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가게 더 오래된 이야기②-문화자전차점
오래된 가게 더 오래된 이야기②-문화자전차점
  • 강수완(시인)
  • 승인 2020.09.24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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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페달을 밟고'
시간은 자주 멈추고 간판 글자는 가끔 바람에 제 이름자를 조금씩 덜어냈다.(ⓒ강수완)
시간은 자주 멈추고 간판 글자는 가끔 바람에 제 이름자를 조금씩 덜어냈다.(ⓒ강수완)

강물에 돌을 던져 생겨나는 파문처럼
동그랗게 생긴 바퀴살로 신작로를 내달리던 자전거,
바람을 가르며 바람 속으로 나아가던 날렵함에 대한 추억은 세월을 한참 거슬러 올라간다.
자전거로 학교를 오가던 시절의 낭만은 너무 오래 되었다.
가지런한 살이 세상을 향해 뻗어나간 자전거.
세상을 향했던 살이 다시 하나씩 바퀴의 중심으로 돌아와
축을 이룬 원의 한가운데는 촘촘하고 빛났다.
각자의 인생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동그라미는
세상을 굴리는 바퀴이기도 했다.

안동 시내에 남은 자전거점은 이제 숫자가 많이 줄었다. 그나마 건강 열풍과 취미 생활로 다시 자전거를 타거나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자동차 대리점 숫자보다 확연히 적은 시절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한 곳에서, 한 사람이, 오래된 간판을 걸고, 오랜 세월을 보낸 자전거점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전거보다는 자전차로, 자전거점보다는 자전차방으로 쉽게 불리던 시절. 점방 안이고 밖은 온통 둥근 바퀴살을 나란히 붙이고 일렬로 늘어 선 자전거가 학생숫자 만큼이나 흔했던 시절이었다.

손톱에 시커먼 기름을 묻히고 체인을 갈거나 부러진 살을 갈아 끼우는 난감한 작업에 점심을 놓치기 일쑤였던 일이 자전거방 주인의 풍경이었다면, 바람 빠진 바퀴에 새로 빵빵하게 공기를 채우는 가쁜 펌프질로 들썩이는 어깨나 교복 치마 아래로 체육복 바지를 더 껴입고 종아리를 감춘 여학생의 통학 자전거와 선생님의 눈을 피해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변을 가로지르며 설익은 연애를 즐기던 삼삼오오의 자전거 행렬도 있었다.

문화자전차점 내부모습1(ⓒ강수완)
문화자전차점 내부모습1(ⓒ강수완)

겨울 아침, 집이 먼 학생들은 눈썹과 머리카락에 고드름을 달고 오기도 했으니 어쩌다 안에 털이 달린 인조 가죽 손 장갑을 손잡이에 달고 다니는 학생들은 그나마 집이 잘 사는 편이었다. 매일 다니는 자전거 타기에 인이 배긴 아이들은 시린 손을 옷 주머니에 넣어 핸들을 잡지 않고도 익숙한 커브를 부드럽게 돌았다. 늦게 일어 나 아침밥을 굶고 온 아이들은 한 손으로 사과를 먹으며 달리기도 했고 가끔은 철 따라 피는 들꽃을 꺾어 와 교탁에 몰래 놓아두기도 했다. 자전거를 탄 풍경은 낭만과 삶을 동시에 굴리고 있었다.

안동 기차역에서 동쪽으로 가다 보면 점방 유리문에 자음과 모음 귀퉁이가 세월에 닳은 글자를 붙인 오래 된 자전거포가 있다. 자전거로 문화를 누렸던 한 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듯 남아 있는 상호, 문화자전차점. 자전차 푸른색 글자는 햇빛과 세월에 낡아 올해 여든 다섯 살의 주인과 서로 닮아 있었다. 옆으로 밀고 들어가는 출입문 유리가 정겨웠지만 그마저 드르륵 덜컹 불편한 관절 소리를 내며 열리고 닫혔다. 안은 고즈넉하고 검었다.

