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아카이브③-호외요! 호외!
발굴, 아카이브③-호외요! 호외!
  • 편집부
  • 승인 2020.08.3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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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창고 1호(2018년 12월 발간) '수집왕'으로 소개된 박상영 선생이 경북기록문화연구원에 귀한 자료를 기증해 주셨다. 바로 오랜 세월 보관해 온 1960~90년대 빛바랜 신문 호외다. 호외는 '신문사가 통상의 정기호 이외에 중대한 뉴스를 신속하게 보도하기 위해 임시로 발행하는 인쇄물'을 일컫는다. 실시간 뉴스가 올라오는 지금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촌각을 다투는 큰 사건을 한시라도 빨리 전달하기 위해 타블로이드판 1장 짜리로 급히 찍어내곤 했다. 엄중한 시대, 사건 사고를 배달했던 그 시절의 호외를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격동의 현대사를 호외로 살펴본다.

1979년 10월 27일 조선일보 호외(ⓒ경북기록문화연구원)
1979년 10월 27일 조선일보 호외(ⓒ경북기록문화연구원)

1979년 10월 27일 조선일보 호외
박정희대통령 피격서거, 어젯밤 정보부서 만찬중
박정희 대통령이 26일 오후 7시 50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탄에 맞아 서거했다는 내용을 실었다. 26일 오후 6시 서울 궁정동 소재 중앙정보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마련한 만찬에 김계원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과 함께 참석 만찬 중 김 정보부장과 차 경호실장 사이에 우발적 충돌사태가 야기되어 김부장이 발사한 총탄에 맞아 26일 오후 7시 50분 서거했다고 발표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뒷장에는 전국에 제주도를 제외한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대통령 권한대행은 최규하 국무 총리가 수행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1979년 10월 27일 서울신문 호외
1979년 10월 27일 서울신문 호외(ⓒ경북기록문화연구원)

1979년 10월 27일 서울신문 호외
박대통령 유고로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으며(제주도 제외) 최규하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았다는 기사가 실렸다. 계엄사령관 정승화 육군대장의 이름으로 발표한 포고 1호의 내용에는 일체의 옥내외 집회 금지, 언론과 출판 보도 사전 검열, 밤10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야간통행금지, 유언비어 날조 및 유포행위 금지, 모든 대학의 휴교령 등으로 상기 포고를 위반한 자는 영장 없이 체포·구금·수색하며 엄중처단한다고 되어 있다. 실로 공포정치의 최절정이었다.

 

1980년 5월 18일 신아일보 호외
1980년 5월 18일 신아일보 호외(ⓒ경북기록문화연구원)

1980년 5월 18일, 신아일보 호외
0시를 기해 제주를 포함한 전국에 계엄포고10호를 통해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전 대학 휴교령을 내리는 내용이 실렸다.

 

1980년 5월 18일 한국일보 호외
1980년 5월 18일 한국일보 호외(ⓒ경북기록문화연구원)

1980년 5월 18일 한국일보 호외
1980년 5월 18일 한국일보 호외에는 '김종필·김대중 씨 등 26명 연행'이 헤드라인으로,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휴교령을 내린다는 내용이 실렸으며, 학생소요 가담자와 주동자도 연행해 조사 중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1991년 8월 19일 한국일보 호외
1991년 8월 19일 한국일보 호외(ⓒ경북기록문화연구원)

1991년 8월 19일 한국일보 호외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실각을 호외로 다뤘다. 고르바초프는 소련 붕괴 이후 냉전을 종식시킨 공로로 199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상징적인 인물이다. 재임 중 소련의 개방 정책인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기도 했다.

 

1988년 1월 15일 조선일보 호외
1988년 1월 15일 조선일보 호외

1988년 1월 15일 조선일보 호외
대한항공 KAL기 폭파사건의 범인 마유미가 북한공작원 김현희라는 헤드라인으로, 일본인으로 행세할 때는 하치야 마유미, 중국인으로 행세할 때는 백취혜란 이름을 사용한 북괴특수공작원이라는 내용이 실려있다. 이들은 1987년 11월 1백 15명의 생명과 함께 공중 폭파된 대한항공기의 폭파범인들로 북한의 공작요원들이며 그동안 우리정부에 신병이 인도되어 조사를 받아왔고 김현희 (26)는 앙골라주재 대표부 외교관 김원석의 딸이며 함께 잡혔다가 음독자살한 김승일(70. 신이치)과 함께 두 범인의 행적을 시간대 별로 재구성한 내용을 실었다.

대한항공 칼기 폭파사건은 1987년 11월 27일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대한 항공 858편이 아부다비 공항을 경유해 인도양 상공을 지나던 중 폭발한 사건으로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큰 참사로 당시 엄청난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아부다비 공항에서 내린 김승일과 김현희가 범인으로 검거됐으며 김승일은 검거 당시 음독자살했다.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혼란스러운 정국이었다. 올해 4월, 1987년 12월 10일 작성된 3급 기밀, 외교 문서가 공개됐는데 칼기 폭파사건을 조사하고 있던 바레인에 특사로 파견된 박수길 당시 외무부 차관보가 보내온 내용에는 87년 대통령 선거일 이전에 마유미, 즉 김현희를 한국으로 송환해야 한다는 목표가 읽히는 대목이다. (참고: 2019년 4월 1일 MBC뉴스)

* 이 기사는 (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의 계간지 『기록창고』 3호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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