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풍경②-임하댐에 잠긴 세월
그때 그 풍경②-임하댐에 잠긴 세월
  • 김복영(사진작가)
  • 승인 2020.12.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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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바들 87년 6월 13일 ⓒ김복영

손자를 업고 넋 나간 듯
임동장터 위로 치솟는 다릿발을 바라보고 있는 돈바들 배씨 노인.
머잖아 댐이 완공 되면 장터도 돈바들도 물속에 잠길 텐데
배 노인네 조손은 어디로 가려는가?

30여 년 전 임하댐 수몰예정지에서 촬영한 이 사진들을 보면서 세월보다 더 빨리 변해버린 우리네 삶의 모습에 놀라게 된다. 그때만 해도 이 지역 농촌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생활 모습이지만 지금은 어른들에게는 아스라한 추억으로 가슴속에 남고, 아이들에게는 옛 기록 속의 한 장면으로 기억되는 격세지감의 풍경이 되어버렸다. 

지례 점방 87년 4월 9일 ⓒ김복영
무실 뒷간 89년 2월 12일 ⓒ김복영

담장에 덧대 지은 뒷간에서 혹 골목길로 지나가는 남의 흉을 듣게 되는 난처한 경험도, 생필품 공급은 물론 공·사무를 포함하여 마을의 온갖 정보가 유통되던 점방집의 따뜻한 아랫목도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내걸음 때는 물론 집에서나 들에서나 한복이 더 편하게 몸에 익은 세대와, 동네 우물가나 도랑가 빨래터에서 퍼져나간 소문 때문에 울고 웃던 부녀자들이 살아가던, 그때와 함께.

박실 빨래터 86년 3월 16일 ⓒ김복영
사의 우물가 87년 5월 9일 ⓒ김복영
무실 신분형 할머니 89년 1월 16일 ⓒ김복영

가사를 짓고 베끼고 낭독하는 것은 반촌 부녀자들의 일상 중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었다. 집안일과 농사일이 아무리 바빠도 틈을 내어 가사를 모으고 읽는 일은 결코 소흘이 할 수 없는 그들 삶의 일부였다. 한겨울의 무료함을 달래려는 듯 햇볕이 따스한 담장 밑에 나앉아 낭랑한 목소리로 사향가를 읽고 있는 이 할머니는 합강에서 열여덟 살에 무실로 시집온 신분형 할머니다. 그때 일흔세 살이라던 그이가 물을 피해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그이의 이삿짐 귀중품 속에는 가사 두루마리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무실 체장수 83년 3월 16일 ⓒ김복영

그때만 해도 양 어깨에 체를 잔뜩 걸머멘 체장수가 골목을 돌며 목청을 돋우고, 주기적으로 건어물 장수도 들리곤 했었다. 참 옛일 같다.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었던 체는 거칠고 성근 얼게미부터 고춧가루 콩가루를 치던 체, 술 거르고 간장 거르는 촘촘하고 고운 체까지 서로 다른 크기로 용도에 따라 몇 개씩은 있어야 되는 가정의 필수품이었다. 당시 농촌에서는 현금보다는 현물인 곡식류로 물물교환이 주로 이루어지다 보니 행상들의 짐무게는 갈수록 늘어나게 마련이었다. 이 체장수도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어깨에 걸린 체 숫자에 반비례해 머리에 인 곡식 자루의 부피가 늘어날 것이다.

중평 86년 11월 9일 ⓒ김복영

입담배를 생산하던 농가는 칠팔월이 가장 힘든 때이다. 사람 키만큼 자란 담배밭골을 오가며 진액이 끈적거리는 담뱃잎을 따 모으는 일부터 따온 잎담배를 엮고 말리고 선별하는 일까지, 일손이 많이 필요한 농사이면서 더위가 한창인 이 시기에 해야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때맞춰 해야 되는 농사일이란 게 대체로 이웃 간 품앗이와 두레로 이루어지지만 특히 잎담배 생산은 시간을 다투는 일이다보니 으레 이웃들의 손이 다 동원되는 두렛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맛재 87년 8월 9일 ⓒ김복영

이날도 임동면 맛재의 어느 농가에서 건조실 한 굴 담배 다는 일을 끝내고 어른 아이 할것 없이 온 이웃이 마당가에 둘러앉아 돼지고기 파티를 하는 모습이다. 하루 일을 마무리하고 땀 젖은 셔츠 사이로 서늘한 저녁바람을 맞으며 이웃들과 나누는 막걸리 한 잔 돼지고기 한 점에서 농촌의 행복감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야외 불고기판 대용으로 너도나도 슬레이트 조각을 들고 나오던 시절이었다.

* 이 기사는 (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의 계간지 『기록창고』 6호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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