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정치의 달인은 ‘딴따라’였다
의성 일산복어 대표
생활정치의 달인은 ‘딴따라’였다
의성 일산복어 대표
  • 유길상 기자
  • 승인 2010.11.08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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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생활정치’를 얘기해 오고 있다. 생활정치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일까. 전국의 곳곳에서, 다양한 계층에서 조그맣게 벌어지고 있고 또 소박하게 실천되고 있는 무수한 일상들이 모두 생활정치의 모습일 것이다. 당원의 참여와 소통으로 제2의 창당을 기치로 내건 국민참여당 경북도당. 생활 속에서 지역 풀뿌리 민주주의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당원들을 찾아 그들의 일상을 엿보기로 한다. <경북인 뉴스>가 만난 사람은 소년 같은 순수함이 묻어 있고 베풀 줄 아는 사람, 욕심이 없기에 참 친근함을 느끼게 하는 최대삼 국민참여당 경북도당 당헌당기위원장이다. <편집자주> 

▲ 최대삼 위원장

음악을 사랑했던 인생, 복어집 사장이 되고

지난 몇 개월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한 케이블방송을 통해 우리는 음악의 위대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일명 ‘슈스케’ 슈퍼스타 K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이 오디션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지나온 삶의 역경 속에서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주는 선율 속에 감동과 함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음악인들의 삶을 알기에도 충분했다. 이렇듯 음악은 그 사람의 삶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어린 학창 시절 무작정 좋아서 시작한 음악이 지금은 인생의 동반자로서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최대삼(54) 의성 일산복어 대표. 젊은 시절 그룹사운드를 결성해 대구 및 경북전역 밤업소를 다니며 한때 연주활동을 하며 배고픈 음악 인생을 살았다.

“지금도 드럼을 두드리며 음악에 심취하다 보면 일상생활에서 받았던 모든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묘한 매력에 빠져 든다”는 최 대표는 아직도 생활 틈틈이 자신만의 작업 공간 속에서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며 스틱을 두드린다. 가끔씩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일상의 도피처이자 작업실은 다름 아닌 그가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경북 의성읍내에 위치한 ‘일산복어식당’ 뒤편 한 평 남짓한 조그만 공간이다. 

▲ 1평 남짓 작은 공간에서 가끔 음악에 빠지곤 한다

소위 떠돌이 딴따라 인생을 살아오던 그가 일반음식도 아닌 복어 전문 식당을 하게 된 경위 또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초창기에는 많이 힘들었다. 1994년에 현재의 식당을 개업했으니 약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배고프던 떠돌이 생활도 청산해야 했고,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가장이라는 책임감도 생기고 해서 요식업을 고민하게 되었는데, 경쟁력이 없는 흔한 일반 음식점보다는 희소성이 있는 것을 해보자는 생각에 복어 전문점을 하게 되었다”는 최 대표는 대구에 있는 복어요리학원에 다니며 직접 복어전문요리사 자격증까지 따기도 했다. 딴따라가 경북 최초의 복어 독(毒)을 다루는 기술자로 변신한 것이다.

지금도 직접 복어를 손질하고 있는 최 대표는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꼭 지켜야 하는 철칙이 있다. “당시 주로 밤업소를 중심으로 연주활동을 다녔다. 그러다 보니 끼니는 식당에서 주로 해결하게 되었는데, 대부분 식당들이 재활용 반찬을 사용 했었다”며 지난날의 경험을 회상하던 그가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항상 강조한다는 철칙은 “적정량을 내고 남은 찬은 버려라!”라고. 

▲ 인생의 가장 소중한 동반자 아내와 함께

  노사모로 시작, 생활정치 달인이 되다

“정치라는 것에 특별히 관심이 없었다. 2002년 노사모 회원으로 지역에서 조그마하게 활동했던 것 외에는 내세울게 없었다. 그러면서 2004년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는 걸 보고 ‘이건 아니다’ 싶어 지역에서 활동하던 시민단체 및 종교인사와 만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개혁성향의 열린우리당 경북지역 당원들과 교감을 가지며 지역의 현안 및 과제를 함께 고민했다”고 최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내력을 설명한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국민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지 실감을 느낀다며 소년처럼 들뜬다.

또한, 최 대표는 2006년 5.31 지방선거 당시 열린우리당 선출직 군의원을 당선시킨 것을 지역정치를 하면서 처음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고 술회한다. 민주정부 10년의 발자취를 이어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강조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에 바탕을 둔 국민참여당의 약속에 기꺼이 동참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경북도당 당헌당기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평소 ‘시계를 보지 말고 나침판을 보자’ 라는 말씀을 즐겨하셨다. 지금도 가끔 산행을 하는 나로서는 산을 오르며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항상 마음에 새겨 두는 인생의 철학으로 삼고 있다”는 최 대표는 참여당 경북도당에 대해서도 “창당 당시 가고자 했던 길이 옳은 길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초심을 잃지 말기를 바랄 뿐”이라며 경북도당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도 곁들인다.

여기에 현재 최 대표는 의성군에서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신라시대 의성지역을 중심으로 400년간 존속했다가 신라에 복속된 조문국을 되살리기 위해 ‘조문국박물관건립추진 범군민연대’ 사무국장으로 지역 공무원 및 언론과 힘을 합쳐 참여정부 당시 교부세 7억을 받아 내는 등 지역현안 사업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또한, 그는 의성지역의 종교계와 진보개혁성향의 시민단체 및 야당과 함께 (가칭)의성희망연대를 결성해 지역의 올바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단일화 된 창구를 만들기 위해 실질적으로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정말 딴따라가 생활정치의 교과서가 되어버린 셈이다.

“음악활동을 하면서 항상 배고팠다. 당시엔 경제적으로 편안한 환경에서 음악활동을 하고자 하는 소박한 꿈이 있었다. 나이가 들며 젊었을 때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아직 음악은 내 인생의 일부분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지역 청소년들을 위해 조그만 연주공간을 만들어 함께 연주를 하며 인생의 밝은 면을 보게끔 하는 것 또한 작은 소망이다”며 최 대표는 아직도 음악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과 못 다한 꿈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친다.

이제는 국민참여당 경북도당의 생활정치의 달인 최대삼. “현실적으로 아직은 지역에서 국민참여당의 목소리를 내기가 여건상 많은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기에 할 일이 참 많다. 젊고 참신한 인물을 발굴해 국민참여당이 가지고 있는 철학과 정책을 지역정서에 맞게 실현하고 싶다”는 최 대표는 음악이 내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듯이 생활정치를 통해 미력하나마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다부지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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