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이 부여한 지방자치는 민주공화국의 기본 진지이자 보루
헌법이 부여한 지방자치는 민주공화국의 기본 진지이자 보루
  • 유경상(경북기록문화연구원 이사장)
  • 승인 2022.06.0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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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회무용론, 폐기론 등 획일주의 사회 경계해야
유경상(경북기록문화연구원 이사장)
유경상(경북기록문화연구원 이사장)

기초의회는 한국민주주의 수준을 가늠하는 미터기

시군구 행정단위는 주민생활 영위의 최전방이다

안동시의회가 개원 30년을 맞이했다는 시간적 사실은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수준이 나름 어느 정도까지는 높아진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 시군구 지역은 우리사회의 기본 행정단위이자 주민이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최전방 현장이다. 선출직 주민대표란 지위를 가진 안동시의회가 자치단체 집행부를 견제하면서도 보완해 온 그간의 역할을 되돌아 볼 때, 지방자치의 성숙을 선두에서 개척하고 확장시켜 온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30년 세월을 인간에게 적용할 때 성숙한 사회인이 되듯이, 30년 동안의 자치발전 경험을 토대로 수준 높은 선진의회 정착을 적극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주민복리와 지역발전의 견인차 역할은 물론이고 기존보다 자치와 분권제도를 더 확장·정착시키고 주민행복과 복지사회 건설에 앞장서는 모범을 창조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5.16군사쿠테타로 폐지된 지방자치제, 36년만에 兩金 합의로 재개

지방자치제 부활은 민주화 투쟁의 주요 성과

1970~80년대 민주화 투쟁에서 국민적 요구의 여러 의제 중 하나가 지방자치제의 부활이었다. 이러한 지자제가 1991년 지방의회선거로, 1995년에는 4대 지방동시선거를 통해 본격화되었다. 특히 기초의회 구성은 풀뿌리민주주의를 정착시켜나가는 자치제도 구현의 첨병이 었다. 이는 주민의 참여로 주권의식을 한층 고취하고 고양시켜 나가는 실질적인 우리사회 발전의 계기로 작용한 것이다.

되돌아볼 때 지방자치제는 이승만 정권에서는 부분적으로, 장면 정권에서는 전면적으로 실시하다가 군사쿠테타로 들어선 박정희 정권이 폐지했다. 1960~70년대 대선에서 지자제 실시가 공약으로 내세워진 적이 있지만 1980년대 치열한 민주화 투쟁의 성과로 쟁취되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1988년 4월26일 노태우 정권 아래에서 치러진 제13대 총선은 사상 처음으로 여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여소야대’ 국회가 등장하며 노태우 정권은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정을 이끌 수밖에 없었다. ‘5공 비리 청산’ 과정에서 1989년 말 여당과 야 3당은 지방자치제 실시에 동의했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이 되어 여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자 예정된 지자제 실시를 연기하려고 시도했다. 당시 야당 김대중 평민당 대표는 ‘지방자치제 실시’ 등을 내세우며 단식에 돌입했다. 단식 13일째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이 병실에 찾아왔고, 오랜 야당활동 경험이 있었던 두 정치지도자는 지자제가 민주주의의 초석이라는 것에 합의하게 되었다. 이로써 36년 만에 지방자치시대가 다시 열린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 중 자치제도는 주민참여의 첨병이었다

안동시의회/군의회 구성되는 순간, 주민참여 문 활짝 열려

지방자치제의 도입은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서 많은 변화를 제공했다.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자연스러운 실험이 다양한 형태로 시작되었다. 나 또한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이십대 후반인 1993년 5월 풀뿌리 지역신문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으니 지방자치제의 혜택을 입은 셈이다. 주민투표로 선출된 안동시의원과 안동군의원을 취재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게 되었다. 대학시절 어렴풋하게 바라본 지역사회라는 구성체와 작동 실체를 좀 더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에피소드 하나. 1993년 7월, 주간 안동신문 박승필 발행인으로부터 ‘안동성좌원’을 3일 동안 취재해 지면 한 면을 다 채우라는 지시를 받았다. 취재경험이 부족하다보니 막막했다. 시청 주무과에서 사회복지법인 현황표를 입수했고, 경북마을지를 복사해 성좌원이 위치한 옥동 마을의 자연환경과 역사, 특징을 읽었다.

