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풍경- 다시 선창에 닻줄을 매다
그때 그 풍경- 다시 선창에 닻줄을 매다
  • 편집부
  • 승인 2021.06.0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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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57년 전인 1763년, 강산에 봄기운이 완연하던 어느 화창한 날. 안동 법흥의 임청각 주인이던 선비 허주虛舟 이종악李宗岳(1726-1773)은 몇몇 벗들과 더불어 자신의 집 앞 동호에서 배를 띄워 반변천을 거슬러 산수 유람을 떠났다. 배 안에는 거문고와 다구를 갖추어 싣고 꼼꼼하게 화구畵具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허주의 나이 38세 때 4월 초나흘의 일이다.

이들의 선유는 선어대, 백운정을 거쳐 칠탄에서 기다리던 망천, 박실의 선비들과 합류하여 다시 사수(사빈 앞)를 지나 낙연落淵(陶淵)을 향해 노를 젓는 것으로 이어졌다. 거침없이 반변천을 오르던 이들은 악사 입구의 선창에 이르러 닻줄을 맨다. 도연선창陶淵仙倉이라고도 하는 이곳은 강바닥이 온통 크고 작은 바위로 이루어져 더 이상 배로 이동할 수 없어서다. 여기서 한 구비만 돌면 낙연이다. 수많은 문인 묵객들의 발길이 닿았던 낙연은 예로부터 강호처사의 은거지로, 원근 선비들의 수련의 장으로 각광을 받던 곳이기도하다.

도연선창의 동물 모양 바위들(ⓒ김복영)

허주는 4월 8일 저녁 반구정 앞에 배를 댈 때까지 5일간의 선유에서 반변천 일대의 승경을 12장의 화폭에 담아 『허주부군산수유첩虛舟府君山水遺帖』이라는 한권의 화첩을 남겼다. ‘선창계람船倉繫纜(선창에 닻줄을 매다)’이라 화제를 붙인 이 그림은 그중의 한 폭으로 선창 풍광을 그린것인데 250년 세월을 건너 뛰어 임하댐 수몰 전 사진에담긴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림에는 모래톱에 배를 묶고 강가에 넓게 돌출된 바위 위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한 무리는 거문고 음률을 즐기고 일부는 한가로이 선창의 기암괴석을 완상하는 선비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옛날에 풍류 선비들이 즐겨 찾았던 선창은 현대에는 수많은 사진동호인들이 발길을 이어가며 산천의 의구함을 증명해 주던 곳이기도 하다.

허주가 그림으로 남겼던 선창에 다녀간 지 224년 뒤인 1987년 4월 9일, 그때의 허주 나이와 동갑인 임재해 안동대학 교수가 수몰지구 답사에 나섰던 일행과 허주의 그림 속 어느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남겼다. 220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장소에서 의구한 산천과 간데없을 산천을 바라보는 그들의 느낌은 어떤 것일까?

아! 누가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고 했던가. 오늘날 그 의구하던 산천마저 인간의 이기심에 밀려 간데없는데 본시 속절없는 인걸이야 입에 담아 뭣하겠는가. 그림 속 인걸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3,40대이던 사진속 인물들이 어느덧 7,80대의 세월을 저미고 있으니 이들도 필경 간데없을 인걸일 터. 이참에 임하댐에 잠긴 시간을 비집고 간데없는 산천을 추억해 본다.

강 가운데 암석은

별을 늘어놓은 듯

바둑알을 펼쳐놓은 듯하고

엎드린 형상은 용이 웅크린 듯하다.

- 김세락(1854-1929)의 『유주왕산록遊周王山錄』 중

 

* 이 기사는 (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의 계간지 『기록창고』 9호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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