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탐방 '같이 가볼까'①-대심정미소
문화공간탐방 '같이 가볼까'①-대심정미소
  • 신준영(이육사문학관 사무차장)
  • 승인 2020.08.25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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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진개마을의 복합문화공간 대심정미소

흙진개마을의 복합문화공간 대심정미소

 

예천 대심리의 복합문화공간 대심정미소

겨울 들판은 한가로운 듯 보여도 내면은 내년의 씨앗을 길러낼 궁리로 골똘하다. 이러한 골똘함 한가운데 정크 아트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오브제가 약간은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자리한 곳이 있다. 예천읍 대심리에 있는 대심 情미소가 바로 그곳이다. 마침 사진작가 강병두의 전시회가 대심정미소에서 열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미소에서 웬 사진전이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겠다. 대심정미소는 사진을 전공한 서수원 씨가 오래된 정미소를 빌려 작년에 문을 연 이른바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은 전시 갤러리와 미니도서관, 인생학교, 커뮤니티 공간, 대심리 아트마을, 셀프 스튜디오의 역할을 자처하는 곳이다. 폐허가 된 정미소 건물 자체를 하나의 오브제로 하여 오브제 안에 또 다른 여러 오브제들을 설치하겠다는 기막힌 발상을 실천에 옮긴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대심정미소를 찾아 이 수상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대심정미소는 경북 예천군 예천읍 대심2길 47-9에 위치해 있다. 자연마을명은 흙진개 마을이다. 예천읍에서 문경 방향으로 충효로를 따라 진행하다가 예천군 신청사를 지나 석정리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들어서면 대심2길이다. 그 길을 따라가면 민가가 끝나는 곳에 커다란 나비 몇 마리가 지붕에 사뿐히 내려앉은 붉은 양철 외관의 정미소 건물이 보인다. 건물 바깥벽에는 '화물'과 '택배'라 적힌 간판과 '대심정미소' 세로 간판이 영업 중인 듯 그대로 걸려있다. 아치형의 출입구 왼편에는 '전시갤러리, 미니도서관, 문화 강좌'라고 적힌 작은 간판이 버젓이 걸려 있어 사전 정보 없이 찾은 사람이라면 정미소와 문화공간을 겸하는 곳이라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정미소의 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오해는 말끔히 사라진다.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들이 앞서 관람객들을 맞으며 그 오해를 불식시켜주기 때문이다.

내부는 크게 트여 있어서 갤러리와 전시 공간의 경계가 따로 있지는 않다. 정미소에서 쓰던 도정기와 기계들이 그대로 놓여 있고 구식 텔레비전들이 백남준의 작품을 연상시키며 높이 쌓여 있다. 지게 위에 올려놓은 볏짚 쌀 가마니와 짚으로 꼰 새끼줄, 탈곡기 등 도정 작업과 관계 된 용품들과 농기구도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나이든 어른들에게는 향수를, 젊은이들에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몇 개의 유리 테이블 아래에는 갖가지 도정된 잡곡들이 하나의 작품처럼 배치되어 있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외관의 지붕에 내려앉았던 색색의 나비들이 크기만 달리하여 내부에도 곳곳에 앉아있는데 예천이 곤충으로 유명한 곳이어서 콘셉트를 그렇게 잡은 듯 보인다. 갤러리와 전시 공간을 지나면 방 3칸과 거실로 구성된 미니 도서관이 나온다. 방 안에는 책들이 드문드문 꽂혀있는데 정미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거처하던 곳을 도서관으로 개조한 공간이다. 느린 우체통도 한편에 자리하고 있어 엽서 한 장 써볼까 하는 충동이 살짝 일기도 한다.

강병두 작가의 사진전 〈勝景必隱人跡焉승경필은인적언〉 (좋은 경치는 반드시 사람의 자취를 머금고)은 대심정미 소에서 갖는 열여섯번째 전시다. 우리가 찾은 날은 마침 강병두 작가의 사진 수업을 듣는 회원들이 방문하여 현장수업을 받고 있었다. 사진 한 점 한 점 설명해가며 진행하는 수업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화기애애했다. 잠깐 자리를 비웠던 서수원 대표가 도착해서 이 공간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서수원 대표는 대학에서 사진과 디자인을 공부했지만 그간 안동에서 웨딩사진사업을 하며 생업에 관련된 일만 해왔다고 한다. 이후 안동에서 예천으로 옮겨 와 정미소를 임대했다. 문화공간을 통해 작가들과 소통함으로써 그 스스로 넓은 안목을 갖고자하는 마음이 있었다. 또한 본인이 가져보지 못한 전시 공간을 작가들에게 마련해줌으로써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었다.

대심정미소 서수원 대표
대심정미소 서수원 대표

정미소 발동기 소리에 깼던 시골촌놈, 정미소를 접수하다

현재 대심정미소는 사진, 그림, 시화, 시 콘서트, 인문학강의 등의 소통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2017년 6월 7일 개소식을 하고 6월 11일부터 21일까지 첫 전시를 가졌다. 개관 기념전은 다양한 손들을 찍은 우성한 작가의 〈마음이 기우는 풍경, 세월이 묻어나다〉 였다. 그는 그간의 전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로 다큐멘터리 작가인 이재갑의 〈상처위로 핀 풀꽃. 강제 징용된 조선인의 흔적을 중심으로〉를 들었다. 학생들이 많이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서 아쉬움이 컸다. 13일 강병두 사진전이 끝나면 거의 여백 없이 바로 다음 전시에 들어간다. 다음 전시는 12월 15일부터 내년 1월 17일까지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박병문 초대전 〈선탄부〉다. 박병문 작가는 나고 자란 탄광촌을 주제로 광부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다루는 작가로 유명하다. ‘선탄부’는 막장에서 잃은 남편을 대신해 일했던 여자 광부를 이르는 말이다.

