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아카이브①-영인판으로 나온 가족신문 《둥지》
우리 곁의 아카이브①-영인판으로 나온 가족신문 《둥지》
  • 백소애(기록창고 편집인)
  • 승인 2020.10.30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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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 창간호(ⓒ백소애)

'둥지'는 가족의 쉼터이며 서로 사랑하는 공간입니다.
가훈: 허물을 알거든 반드시 고치자

"우리 가족은 처음 선성산 밑 선성골 조그만 남의 셋방살이를 시작으로 17년 동안 고향 예안에서 살다가 안동댐으로 말미암아 고향을 잃은 실향민이 되어 10년 전 지금 현재 살고 있는 동문동 집으로 이사 와서 오늘까지 이르렀습니다. 무언가를 새로 만든다는 고충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이번 여름방학에 선경, 효원, 윤경이가 주축이 되고 가족회의를 열어 우리가족신문 ‘둥지’가 창간합니다. 둥지는 온 식구를 서로 연결시키며 갈수록 멀어지는 친척관계에도 커다란 구심점이 되어지길 바랍니다."
•전체책임: 차녀 선경
•편집장: 삼녀 윤경
•특파원: 장남 효원, 장녀 혜경
•기자: 사녀 은경, 막내 제경
•고문: 할머니, 아버지 이동국, 어머니 지유숙

가족신문 《둥지》는 1986년 9월 창간했다. 이름하여 '효원이네 가족신문'이다. 슬하에 1남 5녀를 둔 이동국, 지유숙 씨의 장남 이름을 딴 것이다. 당시 장녀 혜경 씨가 대학을 졸업, 장남 효원 씨는 대학4년생, 막내 제경 씨가 중학2년생이었다. 가족 모두의 쉼터이자 서로 사랑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시작한 《둥지》는 1992년 3월까지 모두 18호를 발간했다. 7년간의 기록이지만 그간 할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막내 제경 씨도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처음엔 10여부 발간하던 것이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우편 발송을 해야 할 정도로 구독자가 늘어나기도 했다.

지난 2017년 어머니의 팔순을 맞아 효원 씨는 가족신문 《둥지》의 원본을 정리해 영인본으로 묶어냈다. 귀향한 어머니가 살고 있는 예안 집에서 고이 간직된 빛바랜 신문을 통해 가족의 역사, 변화, 현재를 마주하고 그는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다. '가족은 좋아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해서 좋은 것이 되는 것'이라는 영인본 속 그의 머리말이 이렇게 세밑 뭇 사람의 가슴에 생채기를 낼 수가 있단 말인가. 가족의 '둥지'가 사라지기 전에 영원한 기록으로 남긴 이효원 씨는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둥지》에는 결혼을 앞둔 언니와 형부의 데이트 현장을 기습 방문해 앙케이트로 남긴 특집 기사, 막내 제경 씨가 그린 4컷 만평, 영남일보에 실렸던 어머니 지유숙 씨의 칼럼 스크랩, 70사단에서 군 생활을 한 효원 씨의 근황, 자신의 원고가 실리지 않은 창간호에 대한 섭섭함과 그래도 기쁜 마음을 전한 장녀 혜경씨의 글 등 가족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1970년에 기록한 어머니의 가계부까지. 더군다나 창간 1주년 호에는 다니는 교회의 담임목사, 학교 선생님, 고모부, 외삼촌, 어머니 친구분 등의 축사까지 실렸으니 신문으로서의 순기능은 다하면서 재미와 감동, 평범한 가정의 생활사까지 고스란히 담긴 귀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막내 제경 씨의 4컷 만화
막내 제경 씨의 4컷 만화(ⓒ백소애)

손글씨로 만들어졌던 둥지는 세월을 지나 타이핑으로 바뀌었고 봉정사 계곡으로의 가족야유회 이야기를 담아낸다. 가족노래자랑에서는 삼녀 윤경 씨가 우승하고 2등은 어머니로, 모두들 자유곡을 한 곡씩 부르고 비밀투표로 공정하게 치러졌다. '올해의 둥지상'이 신설되었는데 3분 스피치로 1년간 자신이 살아온 삶을 공개하고 누가 둥지를 위한 바른 삶을 살았는지 투표를 통해 수상자를 가렸다. 결과는 효원 씨 1표, 어머니 4표를 누른 5표의 주인공인 아버지. '둥지'가 새겨진 은반지가 부상으로 돌아갔다. 1991년 장남 효원 씨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둥지》를 만들던 솜씨를 발휘한 삼녀 윤경 씨가 출판사에 입사하고 부모님의 교회 임직식이 있었으며 감투 단골 막내 제경 씨가 과대표를 맡게 됐다는 소식으로 갈무리 되었다.

1남 4녀 오남매인 우리 집도 어린 시절부터 복작거렸다. 겨울날 먼저 머리를 감은 언니 때문에 보일러 뜨거운 물이 모자라 화를 내거나 건너 건너오는 심부름을 마지막엔 막내가 하게 돼 부모님께 야단맞았던 사연과 실에 매달아 놓은 과자 따먹기 게임으로 놀이를 가장한 과자 덜먹기에 동참했던 일, 혼잡한 화장실 문제로 함께 재래식 화장실을 쓰던 일 등 늘 시끌벅적했었다. 일흔을 넘긴 어머니는 "내가 나이 먹는 건 괜찮은데 느그들이 나이 먹으니 너무나 서글프다"고 한다.

가족신문 둥지
가족신문 둥지(ⓒ백소애)

지난 추석 때 조카 녀석은 아파트 단지 놀이터 그네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수다를 떨다 집으로 들어왔다. 녀석은 '놀이터에 있어보니 가관'이라 했다. 베란다 밖으로 집집마다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소리가 들리더라는 거다. 치열하게 싸우고 금세 화해하는 이 풀리지 않는 숙제와도 같은 관계의 가족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웃고 울고 참고 화내고 사랑하고 미워한다. 우리 각자의 '둥지'에서.

* 이 기사는 (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의 계간지 『기록창고』 1호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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