연장이며 집기가 세월 따라 조금씩 윤기를 잃었고, 윤기를 잃어 더욱 눈길을 붙들어 매는 기물로 다시 반짝였다. 오래되었다는 건 한 자리에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 앞으로도 살아 있을 거라는 것. 나무나 바위나 집이나 사람이나 한 세월 두고두고 변함없이 앉아 있는 뿌리는 결코 예사롭지 않은 일이므로, 이런 저런 일로 바쁘게 지내는 우리의 눈길을 잠시 머물게 하는 힘이 있다. 낡거나 오래 되었다는 건 살아 낸 세월이 간단치 않은 일이므로 내력을 함부로 옮기거나 하루아침에 져버릴 수 없는 일이었다. 가지런히 놓아 둔 연장 손잡이에서 그간의 손때가 이루어 놓은 빛이 햇살처럼 앉아 얌전했다.

올해 여든다섯 주인장의 손은 삶의 흔적이자 훈장이다.(ⓒ강수완)
올해 여든다섯 주인장의 손은 삶의 흔적이자 훈장이다.(ⓒ강수완)

자전차점은 은빛 살이 나란히 바퀴를 맞댄 자전거가 여러 대 서 있었다. 작년에 처음 찾아왔을 때보다 자전거 숫자가 늘어 보였으나 주인의 대답은 그게 아니었다. 역시 올해 코로나 영향으로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다니는 사람까지 숫자가 줄어 몹시 한가하다고 했다. 꽃 보러 가는 사람들이나 주말에 자전거 여행 가는 사람들이 들러 봄꽃 한창일 때 잠시 반짝 했었는데, 요즘은 소일거리로 출근 시간만 겨우 맞추고 있다니 난감했다. 벽 한 쪽에 누렇게 색이 바랜 액자가 걸려 있어 물어보니 개업 때 친구들이 돈을 모아 마련해 주었다며, 큰소나무 푸른 가지 너머로 붉은 해가 떠오르는 바다 그림이 그간 심심했다는 듯 얼른 아래를 내려다보며 합석해왔다.

그림 옆 시멘트벽은 검정색 타이어 여러 개가 겹치거나 나란히 걸려 복고풍 인테리어를 해 놓은 듯 자연스러웠다. 요즘은 자개장롱이나 옛 물건들이 인테리어로 장식된 곳이 늘어나고 있으니 자전거와 낡은 연장과 오래 된 탁자와 거친 벽면은 좋은 소재로 보였으나 주인은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무안해 했다. 오래된 것을 붙들고 사는 모양이 초라해 보이는 세상이 되었다니 서글픈 일이었다. 마디가 틀어진 주인의 손이 그간의 삶을 보여 주었으나 한 가지 일로 뼈가 굵은 인생은 칭찬을 받아야 마땅했다. 우리 부모님의 손이 다 그러했으므로, 그 손에 우리가 컸으므로, 그 손은 삶의 흔적이자 훈장이었다.

어제 오늘은 마침 자전거 수리 두 대가 들어 와 막걸리 값은 벌었다며 환하게 웃는 얼굴이 순박했다. 기름 묻은 검정 체인이 눈에 익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날 저 체인에 옷자락이 걸려 시커멓게 된 걸 빠느라 여러 번 넘어지고 까져 피가 난 무릎의 상처를 몰랐던 시절, 돌아보면 그곳에 자전거가 있었다. 뒷자리에 짐칸이 달려 있었던 무거운 자전거. 뒤에서 단단히 붙잡고 따라 오는 양 흉내를 내어 두려움을 덜어 주었던 젊은 아부지의 목소리를 같이 들었던 자전거. 서툴게 익힌 자전거로 둥근 바퀴자국을 겹겹이 그려 놓았던 학교 운동장.

지난 생각에 빠져 있다가 주인의 옛 자전거 시절 역시 궁금해져서 슬슬 살을 붙여 말을 건넸다. 군 제대 후 스물세 살 들던 해에 고치공장에 다니던 꽃같은 색시를 얻어 혼인했다는데, 그때 중매를 놓은 이가 지금의 처고모였다니 성실하고 반듯했을 느낌이 어쩌면 오랫동안 자전거점을 꾸려 왔던 뚝심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막내딸이 서울 유명 병원의 간호과장으로 근무한다며 함박 웃음을 짓는 걸 보니 자식 농사에 보람이 커 보였다.

