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과거부정은
그림자와 싸우는 부질없는 짓”
“이명박 대통령의 과거부정은
그림자와 싸우는 부질없는 짓”
  • 유경상/권기상/유길상
  • 승인 2011.03.07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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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방제형 지방분권국가론과 역사계승론 주창하는 충남도지사 안희정

▲ 안희정 충청남도 도지사

안희정(46) 충남도지사를 처음 만난 때는 2007년 여름,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참여정부평가포럼’(참평포럼) 사무실이다. 두 번째는 정권이 바뀐 2007년 12월 말, 대전에서 열린 참평포럼 해단식이었다. 그 때 해단식 연설이 기억에 생생하다.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지자. 바람에 휘날려 흩어지더라도 수천, 수만의 씨앗으로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자”는 나지막하면서도 단호한 맺음말이 아직도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그 노란 민들레의 작은 씨앗 하나가 싹을 틔웠다. 안희정의 도지사 당선. 2007년 발간한 저서『담금질』글귀 중에는 ‘그 싹이 한 철 무섭게 크다 가을바람에 사라질 싹인지 5백 년 크고 5백 년 죽는 지리산 주목이 될지는 참 알 수 없다’는 대목이 있다. 그의 정치역정은 긴 역사시간 속에서 어떤 의미로 기록될까.

전국단위 주간지도 아닌 경북북부권 도시 안동시에서 발간하는 격주간지에서 인터뷰를 요청하다니. 그러나 명분은 충분했다. 충남 신도청 신도시가 늦어도 2013년 봄이면 지금의 대전에서 예산․홍성지역으로 이전한다. 경북은 2014년 여름에 예천․안동지역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동일한 광역도(道) 단위에서도 불균형발전이 있었던 만큼, 균형발전을 함께 도모한다는 취지로 그 사례를 참고해 보겠다는 억지명분을 내세웠다. 의외로 흔쾌한 동의가 있었다.

내친김에 충남과 경북의 지역적 공통 현안은 서면인터뷰로 먼저 정리했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마음으로 인터뷰 시작부터 ‘지방분권국가론’, 역사와 정치노선에서의 ‘계승적 관점’과 21세기식 정치와 국민통합의 방안 등에 대해 질문을 퍼부었다. 나아가 야권연합의 길과 함께 2012년 정치 과정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진보집권플랜과 지도자론 까지 질의를 했다.

막힘이 없었다. 참여정부 5년, 대통령 노무현 서거 때부터 49재까지 침잠하며 되새김질 했던 생각들이, 그리고 도지사 취임 8개월간 경험으로 축적되고 있는 정치현안과 해결방안들이 마치 화두처럼 터져 나왔다. 실제 인터뷰는 지난 2월 23일 오후4시, 충남도지사 접견실에서 약 1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지역 풀뿌리 언론에 대한 애정과 배려의 표시로 해석되었다.

다음은 안희정 지사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다음은 안희정 지사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충청남도의 도정을 이끌며 최근 지방분권국가론을 언급하고 있다. ‘광역 지역자치를 기반으로 한 분권모델을 성공시키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지방분권국가론에 대해 설명해 달라.
“민주주의가 가장 효과적으로 진행 되려면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정신으로 국가가 분화 되어야 한다. 과거 20세기는 중앙 집중 ․ 집권의 시대였다. 예를 들면 공장도 거대한 기업으로, 컴퓨터도 거대한 슈퍼컴퓨터처럼 중앙 집중의 시대였다. 이 중앙 집중의 시대를 해체한 것은 인터넷 시대라고 표현되는 것처럼 다극화다. 그러므로 21세기 민주주의의 과제는 분권화라고 생각한다. 유럽을 보자. 20세기형 서구 선진국의 발전은 민주주의 중앙집권국가를 형성하며, 중앙 집중화된 국가의 리더십이 국가경쟁력이었다. 이제 21세기형 선진국은 일극화 된 국가권력의 집중으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 지금 세계사의 흐름이다. 그런 점에서 분권시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분권시대가 필요하다는 걸 쉽게 말하면 센 사람이 독재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대통령 혼자서 독재하면 안된다는 말이다. 지역으로 말하자면 센 곳, 서울과 수도권이 독재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공간적 균형발전의 모델이 분권의 콘텐츠이다. 중앙권력의 지방으로의 분산과 견제가 분권시대의 권력형 형식체계이다. 20세기까지는 국가체제의 삼권분립이 민주주의의 핵심이어죠? 그러나 법을 지키라 했지만 전두환 대통령은 그걸 어기고 사람을 죽이며 대통령됐지요. 법 안 지키고 대통령되고 잘 살면 안 되죠? 그래서 공정 투명한 선거와 정치자금법, 권력의 삼권분립을 통해 민주주의를 획득해 냈다. 하지만 이명박정권이 들어와 미진한 점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국가권력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과제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왔죠. 그래서 지금 단계는 중앙 집중권력의 국가체제의 해체가 필요하다.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정신이 있다면, 이제는 국가 전체의 운영체계에서 분권철학 도입이 민주주의 국가의 완성이다. 21세기에는 분권형 국가를 향해 민주주의가 진전돼야 한다. 이미 전 세계가 나가고 있는 방향이다.

