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鶴)의 고장 안동
학(鶴)의 고장 안동
  • 최성달 (작가)
  • 승인 2010.09.2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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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최성달 마애선사유적전시관 박물관장
▲최성달 마애선사유적전시관 박물관장

학은 우리말로 두루미라고 하는데 한자로는 선학(仙鶴), 선금(仙禽), 노금(露禽),태금(胎禽), 단정학(丹頂鶴)이라고 했다.

학을 바라보는 인간의 관념이 동경과 흠모가 듬뿍 담겨 있다는 것은 이름에서부터 금방 드러난다. 긴 목으로 자태를 뽐내고 사뿐히 내려앉은 모양새가 우아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 때문이어서인지 학은 인간의 생활전반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도교적 이미지에서 학은 장생(長生)과 풍수해를 막아주는 영물로 인식되어 귀한 대접을 받았다.

이러한 예는 벌써 청동기시대 때부터 시작되어 후대로 내려오면서 더 성횡했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 공예품에 구름과 학을 조화시킨 운학문이 등장하고, 고려조의 학은 각종 공예품이나 그림에 날개를 쫙 편 동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풍수 지리적 측면에서도 학은 어김없이 마을을 지키는 서낭의 역할을 하고 있다. 송학동, 백학동, 무학동 등 학처럼 생긴 땅에는 어김없이 학이라는 글자를 넣어 마을 이름을 지었다.

학이 생활전반에 완전하게 뿌리를 내린 것은 조선조이다. 관직의 품계에서 학을 수놓은 흉배를 다는 문관을 학반(鶴班)이라고 했고, 의관의 후수(後綬)에 3품 이상의 관리는 학을 수놓았다.
아울러 그림이나 시의 소재로도 활발하게 채택이 되었고, 선비의 표상으로 학이 의인화 되거나 숭배되었다. 몸과 마음을 닦아 도를 실천한 선비를 학명지사(鶴鳴志士)라고 하거나 반대로 은거하여 도를 이루지 못한 것을 학명지탄(鶴鳴之歎)하여 부끄러움으로 여기고 탄식했다.

학과 선비가 하나의 상징체계로 묶여진 탓에 이러한 시대적 기류는 특히 안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학문을 숭상하는 지역적 분위기가 더해져 학을 지명이나 문집, 호로 사용한 경우가 다른 지역보다 더 강하게 나타났다. 참고로 아래는 조선시대 안동출신으로 자신의 호를 학과 연관 시킨 인물들의 문집이다. 9명이 학 관련 호를 사용하고 문집에도 그대로 사용했는데 이러한 예는 다른 지역에 비해 현저하고 특이한 경우다.

안동출신 인사 문헌 9권
ㆍ학립집鶴林集 목판 권 방權訪(안동)
ㆍ학봉집鶴峰集 목판 김성일金誠一(의성)
ㆍ학산집鶴山集 유응목柳膺睦(풍산)
ㆍ학사집鶴沙集 목판 김응조金應祖(풍산)
ㆍ학서집鶴棲集 조병상趙秉相(한양)
ㆍ학서집鶴棲集 목판 유태좌柳台佐(풍산)
ㆍ학천집鶴川集 목판 이봉춘李逢春(진성)
ㆍ학천집鶴天集 김병문金秉文(의성)
ㆍ학호집鶴湖集 목판 김봉조金奉祖(풍산)

안동은 이외에도 지명과 관련해서도 학 지명이 전국에서 제일 많다. 옛 문헌을 상고하고 현재 지명을 참고하면 이렇다.

학가산(영가지), 길안면 금곡리 위치한 황학산(안동의 지명유래집), 길안면 대사리 소재 학소대(지명 유래집), 도산면 가송리 월명담 위 봉우리인 학소대(지명 유래집), 학가산 학서대(안동향토지), 서후면 저전리 권익창을 제향한 학암서원(안동향토지), 천년기념물 제200호로 지정된 가송리 오학(안동향토지), 서후면 태장리 의성김씨 조상을 추모하고자 지은 정자인 학천정(지명 유래집), 와룡면 현사사에 있었다던 가학루(안동향토지), 예안면 동천리의 또 다른 지명이 원학 또는 원학리라고 기록하고 있는 (지명유래집), 와룡면 태리 소재 금학골(안동의 지명유래집), 일직면 현 구미천 하류에 있는 학천(영가지, 안동향토지), 예안면 한곡에 있는 금학산 금학봉(영가지, 선성지), 금학산(안동 향토지).

(이 글은 안동시청 이오호 문화예술과장이 수집해 놓은 자료를 바탕으로 쓰여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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