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안동을 넘어 ‘고려’의 안동까지
‘조선’ 안동을 넘어 ‘고려’의 안동까지
  • 최성달 (작가)
  • 승인 2011.02.1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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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 최성달 (작가)

조선조 안동을 상징하고 대변하는 말들은 너무 많다. ‘조선인재 반 영남이요, 영남인재 반 안동’이라는 말에서부터 ‘선비의 고장’ ‘양반의 고장’ ‘노블리스 오블리주’ 등등. 이런 말들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조선시대의 안동은 사상에서의 비중은 물론, 격변기마다 집단적 정신을 행동으로 표출, 국난을 극복하는 원동력과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현재 우리가 느끼고 실감하는 자긍심의 배경이 되는 선비정신이라는 것도 문화적 유전자를 통해 관념성이 행위로 이어지고 행위는 다시 관념성에 지배되는 상승작용을 통해 문화의 범주로 자연스럽게 녹아난 결과물이다. 이것이 안동의 상징성이고 얼굴이라는 데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문화적 지층을 넓고 두껍게 만들어가야
현실의 실정이 이러하고 실제적으로 문화전반을 지배하는 정서가 조선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에만 안동문화를 국한해 버리면 그것이 곧 문화 축소이고 다양성을 상실하는 결과가 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지금 전승되고 있는 안동문화에는 고려시대를 기반으로 형성된 문화의 원형적 소스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고려시대의 안동을 부각하지 못하면서 안동을 제대로 알고 똑바로 정립했다고 자신했었다면 이것은 모순이다. 어쩌면 이런 이중의 모순적 구조 속에 서 있는 현실이 오늘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안동문화의 중요한 원형적 뿌리가 고려시대에서 시작되었다는 부인 못할 역사적 사실과 가능태의 역사는 우리 주위에 무수히 널려 있다. 봉정사 대웅전과 무량수전, 안중 전설, 이천동 석불, 차전놀이, 하회별신굿, 수동별신굿, 가송 진법 농악, 놋다리밟기, 성주풀이, 삼태사 문화와 김방경, 손홍량으로 이어지는 고려시대의 정치 역사적 환경 등등. 이렇게 고려시대의 안동은 조선시대의 선비문화와 함께 안동을 떠받치는 중요한 축이다.

문화 확대하는 제도적 뒷받침 공고해져야
요즘 동화작가 고 권정생 선생의 예를 보고 있으면 문화가 어떻게 확대 되어 가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단언하지만 이 추세대로라면 우리의 후세대는 또 한 분의 존숭할 만한 역사적 인물을 갖게 될 것이다. 문화의 확대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원형적 소스가 가능성이 있으면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내어야 한다. 모든 기록적 집약성이 조선조에 치우쳐져 있어 논문이나 번역, 해석을 다룬 책 발간 등에서 비록 기계적 균형을 맞추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전설과 신화를 확대하는 영역과 공간인 콘텐츠의 산업화 단계에서는 이 같은 문제의식으로 문화적 균형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유관기관이 인력을 모집할 때도 불교, 민속 등 다양한 전공자를 뽑아 유학에 치우친 해석이 주류를 이루게 할 것이 아니라 신화와 전설, 불교와 민속이라는 안동문화의 다양성이 드러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 주어야 한다. 의지를 갖고 노력을 줄기차게 한다면 멀지않은 시기에 이러한 힘은 외국인과 외지인을 더 많이 안동으로 불러들이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세월이 흘러 100년 500년 후에도 안동이 먹고 살 수 있는 원천으로 자가발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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