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탐방 ‘같이 가볼까’ ⑩-문경 가은역
문화공간탐방 ‘같이 가볼까’ ⑩-문경 가은역
  • 신준영(이육사문학관 사무차장)
  • 승인 2021.06.0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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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행열차로는 갈 수 없는 곳

문경 옛 가은역

문경 가은역(ⓒ신준영)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설립된 안동역이 90년 역사를 뒤로 하고 운흥동에서 송현동으로 옮겨갔다. 기능을 상실한 안동역 및 옛 중앙선 철도 부지는 관광·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된다고 한다. 국가철도공단은 중앙선 철도이설에 따라 발생하는 안동지역 폐선부지 활용을 위해 안동시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기존 역 주변 도심을 개발하여 지역경제 활력 제고에 나서기로 했다는 뉴스가 잇따랐다. 내용을 보면 일제가 훼손한 상해임시정부 초대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 복원과 옛 안동역 부지 개발사업, 테마파크 조성 등이 포함되어 있다. 국유재산의 가치 증대와 일자리 창출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 또한 크다.

철도이설로 역할을 다한 기존의 철로는 이미 철거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마사역이며 무릉역이며 운산역이며 이하역이며 폐역이 된 역사들의 운명이 마음 쓰이지 않을 수 없다. 마침 역사驛舍마다 웅크린 역사歷史를 일으켜 마주 앉는 일의 가능성을 잘 보여주는 폐역의 성공 사례가 가까운 곳에 있어 찾아보기로 하였다.

이른바 핫플레이스로 거듭난 문경의 옛 가은역이다. 옛 가은역으로 향하는 길은 봄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길이었다. 벚꽃이며 복숭아꽃이며 한결같이 절정을 지나고 있었는데 오락가락 하는 봄비 속에서 뱉어내는 봄꽃들의 숨소리가 귓전에서 들리는 듯 착각이 일 정도였다. 안동에서 한 시간 남짓 꽃길을 달리자 문경시 가은읍 완능리에 닿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란 말이 있다. 마침 가은시장이 열린 날이었다.

옛 가은역 앞에는 ‘문경 구 가은역’ 안내판과 나란히 ‘가은아자개장터’ 안내판이 서있었다. 안내판의 내용에 따르면 가은시장은 아자개장터로도 불리는데 조선시대부터 시장을 형성해 오다가 1981년 정식으로 시장 개설 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80년대 초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의해 가은의 광산이 폐광이 되면서 시장의 기능도 다소 쇠퇴했는데 현재의 가은시장인 아자개장터는 2011년 체험형 문화관광시장으로 재개장하여 상인과 지역민, 관광객이 함께 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한다. 대야산 등 심산에서 채취되는 다양한 산채가 많이 출하되고 있으며 특히, 철따라 송이, 고사리, 더덕, 두릅, 참나물 등이 풍부하게 출하되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여져 있었다. 아자개장터의 장날은 끝자리 4일과 9일의 5일장이다.

문경 옛 가은역은 국가등록문화재 제304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내판에 따르면 가은역은 은성광업소에서 생산한 석탄을 실어 나르려고 설치된 역으로 1956년 9월 15일에 석탄공사 은성광업소 명칭에 따라 ‘은성보통역’으로 운행하였다고 한다. 1959년 2월에 ‘가은역’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현재의 역사는 1955년 4월에 새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94년 은성광업소가 폐쇄되면서 여객 취급이 중단되어 폐역이 되었다고 한다.

가은역사는 박공지붕의 건물이다. 출입구 양쪽에 세로로 긴 창문을 내고 그 외의 창호는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었다. 해방 후에 지은 목조역사로서 광복 이후 철도 역사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점 등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가 되었다. 현재 역사는 근대문화유산 활용사업에 의해 ‘카페 가은역’ 이란 이름으로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가은선 철도에는 철로자전거와 어린이를 위한 꼬마기차도 운행되고 있다. 꼬마기차는 올해 3월 5일에 개장하였다.

가은역사는 ‘문경 가은역’이란 간판을 달고 옛 모습 그대로 원형이 보존되고 있다. 두 겹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왼쪽 매표소 옆에 옛 승차권들이 전시되어 있다. 역무원과 기관사의 유니폼, 기차를 멈추게도 하고 출발하게도 했을 깃발들도 방금 사용하던 모습인 듯 가지런히 놓여있다. 매표소 안은 카페의 주방 공간이며 카운터인데 분주한 직원들의 모습이 들여다보였다. 개찰구 입구에는 ‘타는 곳’이란 안내판이 옛 모습 그대로 붙어있다. 저 문턱을 넘으면 기차가 기다리고 있어 나는 기차를 타고 곧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잠시 해보아도 좋겠다.