한 가지 더 말한다면 거의 분권형 수준의 연방제형에 가까운 분권국가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된다. 이것의 토대는 5+1 광역경제권이다. 수도권, 충청권, 영남권, 호남권, 강원권의 경제적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에 살지 않으면 모두 루저가 되고 촌놈 된다면 이건 분권이다 볼 수 없다. 쏠림 현상은 대한민국 성장의 큰 저해요인이다. 분권은 단순한 정치적 민주주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발전과 국토를 더 넓게 사용하는 국가경쟁력의 가장 지름길이 되는 일이다. 연방제형에 가까운 분권형 국가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 지금 21세기의 민주주의 과제이다. 이 일은 지난날 화염병 들고 민주화운동했던 386세대가 조국에 마지막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이룩해야 한다.”

- 2007년 발간한『담금질』저서를 보면, 역사와 정치에서의 계승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도 행정운영에서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얼마 전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미래는 미래를 위해 싸울 때 만들어진다. 과거는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 재정립과 기록의 대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충남을 이끌어 온 김종필 전 총재, 심대평, 이완구 전 지사의 역사를 모두 안고 가겠다는 발언이 있었다. 저서에 담겨진 계승이 현 도지사의 위치에서도 관철되고 있나요.
“저는 정당인으로써 정통과 계승이라고 하는 측면을 늘 강조해 왔던 정치인이다. 행정을 맡아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왜냐하면, 과거 없이는 현재도 없거든요. 그 과거를 부정한다는 것은 그림자를 향해 싸우는 것과 같다. 부질없는 짓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잖아요. 왜 참여정부하고 싸웁니까? 자기가 싸워야 될 촛불광장의 촛불시민은 참여정부의 국민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국민이다. 그 국민과 대화하지 않고 전임 대통령하고 싸웠으니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일이다. 제가 계승을 자꾸 강조하는 이유는 계승 없인 혁신이 없다는 것이다. 부모 없이 자식이 없잖아요.

심대평, 이완구 지사 임기 때 진행해 왔던 많은 일들을 꼼꼼히 보고, 이렇게 이야기하면 또 이렇게 질문이 올 수 있다. ‘도지사 바꿔봤자 똑 같네’라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 저는 순흥 안씨 29세손이다. 1대 할아버지하고 제가 같겠어요? 다르다는 것을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다르다는 것은 이미 자기의 삶 자체가 다른 것이기 때문에 다름이 당연하다. 제가 29세손이라는 인식을 잘 하면 할수록 저의 계승은 더 돋보인다.

요즘 사람들이 정치판과 대중정치공간에서 다름을 통해 득표를 해야 한다는 절박성 때문에 자꾸 다름을 강조하고 있다. 다름을 강조하기 보다는 내가 어떤 역사를 계승할 것인지 이야기 하는 것이 한국의 정치에서 더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무엇을 계승할 것인가가 제가 가지고 있는 역사관이다. 역사는 이어 달리기이다. 이어 달리기 제대로 하려면 바톤을 잘 잡아야 되고, 바톤을 받지 못하고 한 바퀴 뛰어 결승점에 가도 실격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면, 김대중·노무현시대의 교육 개혁안은 1995년 5·30 김영삼의 교육 개혁안의 연장이다. 이것은 70년대 박정희시대의 교육평준화로 시작되어 전두환 정권의 학력고사제도와 졸업정원제, 학원자율화 등의 연속이다. 정권과 상관없이 연속되어 왔다. 신기하지요? 똑같은 것을 이어받기 하는데, 역사는 계속해서 진보한다. 이런 믿음을 가져야 되는데, 당장 천지개벽할 변화를 보여 주려고 욕심을 내다보면 정권을 망치고, 국민도 고달파진다. (계승의 관점은) 20세기 혁명의 시대를 끝내고, 21세기 정상국가에서 어떻게 정치가 이뤄져야 되는가에 대한 기본 출발선이 된다고 본다.