당시 성좌원 총무로 활동 중인 김환근 옥동 시의원을 만나 인터뷰를 한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첫 질문은 김 의원의 고향이 어디인가로 접근했다. 예천군 유천면이라고 대답했을 때 내 고향이 감천면이라며 맞장구쳤다. 고향후배라며 대화가 술술 풀렸고 두 시간에 걸쳐 성좌원에 얽혀있는 스토리를 듣게 되었다. 물론 개인사에 대한 인터뷰도 겸했다. 주요취재가 끝나고 시의원으로서의 지역에 관한 미래청사진을 물었다. “안동이 30만 인구가 되는 교육과 행정, 전원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김 의원은 오래전 고인이 됐지만 그 당시 진행한 인터뷰 초안과 자료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1990년대는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훨씬 이전이다 보니 주민의 입장에서 기초자치단체의 예산을 포함한 주요 활동정보는 빈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초의원이 선출돼 의회가 구성되는 순간부터 주민이 참여하는 자치의 문이 활짝 열렸다. 지역언론 또한 기초의원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과 의정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주민이 선출한 대의제로 구성된 의회가 활동을 한다는 건 곧 과거처럼 기초행정단체의 독점적이고 일방적인 예산권과 행정권이 함부로 집행될 수 없다는 의미를 지닌다. 관선이든 민선단체장이든 이들은 기초자치단체 소속 집행부라는 속성을 강하게 지니다 보니 의회는 주민의 입장에서 매우 효율적인 견제와 비판의 수단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특히 중앙정부가 지역의 형편이나 사정을 무시한 채 추진하던 국책사업은 기초의회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대형 댐 건설로 인한 피해 보상 추진 문제, 대규모 산업단지 유치 등은 늘 의회가 앞장을 서서 지역과 주민의 이해를 대변하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경북지역의 특수한 현안이었던 도청 이전 운동은 안동지역 기초의회와 주민단체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십 년 간 조직적인 연합의 형태로 유치에 성공시켜 낸 사례로 볼 수 있다.

지방의회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해야 선진의회 구성 가능

다수 주민들 아직까지도 지방자치 몰이해와 왜곡인식 깊다

그러나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참여를 통해 구성된 기초의회가 10~20년 동안 풀뿌리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실현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 또한 사실이다. 지방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법과 제도가 중앙정부와 국회 중심으로 운용되었기 때문이다. 지방의회의 독자적 권한과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 겹쳐 기초의원 개개인의 역량 부족이 늘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정당공천제로 인해 지방의회는 중앙정치의 도구로 전락되어 당리당략의 수단과 파벌다툼으로 이용되었다. 한국정치의 큰 폐단이자 악습 가운데 하나가 지방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이다. 늦었지만 공천제를 폐지해야 능력 있고 참신한 선진 기초의회를 구성할 1차 조건이 만들어 질 것이다. 그래야 기초의회가 진정으로 주민과 지역의 이해와 이익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일꾼이자 공복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유권자인 다수 주민들조차 아직까지도 지방자치에 대한 몰이해와 잘못된 인식이 깊은 상태이다. 주민의 대표를 선출해 기초행정을 견제하고 보완할 유일한 대의제의 하나인 기초의회에 대해 편향적인 시각을 성숙된 의식으로 전환시켜내야 할 때다. 그래야만 주민들이 기초의회를 훌륭한 주민자치의 도구와 유용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기초의원에게 무작정 큰 기대보단 지원조건 갖춰야

1차 개선조건은 ‘대우개선’으로 의정활동 전념하게 해야

기초의회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몰이해와 함께 비난만 하는 관행의 대표적인 사례로 ‘의정활동비’를 둘러싼 논란이다. 예를 들어 인구 10만~20만 규모 도시에는 지방공무원의 숫자가 약 1천여 명에서 1천5백여 명이다. 지방의 공공적 이해와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들 또한 개인적인 이해관계와 신분 상승을 도모하고 있는 특수계층이다. 다수의 집단으로 구성된 만큼 조직이기주의 성향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공무원 중심 집행부에 대해 기초의회는 풀뿌리 주민을 대변해 협력하면서도 부딪치고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다.

