석에게 여행 간다 답장했더니 또 다시 온 답장에 ‘파렴치 할머니’라는 말을 적어 보냈다.

내가 분기탱천하여 딸에게 이 말을 전했더니 딸아이도 웃으며 ‘뭐 좀 그런 면이 없잖아 있지요....’하는 거였다.

여행 중에도 이 말을 했더니 모두 맞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파렴치할머니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견뎌내기로 했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일임에 지금 기죽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각자의 삶의 부분들이 서로에게 인정되면서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는 데는 변함이 없다.

사실, 딸아이네 아파트 앞 아파트가 시댁이다. 친정엄마가 끼어들 틈이라는 것이 눈치와 함께 있어야 하니 내가 그러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제일 큰 이유였겠지.

하여간 그렇게 파렴치 할머니가 되어 핸드폰 바탕화면에 아가 얼굴 담고 그렇게 운남을 향해 떠났다.

8일, 9일(인천-곤명-원모-토림)

중국여행은 몇 번 하였으나 운남지역은 처음이다.

말로만 듣고 책으로만 읽던 지역, 소수민족의 소박한 삶과 자연풍광에 대한 동경을 드디어 실현하게 되었다는 설레임을 안고 인천에서 출발을 했다. 인천에서 쿤밍까지는 4시간 가량이 소요된다.

쿤밍도 한번 돌아보아야할 도시이지만 이번 여행의 중심은 따리와 리지앙이기 때문에 쿤밍은 거쳐가는 곳이 되어 버렸다.

8일 밤 10시에 인천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중국시간으로 새벽 1시 30분쯤 쿤밍공항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된 투투라는 게스트 하우스에 가서 잠시 눈을 부치고는 9시쯤 나와 아침으로 미시엔(米線 쌀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쌀국수는 베트남이나 라오스 같은 나라가 유명하지만 정작 쌀국수의 원조는 이곳 운남이라고 했다.

주인아주머니의 손에서 양도 많고 맛도 좋은 미시엔이 선물되었고 우리는 운남에서의 처음 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이맛은 여행 도중 몇 번이고 되뇌어졌다. 첫날 먹은 미시엔이 제일 맛있었다고....

<각종 양념들을 알아서 담아 먹는다. 일반적으로는 다 넣어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반드시 '뿌야오 샹차이'향채를 넣지 마세요...해야 한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운남지방에선 향채를 그렇게 많이 쓰지는 않는다 한다.>

<맛있는 미시엔의 모습 - 기름이 둥둥 떠서 약간 거부감이 있었는데 먹어보니 기름이 없이도 안된다고 들었다.>

우리는 차를 달려 무정이라는 곳을 거쳐 원모로 갔다. 원모는 원모원인의 발굴로 유명한 곳이다.

인류의 조상을 이야기하면 흔히 베이찡 원인을 말하는데 원모에서 발견된 인간의 유골은 베이찡 원인 보다 20만년이나 앞선 170만년 전의 最古원인이다. 원모원인 박물관은 이름 그대로 원모원인 이외에 는 볼 것이 없는 초라한 박물관이다. 원모 들어서는 입구에 새로 박물관을 짓고 있다하니 앞으로 더 알 찬 박물관의 역할을 할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박물관을 나왔다.

<원모 원인 박물관 내부 - 내용물이 너무 초라하다.>

<원모 길거리에서 만난 아이 - 내가 이곳 사람들을 찍은 첫 작품이기도 하다>

이어 오후 4시쯤 도착한 곳은 토림(土林)이다 토림은 석림, 사림과 함께 운남의 삼림 가운데 하나이다.

제일 많이 찾는 곳이 쿤밍 근처에 있는 석림이나 이 토림도 정말 장관이었다. 자연현상과 시간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진 예술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흙 속의 어떤 성분이 녹아내렸는지 비가 오면 움푹 패거나 깎여나가고 또 햇살이 쨍쨍해지면 그 모양 대로 굳어 형성된 흙봉우리는 기기묘묘하고 거대하여 환상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드는 곳이다.

넓은 지역에 퍼져있는 이 토림은 개발되어 공개되는 곳이 다섯 곳 정도라 한다. 미로와 같은 길을 따라 토림을 구경하고 토림 근처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일박하였다.