- 21세기도 벌써 10년이 지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지역으로, 세대별로 많은 갈등을 겪고 있다. 1980년대를 겪으며 30년이 지났다. 386세대 또한 기성세대가 되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안 지사는 직종과 분야를 떠나 인기 있고 매력 있는 정치인이다. 현재의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있는 젊은 세대는 386세대보다 더 어렵다고 얘기를 한다. 이들에게 조언해 줄 수 있는 시대적 가치와 인생론이 있을 것이다.

“제가 학생운동 할 때 너무 힘이 들다보니 일제하에 독립운동가들이 더 나았겠다는 생각까지 해봤다. 그때는 일본제국주의자라는 적 하나인 식민지 침략자들과 총 들고 싸우면 되는데, 독재정권과 싸우려고 하니 거리에서 데모하랴, 시민들은 왜 데모 하냐고 그러지,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자신이 행복해 하는 일을 찾아야 된다.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면, 일단 ‘밥이 하늘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밥 먹고 살아라. 밥을 먹으려면 돈을 벌어야지요. 돈 벌어서 살 생각을 해야 돼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인연을 맺고, 가족을 만들고, 먹고 살아야 되는 게 생명의 본질이다. 이것을 자전거 타기에 비유하면, 좀 탈 줄 알게 되면 주변경치도 보며 이젠 어디로 갈까 그 다음 단계를 생각하는 거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평생을 ‘내가 하고 싶은 인생이, 일이 뭐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세대였다. 하루 밥 세끼를 해결하는 일이 지상과제였고, 낳은 자식 먹이고 키우는 것이 기본 과제였었다. 그러니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인생의 방향이 어디로 가야 되는지, 생각 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먹자계’ 해서 어렵게 한번 놀러가는 것, 돼지추렴 해 한 마리 잡아서 먹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나 우리 세대에 와서 어떻게 사는 게 옳은 일인지,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 일인지 생각할 수 있는 건 우리 부모님 세대가 밥 세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발전단계로 보면 생존 즉 밥 세끼의 공포로부터 벗어나야 된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넘어지지 않는 수준이 되어야만 기술이 들어가듯, 젊은 세대들도 마찬가지다. 먹고 살아야 한다. 첫 번째, 뭘 해서 먹고 살 건지 고민해야 된다. 먹고 사는 데는 귀천이 없다. 먹고 사는 일에 아주 도전적으로 용감하게 덤벼야 된다. 남의 것 훔치는 일, 남 괴롭히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면, 모든 노동은 정당하다. 도둑도 열심히 노력하지만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이니까 인정을 못 받는 거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해서 먹고 살 궁리가 되었다면, 먹고 사는 문제에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면, 자기 안으로부터 나오는 개성과 끼를 가지고, 내가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생각할 수 있어요. 이런 순서가 우리 부모님 세대까지 왔던 고민이다.

둘째로는, 이 순서를 거꾸로 해도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죽으라고 해도 돼요. 음악과 미술, 연극과 소설을 쓰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배고플 자신이 있을 때, 고생할 각오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가도 되요. 지금은 예전 우리 세대보다는 사회적 여건이 좋아진 거예요. 일단 부모나 자녀들 대부분이 밥 세끼 공포로부터 벗어나 있고, 사회적 여력도 있기 때문에 이 개성을 중심으로 출발해도 된다고 봐요. 먹고 사는 문제를 계획해라,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이다. 이것들에 대해 좀 더 치열하게 임하다 보면 인생이라는 것이 길이 열린다.”

- 지난해 12월 21일 폴리뉴스와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다음 대선과 관련해 국민에게 대안으로 떠오르는 후보가 존재하느냐는 언급을 하며 ‘후보자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했었다.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는 ‘한국의 정당은 21세기 국민이 원하는 인물로 재편돼야 한다’는 언급을 했다. 민감한 부분이다.