안동시의회의 경우 겨우 18명으로 구성된 기초의원에게 1천5백여 공무원을 완벽하게 견제하고 감시하라는 건 무리한 억지논리에 불과하다. 무작정 절대적인 도덕성과 헌신성 만을 요구하는 건 현실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기초의원의 권한이 제한적이고 또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부족한 상황을 감안해, 작금의 의회를 둘러싼 조건과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되물어야 한다. 필자의 판단으로 시급한 것이 ‘대우개선’ 이라고 본다.

2020년 기준 안동시의회 의원 의정활동비는 280만원 안팎이다. 이런 의정활동비로 적정한 활동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사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가구성의 근간이자 기초인 풀뿌리지역의 자치발전을 위해 일선에서 활동하라고 선출해 놓은 기초의원에게 중앙정부와 국회는 지금도 경제적으로는 최하위 푸대접을 하고 있다.

이를 도외시한 체 다수 주민들 조차도 무보수명예직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은 지방자치 발전을 방해하려는 권위주의 시대 중앙집권과 관치주의의 왜곡된 시각이 반영된 주민무시라는 단견일 뿐이다. 자산이 많은 사업가를 빼놓고 이 활동비로 어느 누가 성실하고 도덕적인 의정활동에 매진할 있단 말인가. 전면적인 의정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충분한 대우개선이 제공되고 난 이후에 의회를 비판하는 것이 올바르다. 빈곤에 시달리는 의회를 구성해 놓고 선진적인 의회 활동상을 구현하라고 윽박지르는 건 우물에서 숭늉을 내놓으라는 격에 불과하다.

의회 인사권 독립과 정책지원관 도입은 그나마 다행

지방의회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에 도움될 터

다행스러운 일은 32년 만에 개편된 지방자치법으로 인해 2022년 1월말부터 지방의회의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의회 인사권 독립과 정책지원관 도입이 핵심이다.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에 따라 의장은 의회 소속 사무직원을 지휘‧감독하고 임면‧교육‧훈련‧복무‧징계 등에 관한 사항을 처리하게 되었다.

정책지원관은 지방의회 의원의 의정활동 지원을 위한 전문 인력이다. 전체 의원 정수의 2분의 1안 범위에서 도입 가능하며, 조례 제‧개정, 행정사무감사, 정책간담회 등 공적인 의정활동을 지원하게 된다. 아직까진 한계가 있고 악용될 우려도 높다. 정책지원관의 직급과 신분을 중앙정부에서 통제하고 있어 자율성이 낮고, 또한 의원들의 개인보좌관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비판도 높은 편이다.

정책지원관 도입과 초기 활동과정에서 약간의 혼란은 수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대만큼 부족한 것은 향후 법을 뜯어고치고 보완할 일이다. 하루라도 빨리 의원 1명당 1명의 정책지원관이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30년간 의원들은 개별적으로 1인 활동을 하다 보니 의정 평가에서 늘 부실성과 낙후성을 지적받았다. 비록 부족한 숫자이지만 정책지원관들의 자료조사와 정책연구 활동은 의원들의 전문성과 독립성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방의회무용론, 폐기론 등 획일주의 사회 경계해야

헌법 부여한 지방자치는 민주공화국의 기본 진지이자 보루

마지막으로 지방의회, 특히 기초의원들의 자질과 품성, 활동행태를 두고 ‘의회무용론’ 등 비난만 일삼는 풍토를 단기간에 어떻게 개선하고 극복할 것인가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로 보여 진다.

‘기초의회가 왜 필요하냐’고 무용론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당신들은 기초의회가 없는 1970~1980년대로 회귀하고 싶은가?” “그 시대엔 무조건 시키는 대로 복종하고 행동해야 했는데 그런 통제와 지시를 받는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가?”

민주주의 법과 제도는 의무는 나누고 권리는 누릴 수 있는 호혜와 평등의 세상을 위한 현재로선 최선의 발명품이다. 지방자치는 권력과 자본과 능력이 한 계층에게 독점되고, 한 지역으로만 집중되는 걸 막아내는 훌륭한 국민적 합의이자 제도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규정되고 부여된 지방자치는 지역사회와 주민들이 동일한 민주공화국 국민으로서의 기회와 선택, 권리와 혜택을 균등하게 받아내기 위한 진지이자 보루이다. 안동시의회가 30년을 맞이해 부족했지만 지역과 주민의 진정한 대표 일꾼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렇기에 역사와 주민을 믿어야 한다.

[위 기사는 '안동시의회30년사'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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