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집마다 묵히고 있는 옛 한지 세간에 윤기를 불어 넣자
집집마다 묵히고 있는 옛 한지 세간에 윤기를 불어 넣자
  • 배오직 기자
  • 승인 2011.02.17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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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소재로 이용 가능한 전통 안동한지

종이로 만든 물건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 그리고 인생의 희노애락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재료는 없는 것 같다. 특히 한지는 만든 이의 투박한 솜씨가 세련된 멋으로 자리 잡기에 충분하고 또 재활용으로 이용하기에도 참 편리했던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한지 공예기법이 있었다. 그 중 좁고 길게 자른 종이를 손으로 꼬아 그것을 다시 엮어서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드는 것으로 이것을 지승(紙繩)기법이라고 하는데 때론 헌책을 뜯어서 그것을 이용해 다양한 용도의 그릇을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이때 깨끗한 종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 인쇄된 서책을 이용하였는데 이것은 먹 글씨가 자연스럽게 무늬를 이루게 되어 운치 있는 세간을 만들고자 함이었다. 그렇지만 한 때는 소중한 서책을 함부로 다룬다 하여 지승 그릇을 금하였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몇해 전 외삼촌으로부터 작은 찻상을 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 한지로 만든 거무스름한 색깔의 물건이었는데 처음엔 작은 유리를 찻상 위에 깔아 손님 접대용으로 사용했었다. 습기에 약한 종이를 보호하려는 이유였다. 그런데 사용하다보니 잘 미끄러지고 또 찻잔과 유리가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고 불필요한 것 같아 유리를 빼고 사용했다. 그러니 오히려 소담스런 소리가 정겹게 다가왔고 찻상위에 새겨놓은 대나무 형상의 그림이 돋보이기 시작했다.

지금도 손님이 찾아오면 찻상의 용도로 쓰고 가끔은 앉은뱅이책상을 대신해 책을 읽을 때 사용하기도 한다.
지난 호 글에서 잠시 언급했던 「새색시 꽃가마 속 한지요강」은 안동김씨 어느 댁에서 사용했던 물건을 책을 쓴 저자가 여러 번의 수고 끝에 수집한 세간이다.
이렇듯 주위를 둘러보면 많이 남아 있지는 않겠지만, 집집마다 윗대 어르신들이 사용했던 소중한 세간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느 해인가 백일홍이 피기를 기다리던 어느 오후, 병산서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서원을 지키고 있는 ‘류시석(서원관리사무소)’ 씨를 만나기 위해 찾아 간 것인데 인터뷰 끝에 들려주었던 잔잔한 말이 지금도 참 기억에 남는다.
“서원을 쓸고 닦는 건 내 일이지만, 찾아서 윤을 내는 건 여러분들 몫입니다.”


평균 내공 22.3년, 초지공과 건조공 11인의 달인

안동사람들이 호남평야보다 더 넓다고 주장하는 풍산들을 옆에 두고 하회마을로 가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전통한지를 생산하고 있는 안동한지공장(회장 이영걸.71)을 만나게 된다.
현재 이곳에선 70여 가지의 한지를 생산하고 있고 이를 이용한 다채로운 친환경 한지공예품들이 전시되고 판매되는 상설 전시관 및 공예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1988년 설립된 안동한지공장은 지난 해 11월, 주요 20개국(G20)정상회의장의 벽면과 천정 등을 여기에서 생산된 안동한지로 장식하기도 해 그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공장의 내부는 역사가 말해 주듯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또한 이곳에서 전통한지를 생산하고 있는 장인들의 한지에 대한 열정은 오늘의 안동한지를 있게끔 한 산 증인들이다.
안동한지를 만드는 과정은 11단계를 거친다. 모두가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하는 수작업으로 그 과정은 지면상 대략 이렇다.

「국내에서 생산된 1년생 닥나무를 12월에서 그 다음해 3월말까지 채취하기」「닥나무를 가마솥에 넣고 10시간 정도 삶아서 벗기는 피닥 만들기」「불린 후 칼로 표피를 제거하는 백닥 만들기」「메밀짚을 태워 만든 잿물에 백닥을 넣어 6~7시간 정도 장작불로 삶기」「삶은 백닥을 3~4일 가량 헹굼과 볕에 쬐어 표백하기」「백닥의 불순물 제거」「티 고르기를 마친 닥을 넓은 돌판 위에 놓고 섬유가 죽이 될 때까지 두들기기」「닥죽을 지통에 물과 함께 황촉규 점액을 넣고 닥풀이 잘 섞이도록 저어주기」「발로 앞물을 떠서 뒤로 흘려버리고 옆물을 떠서 반대되는 쪽으로 여러 번 흘려보내기」「발로 건진 종이를 쌓아 올려놓고 널빤지를 얹고 무거운 돌을 올려 물 빼기」「종이를 한 장식 떼어 열판에 건조시키기」「말린 한지를 수백 번 두들겨서 밀도와 섬유질 형성 높이기」로 끝이 난다.

이곳에서 「쌍발초지공」으로 일하고 있는 경력 34년의 김재식 장인은 “작업의 특성상 한 겨울에도 맨손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 어려움이 있다. 그렇지만 세계에서 가장 좋은 종이를 생산하고 있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환경오염 없는 생활용품 개발로 종이시장 선점해야

지난 해 「세계여성발명대회」에서 의미 있는 한지 관련 상품이 눈길을 끌었다. 한지에다 식물성 고분자 수지를 섞어 만든 친환경 한지카드를 선보였는데 100% 생분해성 원료로 카드를 개발해 특허등록하고 상품화한 것이다.

이것은 기존 종이를 땅에 묻거나 소각할 때 생길 수 있는 환경오염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젠 공예작품과 세간들의 실생활 이용은 물론이고 종이카드에서 식물이 자라나고 아토피를 예방 할 수 있는 등 기능성을 좀 더 보강한 상품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간다면 좋겠다. 여기에 가장 적합한 것은 다름 아닌 한지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재활용까지 가능한 한지의 특성을 보탠다면 한지는 분명 세계 종이시장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새악시 꽃가마 속 요강을 만들어 사용했던 훌륭한 선조들을 두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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