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을 감수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찾자
불편을 감수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찾자
  • 이해선
  • 승인 2011.05.03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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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일본 원전사고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들

# 동창회 모임
얼마 전 비오는 날 동창 모임에 갔다. 몇 년 만에 만난 친구들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옛날 학창시절 이야기로 꽃을 피웠고, 오십 줄에 들어선 중년들답게 아이들 진학, 취업, 혼인문제를 거치더니, 결국에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까지... 그날 화제의 초점은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 그로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방사능 불안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까이꺼 X-레이 사진 촬영한 것보다 더 적은 양의 방사능이라는데 아무 걱정 없다는 무모파(사실 이건 아니다. X-레이는 몸을 투과하면서 세포에 손상을 주기는 하지만 인체에 잔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방사능 물질은 호흡기나 음식을 통해 우리 몸에 들어와 축적되는 것이다)도 있었고, 석유자원이 고갈되어가는 현실에서 그나마 값싸고 지속적으로 구할 수 있는 에너지는 원전 밖에 없고, 우리가 불편하게 살지 않으려면 원자력에 의존하는 것이 싫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감수파도 있었다.

그러나 대개는 큰 걱정거리를 안고 사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오드와 세슘이 검출되었으니 큰일 이라는 친구, 정부발표는 믿을 수 없고 방사능 비는 무조건 맞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 나는 괜찮은데 앞으로 살아가야 할 아이들이 더 큰 걱정이라는 이야기, 우리나라에도 원전이 많은데 과연 안전할까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 비싼 에너지세 부과와 재생가능에너지 개발에 힘쓴 덕택에 원전 하나 없이 에너지 자급률이 130%나 되는 덴마크를 모범으로 삼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대안을 제시하는 친구. 결국에 골치 아픈 이야기 덮어두고 술이나 마시자는 분위기로 마무리 되었고, 헤어질 땐 다들 우산을 하나씩 챙겨 나갔다.

# 오래된 이야기
19세기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전 세계에 많은 영토를 점령하고 있던 영국. 작은 섬에 영국군인 몇 십 명을 파견하여 그 곳을 점령하도록 했는데, 워낙 작은 섬이다보니 본국에서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고, 파견된 군인들만이 그 곳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 그들은 배를 타고 몇 십 킬로 떨어진 다른 섬에 가서 여자를 구해 와서 가정을 꾸려 자급자족 하면서 살게 되었다.

그런데 이 섬에 화산이 폭발하게 되었고, 본국에서는 그래도 자기 영토인지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본국에 이주시키게 되었다. 섬에서 농사짓고 물고기 잡던 이주민들이 본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은 거의 없었고, 청소부, 막노동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몇 년 후, 화산폭발의 후유증이 가실 때 쯤 되자, 이들은 본국의 정착허가에도 불구하고 다시 섬으로 돌아가겠다고 나섰다.

본국 사람들의 눈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문명세계의 편리함에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의 시각에서 볼 때, 원시사회나 다름없는 외딴 섬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않을 법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도대체 이런 세상에서 어찌 사람이 살 수 있느냐? 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시각에서는 편리함 보다는 공동체적인 삶이 더 그리웠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본국에 남기로 결정한 몇 사람만 제외하고는 전부 섬으로 돌아갔다. 당시 영국에서 잡역 노동자들이 받을 수 있는 임금이래야 요즘말로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적은 액수였지만, 그 적은 돈으로 먹고 살았고, 저축하여 자기네 땅으로 돌아갈 때, 일 년 치의 식량과 가축, 종자, 농기구 등을 스스로 장만했다.

# 선택의 갈림길
원전 사고는 우리가 편리함과 성장의 탐욕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을 언제든 파괴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음을 지금 보고 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몇 만분의 일이라는 사고의 확률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비오는 날, 동창회에 모인 친구들의 말처럼, 우리의 삶이, 우리 아이들의 삶이 온전하게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당장의 편리함 보다는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우리의 삶의 방식을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있다. 안일한 편리함의 유혹에 삶을 저당 잡힐 것인지, 아니면 평화롭고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것인지를. 국가가 나서지 못하면 우리의 의식과 마음가짐부터 새롭게 해야 할 때다. 이래저래 지금 우리는 걱정을 한보따리 안은 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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