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살아가는 지역사회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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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길상 기자
  • 승인 2010.12.23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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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치를 찾아서> (주)신영 안윤효 대표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생활정치’를 얘기해 오고 있다. 생활정치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일까. 전국의 곳곳에서, 다양한 계층에서 조그맣게 벌어지고 있고 또 소박하게 실천되고 있는 무수한 일상들이 모두 생활정치의 모습일 것이다. 국민과 함께 하는, 국민에 희망을 주는 당을 기치로 내건 한나라당. 생활 속에서 지역 정치 발전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몸소 실천하고 있는 생활정치인을 찾아 그들의 일상을 엿보기로 한다. <경북인신문>이 그 두 번째로 만난 사람은 말이 없지만 실천력이 강한 사람, 나만이 아닌 남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안윤효 한나라당 경북도당 부위원장이다. <편집자주>

전기와 함께 한 인생, 불우한 이웃의 등불이 되고 싶어

근대 문명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그 소중함을 간혹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삶속에서 어쩌면 당연시 되고 그저 주어진다는 망각 속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어두침침한 호롱불속에서 책을 읽으며 콧속이 새까맣게 그을려진 기억과 더불어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전봇대가 세워지고 전기가 들어오면서 농촌생활문명이 한순간에 변화되었던 아련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현대문명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모든 생활에서 전기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들 삶의 틀을 바꾸어 놓고 그 틀 속에서도 간혹 소중함을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가끔 그것이 가져다주는 생활의 편의를 한 번쯤은 순수한 마음으로 기억하면 좋을 듯싶다.

안동 농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주지방 철도청에서 3년여의 생활한 것을 제외하곤 지금까지 전기와 함께 삶을 살아오면서 어느덧 지역의 중견기업인으로 자리를 잡고 다양한 사회봉사와 함께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안윤효(49) (주)신영 대표이사. 아직은 젊은 나이에 속하지만 20년 이상을 남들이 어려워하고 위험하다고 여기는 한 업종에서 한 우물만 팔 만큼 우직한 성격의 소유자다.

“전기는 현대문명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과 생활에 밀접한 관계에 있다. 단 하루 아니 한 시간이라도 전기가 없는 현대인의 삶을 상상해 보면 참 끔찍하다. 하지만 우리가 편하게 쓰고 있는 전기. 그 이면에는 많은 이들의 아픔과 희생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안 대표는 전기업에 종사하는 당사자로서 지나온 선배들의 희생과 노력 없이 전기로 인한 현대문명의 안락한 삶이 없었음을 역설적으로 말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80년대에도 전기와 관련된 업종은 젊은이들이 기피할 정도로 위험한 3D업종에 속한다. 소위 잘나가던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남들이 기피하던 업종에 뛰어든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철도청에 9급 공무원으로 입사를 했다. 3년을 근무하고 군대를 다녀온 후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89년도에 대학을 졸업하고 교직에도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업종이 전기다”며 안 대표는 지금까지 한 번도 당시 선택에 대해 후회해 본 적이 없다. 97년 IMF 환란 이후 사업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동종업계가 경기 불황에 따라 소극적인 경영에 나선 반면 안 대표는 과감한 공격적인 경영에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 국민의 정부가 실시한 경기부양정책에 힘입어 한전이나 철도청에서 발주하는 공사를 다량 낙찰 받으면서 사업은 날로 번창해졌다. 97년 당시 10여명에 불과하던 직원 수가 지금은 어느덧 30여명으로 늘어나고 특수차량만 해도 약 40여대에 육박 할 정도로 (주)신영은 지역의 대표적인 전기공사업체로 자리를 잡았다. “워낙 힘들고 위험한 업종이라 직원들이 사고를 당하거나 재해를 입었을 때가 가장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위험스러운 직업에도 불구하고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직원들이 함께하고 있다”고 말하는 안 대표는 아무리 사업이 힘들어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직원들 월급을 미루지 않았다.

뒤늦게 시작한 정치, 기초의원 비례대표 출마하기도
“정치라는 것에 특별히 관심은 없었다. 2006년 5?31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 당원으로 처음 가입을 했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생명과학고 운영위원장을 맡으면서 탈당을 하게 되었다”는 안 대표에게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찾아온다. 2008년 4월 총선 당시 고등학교 동문인 김광림 현 의원이 지역 국회의원후보로 출마하면서 후보 지근거리에서 특보활동을 하게 되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가 국회의원으로 당선이 되고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 안 대표는 동반 입당을 하고 4급 보좌관으로 약 2년을 보냈다. 20여년을 사업에 전념하며 정치라는 생리를 전혀 몰랐던 안 대표는 2년의 기간 동안 지역의 실상을 파악하며 최선을 다했지만 각종 인사나 민원 청탁을 거절 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술회한다.

한편, 안 대표는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기초의원 비례대표로 출마를 하게 된다. 지역 국회의원의 권유로 출마를 했지만 아쉽게 낙선을 하며 고배를 마신 안 대표는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정치적인 당략을 떠나 지역 선후배 및 지인들과의 인간적인 관계가 많이 소원해진 것이 참 가슴이 아팠다”고 말한다. 정치 일선에서 뛰는 것보다 생활정치 속에서 묵묵히 활동을 하고 싶다는 안 대표는 현재 한나라당 경북도당 부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활동하면서 지역의 크고 작은 현안에 대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안 대표는 봉사단체인 안동중앙로타리 클럽의 회원으로 지역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항일 독립운동가로 광복 후 소설가로 활동한 중국 연변의 조선족 김학철 작가가 말한 ‘편하게 살려면 불의를 외면하고, 사람답게 살려면 그에 도전하라’는 것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는 안 대표는 기회가 된다면 가정환경이 어려운 청소년을 발굴해 장학사업을 꼭 하고 싶다고 말한다. 나 혼자만 편하게 살기보다는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지역사회를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는 그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문득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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