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드로잉 ⑧-이름마저 물에 잠긴 마을 ‘월곡’
메모리 드로잉 ⑧-이름마저 물에 잠긴 마을 ‘월곡’
  • 조영옥(화가)
  • 승인 2021.06.02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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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청거려야 할 세밑이지만 코로나 상황은 모든 것에 잠시 멈춤을 요구한다. 이런 시국에도 나만은 괜찮을 것이라는 맹목적 확신으로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감염원을 찾지 못하는 n차 확진자들이 쏟아지고 그 결과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단계를 높이면서 국민들의 불편과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세상에는 두려워하는 사람과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나의 행복이 아니라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는 타인의 행복과 세상을 파괴한다. 수많은 자영업자나 비정규직 생활자나 예술인들의 삶도 더욱 팍팍해져 생계에 위협을 느끼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다.

거리로 뛰쳐나와 방역수칙을 어기고 유흥업소에서 흥청대거나 끝없이 줄 서 있는 스키장의 행렬을 보면서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방송 화면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영옥)

첫눈이 내리던 날, 안동댐 수몰지역을 찾았다.

거대한 안동댐 공사로 수몰된 지역은 예안면, 와룡면, 도산면, 월곡면 등이 있는데

유독 월곡면만 이름을 잃었다.

그래서 월곡면의 중심이었던 정산리를 찾았다.

정산리는 현재 예안면소재지가 되어 있다.

예안면이 수몰되면서 서부리에 있던 예안면사무소가 월곡면 정산리로 이전되면서

월곡면과 통합되어 예안면이 되고 월곡면이라는 이름은 사라져 버렸다.

이곳이 월곡면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은 오직 하나 월곡초등학교뿐이다.

월곡(月谷) 달골- ‘달빛 가득한 골짜기’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그윽하다.

믈속에 잠겨 있는 이곳은 어떠한 마을이었을지 사람들의 삶은 어떠했을지 궁금하였지만

무엇보다 인정이 온누리 비치는 달빛처럼 넉넉한 곳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영옥)

월곡의 흔적은 안동댐에 있는 목책인도교인 월영교에서 볼 수 있다.

‘월영교’라는 이름은 수몰된 월곡면 사월동의 정자인

‘금하재’와 ‘월영대’라 새겨진 자연석을

성곡동 쪽으로 옮겨 세웠고 월영대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한다.

눈을 맞으며 마을을 돌아보았다.

정산 1리, 등재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면소재지 쪽으로 걸어오다 보니

처음부터 있었던 정산리 마을의 모습이 보였고

행정복지센터로 이름이 바뀐 면사무소 쪽은

1976년 안동댐 지역 수몰과 함께

월곡리 수몰지역 사람들이 옮겨와 사는 곳이다.

아마도 마을은 이미 조성되어 수몰되기 전에 옮겨 왔으리라.

(ⓒ조영옥)

드문드문 낡은 모습으로 서 있는 예전 마을에 비해

면사무소 주변 지역에는 반듯반듯한 슬라브집이 줄 지어 서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미 50년이 다 되어 가는 세월 속에 그마저 낡아지고 있었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시장도 썰렁하고 식당은 텅 비어 있다.

코로나 탓이기도 하겠지만 별로 흥청일 요인이 없어 보였다.

철물과 잡화 등을 파는 풍년상회 아저씨의 말을 들으니 처음부터 터를 잘못 잡았다 했다.

하다못해 주진교 근처 물가에 집이 있었더라면

고기를 잡아 살 수 있을 터인데……. 기운 없이 말을 했다.

수몰 당시 돈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마을을 떠나 도시로 가 버렸고

없는 사람들은 가장 땅값이 싼 산꼭대기에 터를 잡게 되었다고 했다.

수몰도 같은 수몰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과

지금도 여전히 번듯하고 기품 있는 오천리 한옥마을이 떠올랐다.

그런 생각으로 다시 마을을 돌아보니 더욱 애틋한 마음이 되었다.

하얀 눈이 지붕의 누추함은 덮는 듯하지만

길가 늘어진 가재도구나 기물 위의 눈은 살림살이의 스산함을 더 강조한다.

그런 중에 집집마다 벽면의 아래에는 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기운차게 배 띄우 듯 나가자는 뜻인가?

안동댐의 물길인가?

물에 잠긴 마을을 물위로 모셔 오는 것인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외 속의 소외’ 월곡이라 불러주면 소외 하나가 없어질까?

물에 잠긴 월곡의 마을을 떠나 산에 올라 온 사람들의 마음도 어쩌면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정산리를 떠났는데 ‘월곡’이란 이름으로 오래 기억할 것 같다.

 

* 이 기사는 (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의 계간지 『기록창고』 9호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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