<기기묘묘한 형상의 흙봉우리들 - 그자체로 예술품이었다. >

<토림의 일부에 게스트하우스가 있었고 토림이 삶의 일부인듯 이런 창고를 지어 물건을 보관하고 있었다>

운남지역의 게스트하우스는 모양은 괜찮으나 난방이 되지 않고 각 개인의 매트 밑에 전기장판이 하나씩 깔려있다. 국가시책으로 양쯔강 이남에는 난방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난방장치를 하면 불법이라는 것이지. 하여간 여행 내내 우리는 전기장판의 신세를 져야했다.

운남 여행을 와서 처음 밤을 보내는 느낌이다. 이렇게 긴 여행길 속에 하루가 갔다.

10일(토림-영인-삼담폭포-남화-따리)

토림의 일출이 환상적이라 했는데 날이 흐려서 일출을 보지 못하고 토림을 떠났다.

영인을 지나 가는 길에 이족들의 마을을 보았다. 각 부족마다 각각 특이한 문양을 지니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우리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검은 염소떼를 몰고 가는 사람, 마차를 타고 가는 소년, 그런가하면 마방들의 긴 행열도 볼 수 있었다,

<마방의 행열을 보며 우리는 뛰어내려 사진을 찍었다. 그들을 따라가면 차마고도에 갈 수 있을까? 하니 이들은 마을 마방이라 했다. 인솔자는 여인이었다>

남화에 가기 전 우리는 강저하 대교를 지나면서 그 아래로 흐르는 진사지앙(금사강)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장강, 양쯔강의 원류이다. 이 강이 동으로 흘러흘러 양쯔강이라는 것이다.

<강저하 대교 아래로 진사지앙이 흐른다>

<진사지앙은 앞으로 계속 보게 될 강이다. 이강이 바로 장강, 양쯔강의 원류이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잠깐 쉬다가 다시 차를 타고 가는데 오른편 쪽으로 엄청난 폭포가 떨어 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표지판을 보니 三潭이라고 되어 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3개의 담을 만들며 떨어져서 삼담폭포인 것 같았다. 운전기사도 가이드도 모두 처음 보는 풍경이라고 했다. 폭포 아래는 노랗게 펼쳐진 유채밭과 그리고 그림같은 마을이 있었다.

우리는 마을에 내려가 식사를 시켜놓고 폭포까지 내려갔다 왔다. 이족 마을은 참으로 조용하고 사람들의 표정도 순박하였다. 집 안 뜰에는 부겐베리아 꽃이 햇빛과 함께 눈부셨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삼담폭포와 이족 마을 - 이 마을에서 점심을 먹었다>

<마을 입구에서 본 이족의 공동묘지>

<아름다운 유채꽃과 마을 - 보기에도 너무 한가로웠다>

<우리가 식사를 하였던 집 - 앞의 전망대에 서면 바로 삼담폭포가 보인다.>

<바깥채와 안채를 구별하는 아치문에 부겐베리아가 피어있다. 이족의 집들은 2층구조로 되어있고 위층은 창고 역할을 하고 아래층이 거주지역이다.>

<마당에 들어서니 귀여운 이족 꼬마가 있었다. 수줍어하던 아이에게 폴라로이드 사진을 한장 찍어주니 이렇게 포즈(?)를 취해 주었다>

<앞이 훤히 보이는 짐차 - 경운기 모타를 이용해서 만든 차란다. 이런 차들이 많았다>

운남지역은 중국에서 가장 많은 소수민족이 살고있는 곳이다. 30여 소수민족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족이며 이들이 지배적이라 했다. 그 다음으로 백족, 나시족 장족, 묘족, 하니족, 모수족 등 다양한 민족들이 다양한 삶의 방식과 문화를 갖고 있다. 앞으로 찾아갈 따리에는 백족이, 리지앙에는 나시족이 살고 있다.

식사를 하고 우리는 따리를 향해 다시 길을 떠났다. 따리는 대리석이 많이 나는 지역으로 대리석이라는 명칭도 바로 따리(大理)에서 왔다. 길따라 보이는 하얀 집들도 백족의 특색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였다. 따리에 도착할 무렵 우리는 맞이하는 듯 창산의 모습이 나타나고 그리고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넘버3, 한국인이 경영하는 게스트하우스이다. 제임스 조 라는 이름의 주인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짐을 풀고 산책겸 하여 가까이 있는 따리 고성 주변을 다니다 돌아왔다.  <2편에 계속>

<창산으로 지는 해가 우리를 맞았다. 따리에 들어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