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창고를 열면서
기록창고를 열면서
  • 유경상((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 이사장)
  • 승인 2020.08.2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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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창고를 통한 온전한 지역적 삶에 관한 상상

기록창고를 통한 온전한 지역적 삶에 관한 상상

공간에는 유산이 남게 되고 시간에는 기억이 스며들기 마련이다. 유산과 기억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혼재된 채 지역적 삶에 연결되거나 허공에 떠돌 수도 있다.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유산과 기억이 지속되기 위해선 정보로 가공되어져야 한다. 정보를 다루는 도구는 종이인쇄에서 사진으로 발전되었다. 이어서 전화,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으로 옮겨지다가 가장 최근에는 인터넷미디어로 안착했다. 정보도구가 무엇이든 사람의 목적의식적인 기록수집과 생산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은 당분간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근현대를 지나온 100여 년의 시간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시간대에 지역이라는 공간에서 삶을 영위해 온 주민들은 다양한 기록물을 생산했다. 현재진행형으로 기록물은 계속 탄생하고 있다. 그런데 지역공동체 주민들이 생산한 기록물은 하찮게 볼 뿐만 아니라 수집과 보존에 대해선 무감각하다. 척박한 생활환경 속에서 생산한 기록물이 더 값진 유산이고 더 소중한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중심 중앙단위의 기록물만 중요하다고 일방적으로 세뇌당해 왔다.

95년 지방자치제가 재도입된 지 20여 년이 훌쩍 지나고 있다. 하지만 반쪽짜리 지방자치제에 맞물려 지역과 주민의 기록자치도 공공기록물에만 그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기록자치의 원재료인 다양하고 풍부한 개인기록물은 집과 사무실에 방치돼 먼지만 쌓이다가 고물수집상에게 넘겨질 쓸데없는 자료로 취급되고 있다.

우리는 4년 전부터 흩어져 있는 근현대 시기 안동문화권을 비롯한 경상북도 주민기록물이야말로 공동체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강화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역사적 자료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역사적 기록으로 재정립시켜 공동체의 자산과 미래의 가치로 전환해야 한다고 설파해 왔다. 다행히 우선적으로 안동에서부터 지난 2년간 근현대 시민기록물 수집 및 보존활동을 진행하게 되었다.

지역과 주민 속으로 들어가 보니 그곳은 기록과 자취, 기억이 가득한 보물창고였다. 빛바랜 흑백 사진에는 젊은 세대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생활풍속과 지역의 공간과 시간의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옛 사진 공모전’은 옛사람과 옛 모습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콘텐츠의 가능성을 품을 수 있었다. 옛 사진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생애스토리를 풀어 직접 써내는 ‘시민아키비스트 양성 아카데미’를 통해서는 주민참여라는 아카이브 활동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안동댐 수몰마을 기록화 사업’은 물속에 수장된 지 42년이 지난 현재, 사라진 54개 마을과 흩어져버린 2만699명의 주민의 삶을 복원하는 것이다. 부족하지만 9개 마을 14장의 인지지도를 제작해 잃어버린 마을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또 유교와 불교, 천주교와 개신교의 근현대 자료를 묶어내어 종교타운의 소프트웨어 콘텐츠 기반 의의를 조성했다. 이렇게 여러 영역의 시민기록물을 수집해 전시, 출간할 뿐만 아니라 디지털 아카이브화로 차곡차곡 진행하고 있다.

유경상 (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 이사장

하지만 아직 첫걸음 뗀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우리는 지나온 30년, 50년, 100년의 지역적 삶과 생활사를 잘 알고 있다고 크게 착각하고 있다. 시민기록물에 대한 관심이 개인의 취미나 수집벽으로 치부되거나 개별 활동에 그치고 있는데도 말이다. 유산과 기억이 담겨져 있는 시민기록물에 대한 불감증을 넘어 그 이유와 진단이 명료해져야 할 것이다. 선도적인 활동으로 주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선 기록물을 모으고 갈고 닦아야 공동체의 보물이 된다. 보물창고를 만들기 위해서 기록문화지 《기록창고》를 서둘러 내놓는 이유이다. 당장은 활자와 디지털의 새로운 만남을 준비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을 궁색하나마 인정하고 있다.

지역적 삶에 대한 재발견을 위해선 국토의 현 실체인 발 딛고 서 있는 지역과 주민의 삶이 담긴 기록물에 대한 무감각을 흔들어서 깨어있는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 즉흥적이고 주관적이며 단기적인 풍토에 갇힌 눈으로 지역과 주민을 바라보지 않아야 할 때이다. 삶의 현장에 있는 기록과 자취, 기억에 깊은 문화가 있고 풍부한 지식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지방소멸을 극복할 해법이 이것저것을 억지로 끌어온다고 해결될 리 만무하다. 작지만 긍지를 품은 정체성 강한 지역적 의지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적 삶을 둘러싼 무감각을 깨버리고 감수성과 감각을 키우는 다양한 활동에 기록자치활동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소망을 품어본다.

* 이 기사는 (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의 계간지 『기록창고』 1호의 수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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