왜 하필 정미소인가, 그에게 물었다. “자랄 때 정미소 앞집에 살았어요. 아침에 발동기 돌아가는 소리에 깨서 학교에 가곤 했지요. 시골 촌놈이라 저한테 그런 정서가 있어요.” 그는 정미소뿐만 아니라 시골 창고에도 관심이 많은데 이러한 공간을 구상하며 점촌, 안동의 여러 정미소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대심정미소는 그가 제일 나중에 찾아 낸 장소다. 2016년 12월에 우연히 알게 돼서 임대를 했다. 여든이 넘은 정미소 주인은 미술 공부를 한 딸이 있어서 갤러리에 대한 이해도 있고 깨어있는 분이라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고 한다.

40여 년간 대심정미소를 운영했던 이재수 옹과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대심정미소의 내부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대심정미소의 내부모습1
40여 년간 대심정미소를 운영했던 이재수 옹과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대심정미소의 내부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대심정미소의 내부모습2
40여 년간 대심정미소를 운영했던 이재수 옹과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대심정미소의 내부
40여년간 대심정미소를 운영했던 이재수옹

마을주민과 호흡하는흙진개 마을의 문화명소 되고파

대심정미소는 73년도에 문을 열었다. 사람으로 치면 올해 마흔 여섯 살이다. 4년 전까지도 운영되었고 근처에 서는 상당히 큰 정미소였다. 공사를 하면서 골조는 다른 정미소에서 떼 왔지만 그가 원하던 구조가 그대로 있었다. 사용하던 기계는 물론이고 ‘ㄱ’ 자 공간과 옛날 물건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 도서관으로 쓸 공간도 충분히 있어 적격이었다. 형편상 그는 혼자 힘으로 7개월여 간의 공사를 끝냈다. 기계들도 원래 있던 그대로 활용했다. 티브이는 모텔 공사하는데서 거저 얻어왔다. 천정의 등박스도 철제 정미소 문짝을 활용했고 그 외에도 대부분 있는 걸 재활용했다. 임대 계약을 10년으로 했는데 남의 집에 왜 그렇게 투자를 하느냐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힘들지도 않았고 재미도 있었다.

비슷한 형태의 복합문화공간들과의 커뮤니티는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근래에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정미소, 철공소, 목공소, 창고, 목욕탕, 담배 건조장 등이 카페나 영리목적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발품 팔아서 다녀봤지만 이렇게 비영리 공간을 운영하는 곳은 별로 없어요. 커뮤니티도 따로 없고. 카페를 하려고 해도 위생적으로도 문제가 될 거 같고 휴게음식점 허가도 내야 하고 복잡해요. 그래서 신청했다가 철회했어요. 결론은 본질 그대로 가자는 생각입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마을 원주민과의 소통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종종 본다. 조심스럽게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대심리 동네 일원에 정미소가 있는 겁니다. 정미소가 있어서 대심리가 있는 게 아니라."

최근에는 ‘경북형 행복씨앗마을 사업’ 공모에 당선되어 사업을 진행 중이다. 사업의 내용은 다양한 전시와 인생 학교, 마을 스토리북 작업, 마을 벽화 조성 작업 등이다. 마을 스토리북은 가급적이면 농번기 전인 내년 7월 까지는 마무리할 예정이다. 그가 전공을 살려 직접 동네 주민 들을 촬영하고 인터뷰하며 옛 사진과 비디오도 찾아내 틀어주려 한다. 책이 나오면 주민들을 모셔서 한바탕 잔치를 하리라 마음먹고 있다.

흙진개 마을은 입구에서부터 40가구 정도 된다. 마을스토리를 벽화에 넣고 싶지만 마을 역사가 짧아 특별한 자료가 없는 것이 아쉽다. 트릭아트 몇 개와 시화, 캘리그라피를 그려 넣을 예정이다. 또, 강병두 작가의 사진과 시화, 원예 세 가지를 합쳐서 전시 할 계획이다. 그 밖에도 대심정미소는 예천경찰서와 업무협약을 체결해서 다문화, 탈북민, 지체장애인의 교육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서수원 대표가 대심정미소라는 복합문화공간을 통해 궁극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사람들과의 소통이다.

"돈이 있을 때는 생각으로만 가지고 있던 것이었는데 어려운걸 겪어보니 이럴 때 뭐라도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람이 있다면 하던 대로 하는 거죠. 안 잊히고 끝까지 하는 게 가장 소박하지만 힘든 일 같아요. 전시를 할 수 있는 계기는 사람과의 소통입니다.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전시를 할 수 없어요. 궁극적 목표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 내 인생을 완성시켜 나가는 겁니다. 이 공간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사람'들과 '대심情미소'라는 이름입니다. 이것들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공간을 통해 그가 추구하는 바가 '대심情미소'라는 이름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그의 작명 솜씨 또한 꽤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계절을 견뎌낸 알곡들은 모두 정미소로 간다. 정미소에서 일용할 양식으로 거듭태어나는 것 이다. 대심정미소도 다양한 작품과 사람들이 모여 소통이라는 도정 작업을 통해 양질의 문화로 거듭 태어나는 장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대심정미소 안팎에 설치된 수많은 나비들의 날개 짓이 소통과 파급의 날개 짓이 되리라 믿는다.

* 이 기사는 (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의 계간지 『기록창고』 1호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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