문경 가은역 카페 내부(ⓒ신준영)

주말이라 빈자리가 없어 얼마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자리가 나기를 기다렸다. 소문대로 핫플레이스는 핫플레이스구나 싶었다. 비는 여전히 오다 말다를 반복하는데도 사람들의 발길은 이어지고 있었다. 오래 기다려 앉은 자리에서는 철로가 훤히 내다보였다. 이따금 키 큰 벚나무에서 꽃비가 쏟아졌고 철로 위를 뒤뚱거리며 걷는 아이 뒤를 젊은 아빠와 엄마가 조심스레 뒤따르고 있었다. 철로 옆 벤치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중년의 남자가 혼자 오래 앉아 있었다. 꼬마기차가 주기적으로 기적을 울리며 역사 옆을 돌아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아이들은 웃고 어른들은 손을 흔들었다.

‘카페 가은역’은 문경시에서 주관한 ‘등록문화재 활용 아이디어 공모전’에 응모하여 선정되었다고 한다. 문경시와 함께 20년 된 폐역을 개조하여 로컬푸드 카페를 콘셉트로 메뉴를 개발하였고, 지역주민 사업을 지원해주는 ‘관광두레’의 도움으로 메뉴도 연구 개발할 수 있었다고 한다. 메뉴판에 적힌 카페 가은역의 시그니처 메뉴는 문경 특산물인 사과를 활용한 사과밀크티, 사과모히또, 사과에이드, 사과콩포트, 사과라떼와 사과버터 등이다.

문경 가은역 카페 내부(ⓒ신준영)

문화재청은 2006년 간이역을 되살리기 위해 문헌조사와 관계전문가 현지조사를 통해 역사적·건축적·서정적 가치와 함께 인근 자연 풍광이 빼어나 보존가치가 큰 간이역을 문화재로 등록하였는데 가은역도 이때 문화재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문경시청 엄원식 문화예술과장으로부터 가은역이 성공적인 문화복합공간으로 탄생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가은역은 은성광업소가 폐광이 되면서 점차 수요가 줄어 폐역이 되었습니다. 2000년경 문경시에서 역사와 선로를 매입하면서 역사를 문화재로 지정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나 처음에는 간이역에 대한 역사적 인식 부족으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문경시에서 매입한 후 보존 노력에 힘입어 이후 문화재로 등록할 수 있었습니다. 별 활용 없이 6,7년을 두었다가 문화재 활용정책으로 활용 방법을 논의하게 되었죠. 예전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자는 방안도 있었고 관광객 유입을 위해 카페나 전시관, 숙박시설, 철로 관련시설 등으로 활용하자는 방안들도 있었어요. 결국 공모를 거쳐 왕릉3리 부녀회의 안이 당선되었고 카페로 3년째 운영 중입니다. 가은역은 간이역으로서 옛날 정취를 잘 간직하고 있어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에 좋습니다. 간이역에 대한 향수를 가진 분들이나 지역 출신들도 많이 찾아와 주시죠. 가은역에 관광객이 유치되면서 주변 상권에도 상당히 긍정적인 여파가 있어서 효과를 보고 있어요. 비록 모두가 어려운 코로나 기간이긴 하지만 새로운 관광 정책의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성과가 크죠. 정비 중인 가은양조장이 곧 오픈되면 가은역과 함께 가은의 랜드마크로 근대문화를 알리는 데도 큰 역할을 하리라 기대합니다. 가은은 광산으로 커진 동네로 철로문화, 간이역문화, 양조문화, 광산문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역사驛舍마다 웅크린 역사歷史를 일으켜 세워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일은 역사와 건축과 자연과 서정, 그리고 열정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안동역을 비롯한 폐역들의 다시 피어남, 그 환함을 기대해본다. 옛 가은역을 나와 시장이 선 아자개장터를 더 둘러보기로 했다. 역사 맞은 편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아자개장터 벽화거리가 나왔다. 다른 벽화거리와 달리 벽화의 주제가 다양했다. 벽화마다 작가명과 작품명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벽화는 아자개장터까지 쭉 이어지고 있었다. 장터는 옛 가은역에 비하면 한산했지만 다양한 모습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여행지에서 시장에 들릴 때면 식물을 사들고 오는 버릇이 있다. 문경 가은 아자개장터에서는 봄비를 머금은 ‘극락조’를 데려왔다.

 

* 이 기사는 (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의 계간지 『기록창고』 10호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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