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기록활동이 지역사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다
생애기록활동이 지역사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다
  • 유경상
  • 승인 2021.05.0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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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기록창고] - 열 번째 문을 열면서
유경상 (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 이사장
유경상 (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 이사장

1966년에 태어난 필자의 입장에서 지나온 55년의 시간은 가히 경천동지할 세상을 선물 받은 것처럼 보인다. 1973년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매일 걸었던 십리 등굣길은 비포장 신작로였다. 시내버스는 서너 번 지나갔다. 백여 호 안팎 마을은 초저녁이 지나면 전깃불 하나 없이 깜깜한 어둠속에 잠겼다. 마을 뒤 깊은 산골짜기에선 간혹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재 너머 윗동네 제사에 참석했던 아재는 늦은 밤 귀가 중에 늑대가 따라왔다며 흥분했다.

한글을 깨치고 입학을 했지만 읽을거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어머니를 졸라 먼 친척 아저씨 댁에 동화책을 빌리러 가던 시커먼 골목길이 아직도 생생하다. 남폿불을 든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따라나섰지만 신명이 뻗쳐올랐다. 두 권의 『안데르센동화』, 『최영장군』을 한참 동안 읽고 또 읽었다.

매일 써야만 했던 일기장은 한두 번 지우개로 지우면 너덜해지기 일쑤였다. 조심스럽게 잡아도 연필심지가 왜 잘 부러지는지 몰랐다. 호롱불 아래 졸다가 앞머리카락을 살짝 태운 친구도 많았던 그 시절. 우리세대가 처음 나간 바깥세상은 낯설고 서툴렀지만 당연한 것이었다.

50여 년 시간이 흘렀고 우리를 둘러싼 생활환경은 믿기지 못할 정도로 뒤바뀌었다. 좁은 신작로는 4차선 도로와 고속도로로 바뀌며 1인 자가용 시대가, 호롱불은 365일 꺼질 줄 모르는 전깃불로 발전했다. 군불 때던 초가집에서 찬물 말아 먹던 보리밥과 짠지는 온수가 나오는 아파트와 기름진 고기반찬으로 교체됐다. 누런 종이에 연필로 쓰던 글쓰기는 이제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전환됐다. 상업과 공업을 중심축으로 삼은 산업화는 2000년을 기점으로 최첨단 디지털정보혁명으로 발돋움했다. 이제부터는 사물인터넷 시대가 열리고 인공지능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자율주행자동차를 선두로 냉장고, 아파트에도 유사 의식이 탑재되는 디지털신세계로 넘어가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운전을 하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흙과 기름을 기억하게 될 마지막 세대일 수 있다. 우리의 행동과 의식은 매일 분초(分秒)를 스스로 기록하거나 타율에 의해 기록되어지는 숙명에 돌입했다.

1, 2차 산업의 밑바닥 현장에서 헌신한 나의 부모세대는 이제 노령화로 접어들었다. 허리가 휘어질 정도의 강도 높은 노동의 결실을 기반으로 이제 정보산업혁명의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정보문화세상의 세기가 열릴 때에 역설적이지만 부모세대 인생의 꽃은 시들고 있다.

나는 이즈음에서 나의 기록을 남기려고 노력하는 것보단 내 부모의 삶을 기록하는 것을 소망하고 있다. 그 계기는 2018년 10월에 고인이 된 김서령 작가의 『여자전-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를 다시 탐독하고부터다. 한국현대사를 아프게 헤쳐 나온 여자들의 이야기 앞에서 전율했다던 김 작가는 안동출신의 이야기 수집가였다. 여러 권 중에서 왜 이 책을 다시 탐독하게 됐을까? 내 책장 구석에 꽂혀 홀로 잠자고 있던 어머니의 생전 일기장을 다시 끄집어낸 탓도 분명 있었다.

내 기록은 여기저기에 남겨질 것이지만, 내 부모의 기록은 내가 아니면 기록해 낼 주체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부모의 삶을 가장 가깝게 바라보았던 자식이었고, 당신들과 동일세대로 희로애락을 함께 겪었던 친인척과 지인들을 쉽게 찾아낼 사람도 나뿐이지 않을까 싶다.

오십대 중반 우리세대는 아날로그 생활문화를 체험한 이전 세대와 이후의 전자디지털 세대의 중간지대에 서 있다. 아날로그 세대는 전자디지털을 학습해도 온전히 체화하는 게 어렵다. 그들을 따라가기도 힘겹다. 서로 이질적인 문화를 향유하는 전혀 다른 인류가 등장한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조금씩 경험한 두 세대를 이어줄 관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신세계를 목전에 앞두고 있는데도, 디지털 이전과 이후 세대 모두가 행복하지 않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사회적 재부의 양극화, 극심한 경쟁 제일주의, 황금만능주의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진단되고 있다.

그러나 이 모순을 극복하는 것만으로 행복이 성취되거나 충족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라고 믿고 살아갈까? 소통과 이해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처지와 형편을 뛰어넘는 ‘소통과 이해’가 ‘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소통과 이해의 첨병으로는 인터넷 소통망이 활약 중이다. 또한 윗세대의 기록과 기억의 가치를 깨닫고 이를 담지하고 유산으로 전환해내고 있는 기록·기억의 계승활동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세대의 업적과 유산을 개인 생애사로 기록해 주는 것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작업이다. 개인의 기록이 점이라면, 점이 모인 선은 골목이 되고, 선이 모인 면은 바로 지역사의 더 넓은 지평을 개척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가 약해져서 사회적 위기 상황이 심각해졌다. 지금의 사회적 위기상황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하나의 선택으로 지역사회가 역사와 인문적 도시로 나아가는 재생을 희망하고 있다. 분단과 전쟁의 70년사가 지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분단과 전쟁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세대가 분단의 심층을 꿰뚫어내는 성찰과 화해의 교육에 앞장설 때다.

이를 위해서는 전통과의 단절을 이어주는 전통재접속이 긴요하다. 그 재접속의 1단계는 지난 100년사가 마땅하다. 자기를 부정하고 상실로 치달았던 근대화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좌우합작과 함께 고금합작 운동을 새롭게 펼쳐야 할 때다. 그 첫걸음을 100년사 속에 묻혀버린 주민생애의 발굴, 수집, 스토리화로 나아가길 기대해 본다.

개인생애사 글쓰기 강좌 (경북기록문화연구원 자료사진)
개인생애사 글쓰기 강좌 (경북기록문화연구원 자료사진)
개인생애사 글쓰기 강좌를 마친 후 각각 출간된 책자 든 수료식 (경북기록문화연구원 자료사진)
개인생애사 글쓰기 강좌를 마친 후 각각 출간된 책자를 들고 수료식하는 모습 (경북기록문화연구원 자료사진)

[위 칼럼은 계간 기록창고 10호(2021년 봄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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