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청년유도회, ‘제29회 근대사 인물 추모 학술강연회’ 개최
안동청년유도회, ‘제29회 근대사 인물 추모 학술강연회’ 개최
  • 김용준 기자
  • 승인 2020.11.13 16: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족해방운동을 이끈 가일마을'이란 주제 학술강연회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

안동청년유도회(회장 권진호)1114() 오후2시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왕산관)에서 '민족해방운동을 이끈 가일마을'이란 주제로 제29회 근대사인물추모학술강연회를 개최한다.

가일마을은 세칭 안동의 모스크바로 일컬어진다. 그만큼 사회주의를 수용하고, 이를 통해 시대과제를 해결하려고 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민족해방투쟁사에서 가일마을이 갖는 의미는 진보성과 통합성이다. 대한광복회 활동과 6.10만세운동이 바로 그 지점이다.

1910년 일제강점기 이전 국권회복운동은 크게 두 개의 거대한 물줄기를 보였다. 의병항쟁과 애국계몽운동이다. 이들의 이상과 목적은 무너지는 국권을 오롯이 지켜내는 것이었지만, 이념과 방략의 차이로 갈등을 빚었다.

그런데, 1915년 들어 두 계열은 통합을 시도했는데, 그 대표적인 조직이 경북에서 결성된 대한광복회이다. 대한광복회는 애국계몽운동계열의 조선국권회복단 주력인물과 의병계열의 광복단이 함께 만든 단체이다. 이는 단순히 두 단체의 합친 것이 아니라, 의병과 계몽운동계열이 통합을 이룬 예가 된다.

안동 풍천면 가일마을

이러한 의의를 가진 광복회에 가일마을 사람들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1920년대 전개된 6.10만세운동 또한 좌와 우를 아우르는 본격적인 출발로 평가되고 있으며, 가일마을 사람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 이것이 민족해방투쟁사에서 가일마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 가운데 오늘 새롭게 조명될 권준희(權準羲)는 안동지역에 세거하며 성리학에 침잠했던 유학자이자 국권 회복을 위해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전통적인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성리학에 몰두하였으며 유가경전에 조예가 깊었다. 평소 주자의 독서법에 따라 독서하였고 자신의 인격 수양을 위한 학문을 강조하였으며 이를 실생활에 적용해서 실천했다.

이와 같이 권준희는 전통적인 유학자 범위에 속했던 인물이었으나, 유교의 전통과 명맥을 이어온 나라가 일제의 손아귀에 넘어가는 상황에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는 이미 노쇠해진 몸으로 무장항일투쟁의 일선에 참여하지는 못했으나, 대신 막후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조력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의병계열 인사들이 조직한 비밀결사단체인 광복회(光復會)에서 고문직을 맡았으며, 또한 군자금을 모금하여 광복회의 총사령관인 박상진(朴尙鎭)에게 전달하는 등 일제에 저항하며 국권회복을 도모했다.

한편 안동청년유도회는 지난 33년 간 유교문화의 전승보존과 더불어 지역문화발전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경주해 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으로 3.1 만세운동 재현, 성년의 날 관계례 행사, 세계청년유림대회, 정부인 안동장씨추모여성휘호대회, 근대사인물추모학술강연회, 시민아카데미 등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