“한국정당은 기본적으로 정책과 소신과 철학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오랫동안 지역정당이라는 틀 내에서 공천자체가 당선으로 연결되는 정당구조 내에서 정치를 한다는 건 제가 볼 때 민주주의 정당으로써 이미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정당은 정책과 노선의 흐름이 있어야 된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정당의 유일한 베이스는 지역적 베이스가 가장 큰 틀이다. 정당이 지역적 베이스를 틀로 하고 있고, 또한 분단과 이념대립이라는 상처의 틀을 베이스로 하고 있다. 여기에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문수의 도지사가 수도권 패권주의를 열심히 선전하고 있다. 수도권 성장 개발주의에다, 지역적 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한나라당, 20세기 식 냉전반공논리 등등. 이것으로 푸짐한 밥상을 차려지거든요. 그러니까 다른 고민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민주주의 발전의 길을 만들 수 없다.

그리고 선거시기가 오면 후보가 가장 중요하다. 후보가 판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판은 이미 역사적으로 정해져서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후보를 못 만나면 기본적으로 판이 제대로 꾸려지지 않고 국민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후보가 중요하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균열을 봐야 한다. 지역주의의 균열, 남과 북의 분단과 이념대립의 균열, 그리고 양극화의 계급적 균열이 있다. 이 중 지역주의와 분단이 큰 갈등구조이다.

이런 갈등구조 속에서 다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저 사람 정도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어!’ 하는 동의를 얻는 과정이다. 실용의 관점에서 ‘부자 만들어 줄게’ 대통령을 뽑아 봤잖아요. 이명박 대통령은 가장 역설적으로 선거에 대한 국민적 학습을 가장 크게 시켜 준 셈이죠. 앞으로 부자 만들어 줄게, 경제성장 747 하면 뽑아 주겠어요? 그 가치의 핵심은 시대마다 복지 등으로 나오지만 국민들을 단결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단결시킬 수 있는 신뢰라는 자산을 넓게 형성시켜 내는 노력을 하는 것이 지도자의 일이다.

신뢰의 자산을 바탕으로 한 단결이라는 사회적 중재력, 법과 제도의 운영권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높여야 한다. 사회적 갈등비용을 최소화시켜 내는 중재력으로 지혜를 모아내는 것이다. 돋보기처럼 지혜를 모아내어 집중력을 높여 돌파하는 힘을 만드는 역할과 좋은 심판의 호각소리처럼 질서를 부여해 혼란비용을 줄여주는 역할, 이 두 가지가 지도자의 역할이라고 본다. 나머지는 분야별 전문가들이 있다. 복지, 금융, 환경, 농업전문가 등 우리사회는 전문가들이 넘쳐 나고 있다. 어찌됐든 지도자를 만들어내는 정당이 국민의 신뢰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과 그 당의 정체성을 잘 가다듬어야 한다.

그런데 정체성이라는 것이 ‘우리가 남이가’ 하는 소리만 하는 정당들 아니냐? ‘우리가 남이가’ 라고 할 수 없는 지역에 가면 신뢰를 얻지 못하는 정당이 된다. 정책과 철학, 노선의 정통성을 가지고 숙성되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그런 정당을 통해 배출되어 나오는 지도자는 대한민국이 겪어온 역사를 발효시켜 낼 수 있는 신뢰의 자산을 이끌어 내야 한다. 6.25전쟁때 혈육을 잃어 원한을 가진 사람들과 이북 5도민에서 부터 좌파 빨갱이 척결이라는 이름으로 국가폭력에 희생한 개혁진보진영의 사람들까지 수많은 갈등과 분노와 원한을 씻어낼 수 있어야 한다. 양측 모두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신뢰를 형성시켜내야 한다. 이 신뢰를 형성시켜내는 과정이 21세기 지도자가 가야 할 길이다.”

- 야당의 도지사로 도 행정을 이끌고 있지만 절반이상은 정치인으로서의 고뇌가 있는 것 같다. 여권과 야권 모두가 안고 있는 내년 총선, 대선흐름과 미묘하게 맞물리는 얘기들이다. 안 지사는 이미지와 행보에는 늘 고 노무현 대통령이 수반된다.

“너 죽고 나 살고, 강한 자가 남게 되는 적자생존, 적대적 세계관은 20세기 방식이다. 내 편 많이 모아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게임의 역사는 청산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시고 나서 49재 동안 봉하에서 깊이 깨달은 것은 ‘정말로 이런 게임방식을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 순백의 신과 같은 존재이고 천사의 영혼이라고 절대화 시켜놓는다는 비유는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한 대통령의 죽음을 놓고 슬퍼했다.