76 자전거쟁이 11명이 안동에 있었다는 말에 바짝 다가앉았더니 이런 이야기가 뭐 재미 있니껴 또 빙그레 웃었다. 삼천리 자전거가 유행이던 시절 안동 사는 사람 열한 명이 시내 이곳 저곳에 자전거포를 열었다고 한다. 문을 열었던 76년, 그 년도를 앞머리에 딴 76 모임 이름. 안동에 유난히 많았던 학교 덕에 자전거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몰려 호시절을 누렸단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직원을 따로 두고 운영했다고 하니 대단한 성황이었던 모양이다. 요즘의 자동차 관련 가게와 다를 바 없었을 테니 짐작이 가는 일이다. 그때 같이 점포를 열어 자전거방을 했던 사람들은 자전거가 내리막을 걸을 때 그만 두거나 노환으로 죽어서 고령의 주인이 지금까지 꾸려 가는 자전거점은 거의 없다고 하였다. 애달프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요즘 새로 눈에 띄는 직업이자 직장이 되었으니 인생사 참 묘한일이다. 어렵사리 여태 꾸려온 주인과 그를 바라보는 세상 사이의 변화가 어렴풋이 흘렀다.

문화자전차점 내부모습2(ⓒ강수완)
문화자전차점 내부모습2(ⓒ강수완)

요즘은 특별한 기술 없이도 자전거를 조립할 수 있게 만들어져 판매되는 추세라 자전거점을 통해 새 자전거를 사고파는 일은 흔치 않다 했다. 잔고장이 나거나 기계를 이용하여 핸들 균형을 잡아 주는 일 등으로 소일 하거나 가끔 나이 든 사람들이 수리를 맡기러 먼 동네에서 일부러 찾아온다고 했다. 솜씨가 야물어 소문을 듣고 찾아온 젊은 사람들 몇몇이 간혹 단골이 되어 그나마 명맥만 유지한다며 그것도 고마운 일이라 했다.

개업선물로 들고 왔던 소나무 사이 일출 그림은 누렇게 색이 바랬으나 못에 의지한 세월 아랑곳없이 아직 벽에 짱짱하게 걸려 있고, 그 그림을 들고와 호탕하게 막걸리 잔을 비우며 돈 많이 벌고 잘 살라고 추켜주던 동네 친구들은 거의 죽고 없다는 말을 듣고 보니 '친우일동' 글자에 오래 눈길이 갔다. 개업 날은 장구치고 노래하는 사람까지 청하여 가게 앞에서 한바탕 흥을 돋워 크게 놀아 동네가 잔치였다니 화분으로 대신하는 요즘 가게 개업 분위기와도 잠깐 비교되어 세월이 많이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수건 몇 장을 겹쳐 깔고 앉은 의자에 등을 바로 세워앉으며, 적당히 몸을 써야 건강을 지키는 길인데 가까운 길도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요즘 사람들을 잠깐 걱정했다. 아직까지 아침저녁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데, 페달을 힘껏 밟아 강을 건너다니는 덕에 큰 탈 없이 친구들 보다 오래 사는 거 같다며 걷거나 자전거 타기를 슬쩍 권해 오기도 했다.

세월 이기는 장사야 없지만 세월 앞에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세상의 많은 일 중 어쩌면 안동 시내 한곳을, 아니 지구의 어느 한쪽을 지켜나가는 건강한 자전차점이 있어 꽃피는 봄날 자전차점에 오니 봄날이 참 좋다.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을 한참 내달리고 싶은 문화자전차점. 바람에 떨어져 나간 간판 대신 오래된 글씨로만 유지되고 있는 문화자전차점이 밥벌이를 넘어 지나간 것과 앞으로 다가올 것들을 이어주는 문화로 남아 있기를 복사꽃처럼 발그레 피워 보는 날이다.

* 이 기사는 (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의 계간지 『기록창고』 6호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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