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안동역-운흥동 안동역의 마지막 모습
굿바이 안동역-운흥동 안동역의 마지막 모습
  • 백소애(기록창고 편집인)
  • 승인 2021.06.02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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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6일, 이전을 하루 앞둔 안동역에는 운흥동 기차역의 마지막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초로에 접어든 중년의 친구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제천까지 왕복으로 다녀왔다.

학창시절 레슨을 위해 자주 플랫폼에 섰던 성악가는 이제 영영 기차가 서지 않는 운흥동 안동역에 안녕을 고하며 살짝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들 모두 청춘을 태웠던, 한 시절을 싣고 내달렸던 안동역에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이 글은 안동 원도심의 상징과 같았던 운흥동 안동역이 송현동 버스터미널 옆으로 이전하기 전 마지막 날의 짧은 기록이다.

안동역 전경(ⓒ류승종)

#승객도 역무원도 이별할 시간

20년 넘게 역내에서 편의점을 운영한 부부도, 오랜 시간 매표 업무를 하고 입환 작업을 한 역무원들도 운흥동 역 광장에서 마지막 기념사진을 남긴다. 시민들은 각자의 아쉬움을 포스트잇에 붙여 안녕을 고한다.

‘처음 왔는데 오자마자 이전이라니….’ ‘안동역 급수탑, 그 자리에 있어주세요.’ ‘시원섭섭하다’ 등의 글귀 중에서도 발길을 멈추게 하는 메모가 있다.

‘90년간 고생했어.’

 

#밤기차

근 몇 년 기차를 자주 탔다. 저녁 7시 13분에 출발하는 청량리발 기차를 타고 종착역인 안동역에 내리면 역전파출소 홀로 잠들지 않고 시내는 고요했다. 모바일 승차권에는 23시 7분 도착이라고 적혀 있지만 제 시간에 도착하는 적은 드물고 대부분 몇 분 연착이다.

대도시와 달리 승강장에 기다리는 택시보다 손님이 더 적을 때가 많다. 지방역은 대체적으로 출발의 기운이 감도는 곳이지 도착의 기운이 감도는 곳은 아니다. 도회지로 향하는 이들이 종종걸음을 재촉하던 곳. 개찰구라 불리던 개표구에서 배웅을 하거나 입장권을 끊어 어머니의 보따리짐을 기차 짐칸에 올려주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던 곳, 플랫폼에서 안타까운 이별을 하는 연인을 보던 곳.

기차는 지금의 7080세대들에게는 낭만의 산물이다. 밤 기차를 타고 청량리에 혹은 부전에 도착했던 청춘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곳이 아니던가.

 

#낙동강 철교

운산, 무릉, 안동역 등 총35년 3개월을 철도청에 근무하고 퇴직한 임수행 씨.

낙동강 철교를 달리는 기차의 마지막 모습을 찍기 위해 영하의 날씨에 안동인도교를 찾았다.

그는 40여 년 전에도 낙동강 철교를 달리는 기차, 낙동강변 빨래터 등 지역민의 생활밀착형 사진을 기록으로 많이 남겨두었다.

 

#청량리행 마지막 상행 열차

12월 16일 오후 5시 32분 안동발 청량리행 제1608 마지막 상행 기차.

운흥동의 마지막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언론사, 사진동호회, 철도동호회, 블로거들이 몰렸다.

빼꼼히 고개 내민 급수탑이 보는 가운데 기차는 철로 위를 내달린다.

 

#석주 선생과 종손

12월 16일 저녁 7시 38분, 동해발 부전행 제1681 무궁화호 안동역 도착.

경술국치를 당하자 독립자금을 마련해 만주 망명길에 오른 석주 이상룡 선생이 “공자와 맹자는 나라를 되찾은 뒤에 읽어도 늦지 않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길.

선생의 거국음去國吟(조국을 떠나면서 읊는다)이 들릴 것 같은 겨울 저녁, 고성이씨 임청각 종손 이창수 씨는 안동역에 도착한 마지막 열차에서 내렸다. 그는 다소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는데 1911년 ‘칼끝보다 날카로운 삭풍’을 헤치며 압록강을 건넌 석주 선생의 망명 시판 ‘도강渡江’을 들고 안동역에 도착했다.

‘누구를 위해 발길 머뭇하랴, 돌아보지 않고 호연히 나아가리라’

시판에 새긴 글귀는 겨울보다 매섭고 의연한 기운이 감돌았다.

종손의 삼촌이자 석주 선생의 증손 이항증 선생은 “임청각을 복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라는 일갈로 석주 선생의 정신을 잇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정신임을 일깨워 주었다.

 

#임청각 방음벽 허물기

12월 17일 정오에는 ‘임청각 앞 기차운행 종단행사’가 진행돼 ‘임청각 열차 방음벽 철거’ 퍼포먼스를 가졌다.

오랜 세월 임청각 앞마당을 가로질러 민족정기를 끊고자 했던 일제의 만행을 깨부순다는 상징적 행위였다.

‘중단’이 아닌 ‘종단’으로 임청각의 새로운 역사를 여는 의미를 되새겼다.

 

#그리고 송현동 안동역

겨울이 떨궈진 레일 위….

길게 여운을 남기며 기차는 떠난다.

운흥동 90년의 세월을 갈무리하고

지역민의 발이 되어 기쁨과 슬픔, 사연을 싣고 달렸던 기차는

이제 안동의 서쪽 송현동에서 새로운 사연을 안고 달린다.

남은 역사의 활용방안과 시민이 공유할 공간으로

재탄생할 것인지에 대한 숙제를 남기고

송현동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안녕, 새벽녘 취객이 다녀갔을 역전파출소

안녕, 시위대와 전경들이 대치했던 승공탑

안녕, 첫눈이 내리던 날 안동역 노래비

안녕, 일찍이 없어졌던 시계탑

안녕! 운흥동 안동역.

 

* 이 기사는 (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의 계간지 『기록창고』 9호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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