슬픔의 근원을 가만히 따져보자. 이 슬픔이 왜 생겼을까? 20세기식 낡은 개념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내편 긁어 모아서 상대편 제압하기로만의 게임은 안된다. 물론 현실정치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이다. 외과의 모든 수술이 피 안흘리는 무혈수술로 가고 있다. 정치도 그렇게 가야 된다. 적대적 선동이 아닌 내가 가지고 있는 지향으로 양쪽의 신뢰를 얻어 낼 수 있고 스윙보터 즉 중간지대에 있는 국민다수로부터 무게추를 당겨올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빼앗는 것도, 죽이는 것도 아닌 새로운 리더십이 형성돼야 한다. 제 경험으로는 지난해 6.2지방선거를 치르면서 깨달은 것이다. 상대방 복 빼앗기가 아니라 자기 복 즉, 내 복 내가 찾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되려 한다면 식민지의 역사를 겪으며 고통당한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좋은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신뢰자산을 늘려가야 한다. 지금 복지논쟁을 얘기하지만 지도자를 뽑는 일은 신뢰의 꼭지점을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다. 박근혜 의원은 지난 산업화시대와 독재시대, 그리고 식민지시대에 독립운동 하다가 죽은 분들이 만주군관학교 일본군 장교가 대통령되는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 역사를 어떻게 정리해야 되는지를 현명하게 정리해야 한다.

산업화시대는 박정희 리더십이 좋았다고 얘기해서는 70년대에 머물러 버린다. 전진이 안된다. 이 역사 속에서 살아왔던 모든 국민의 고통을 안을 준비를 해야 한다. 제가 볼 땐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성공한 대통령, 정치를 통해 대통령에 도전하겠다면 역사와 승부를 하는 것이다. 5년짜리 월급쟁이 대통령 하려는 건 아니지 않느냐? 역사에 대해 소신을 갖고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갈등의 어느 한 편에 서서 이익을 취해 온 역사를 없애야 한다. 적어야 한다. 아랫목에 앉아 있으면서 윗목에서 오강단지 옆에 얼어 죽듯 밤새운 사람한테 사이좋게 지내자고 하면 그 말이 제대로 들리겠어요? 자기의 역사 자체가 가해자거나 이익을 얻은 자 입장에 서 있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의 마음을 모을 수 있다. 갑자기 말 바꾼다고 사람들로부터 신뢰가 생기는 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정치구도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 충청남도 광역도지사의 책임자로써 거대한 실험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특히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기억은 새롭게 다가온다. 광역도지사로서 도정현안이 현 정부와 민감하게 부딪치고 있다. 중부권 기반한 충남의 문화, 역사, 생활의 새 도정 모델을 말해 달라.
“그래요. 제가 8개월 동안 공부하며 정리해 온 내용들이다. 사실 대통령 돌아가신 후 계속해서 봉하산 자락에서 부터 고민했던 내용이고, 그 이전 참여정부 5년 내내 했던 고민이기도 하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지역의 대표성을 갖고 있지요? 근데 또 모든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지역의 이익을 대한민국의 관점이서 늘 생각하려는 버릇이 좀 있어야 될 것 같아요. 이건 저의 얘기가 아니라 이미 92년 리우선언 이래로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의 국제표어가 사고는 세계적으로 행동은 실천적으로잖아요?

우리 모두가 지역에서 실천하고 있지만 사고의 수준은 세계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면 지역 내에 있었던 많은 주제들도 국민 모두에게 아젠다로 설득력 있게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린 결과적으로 228개 지방자치 단체 간의 춘추전국 시대와 다를 게 없어진다. 제가 분권시대를 만들자고 했던 것이 지난 2천 년 전의 춘추 전국시대와 다른 이유는 이 수준을 가지겠다는 것이다.

단위적 실천은 지역별로 하지만 패턴은 국가적 수준이어야 한다. 예를 들면 과학비즈니스벨트가 만약 영남에서 벌어졌다면 나는 영남 도지사 편들어 준다. (현 정부가)국정운영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약속을 번복할 때는 충분한 사유가 있을 때나 번복되는 것이다. 여력이 안된다 거나, 정말로 돈이 없어 안된다 든지. 약속을 해놓고 보니 중요한 변동사유가 이런 이런게 꼭 있던지. 신의의 문제이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 남의 입에 들어있던 사탕 빼앗아다가 어느 입에 넣어줄까 하는데 왜 같이 입을 벌리는가? 상식도 경우도 없는 얘기이다. 제 입장에서 보면 ‘우리 지역 것 이니까 우린 못 빼앗겨’ 라고 얘긴 안한다. 첫째로는 대통령이 신의를 지켜 달라고 얘기할 뿐이다. 신의를 지키는 방법은 주는 방법도 있지만 왜 못주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그 때 표 때문에 그랬어. 이건 해명이 아니다.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짓이다.

둘째로는 과학비즈니스벨트 공약당시에 이것이 어떤 사업인지 좀 더 분명히 했으면 좋겠다. 3,500명의 기초과학 연구단지를 만들자는 것이다. 4,500억원 중이온 가속기라는 최첨단 실험세트에 세계적인 가속기 실험기를 기반으로 하면 세계적인 연구자들이 ‘아이구, 대한민국에 좋은 실험 기구가 들어섰구나. 내 연구를 저기 가서 해야 겠네’ 하고 석학들이 모여들게 하자는 것이 기본취지이다. 국내에서도, 세계적으로도 모여 들고. 그래서 70년대 산업화세대가 몰래 가서 도면 배워오고 모방했던 산업화시대로부터 이제는 원천기술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다. 원천기술에 해당되는 물리학에서부터 물질의 원자세계에 이르는 물질 생성에 대한 연구 아닌가요? 최첨단 실험기기를 기반으로 연구단지를 만들자는 건데... 왜 충청권이냐? 대덕연구단지가 왜 충청권에 왔을까요? 대한민국 인구 생태계의 타협권이 충청권이다. 세종시는 2,200만평 거대한 최첨단 국제도시로 만들어진다. 이만한 경제여건과 환경은 없다. 거기다 집어넣으면 이 사업도 잘되고 세종시도 발전할 것이기 때문에 2007년 11월에 이명박 당시 후보도 세종시 더 발전 시켜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 사업의 원래 출발점은 2005년 노무현 대통령 때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창적 사업도 아닌 것이다. 2005년에 과학보좌관제도를 두고 과학기술부장관을 부총리까지 격상시켰던 참여정부시절의 아이디어이다. 2007년 민동필 박사가 제안을 것을 이명박 후보가 받은 것이다. 그런 과정이다. 참여정부가 잘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연속성을 가지고 진행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5년이 끝나도 과학계는 계속 고민하는 것이다. 그 연장선에 이 사업이 있다. 그래서 충청권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다. 요즘도 지명에 ‘천’자가 들어간 곳을 파면 뭐가 계속 나온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는 것이 개인적 창의 같지만 그렇지 않다. 역사의 누적된 결과이다. 대한민국의 주거의 형태, 대한민국의 인구생태계, 그 생태계 내에서 사람들에게 집적되어지는 구조, 이 구조 속에서 충청권에는 그런 정도가 공약되어지는 것이다.

영남이 오히려 충청권 공약의 약 두 배 반 정도 된다. 액수로도 그렇고 사업으로도 그렇고... 이것을 틀어 버리자고 하니까 답답한 것이다. 요점만 이야기 하겠다. 핵심은 신의의 문제이다. 원래 그런 약속을 한 것은 그럴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 한 것이다. 국익에 좋은 것이다. 갑론을박 하다가 시점을 놓치면 곤란하다. 이공계는 특히 4학년이 되면 1학년 때 가르치던 교수님의 노트는 구 노트가 된다고 한다. 이 문제는 빨리 처리해야 한다. 대통령이 이 문제를 정쟁의 한 바구니에 퍼 담았으니 무책임한 결정이다. 참 무책임하다.”


- 요즘 진보집권 프로그램이 화두이다. 이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요.
“지금은 모르겠다. 도지사로서 8개월 동안 공부하느라 다른데 신경을 쓰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집권의 현실에서 국민들에게 또 다른 대안과 희망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 줘야 한다. 설령 이 대통령이 실망을 크게 주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다음의 전진된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 누군가가 도전을 해 줘야 한다. 도전은 과거에 대한 안티를 가지고 하기 보다는 현재의 대한민국의 고민이 뭐냐. 남북의 갈등, 지역 간의 갈등, 수도권과 지역의 양극화, 총체적인 사회적 분열과 갈등이 있다.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좋은 게 무엇인가. 그런 지도자가 도전해 주면 좋겠다. 지도자는 살아있는 헌법이고 살아있는 강령이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몫은 항상 반드시 있다. 그 역할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신 내림굿 받는 큰무당처럼 작두에 올라가는 것처럼 도전해 주어야 한다. 그 반열에 든 사람들은 그렇게 하고, 정당은 정당대로 하고. 그리고 부분적으로 어떤 공약을 어떻게 한다는 등은 사회적인 역량이기 때문에 그대로 준비를 곳곳에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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