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에서 놀자(2)
샛강에서 놀자(2)
  • 김영태(상주 강습사 운영위원)
  • 승인 2011.07.15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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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가 있는 북천

샛강걷기 출발지는 북천 서보냇가(서보가 있던 지점을 이 지역에서는 이렇게 부름)였다. 시내에서 보은방면으로 약4km쯤 가다 보면 다리가 하나 나오는데 그곳이 서보다리이며, 다리 바로 아래쪽에는 지금은 거의 기능은 사라졌지만 형태는 고스란히 남아있는 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서보다. 또 다리입구에 커다란 돌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그곳에는 유명한 ‘서보가’ 노랫말이 새겨져 있다. 상주의 ‘상맥회’라는 단체에서 1977년에 세운 노랫돌비다.

또 낙양동 개운저수지에서 내려오는 하천의 제방둑에 상주 서보 낙양수문비가 있는데 이 수문비에 서보의 유래가 자세히 기록돼 있다.

<옛부터 수리의 편리를 보여주는 보가 없어 몽리자들이 애타게 생각하던 중 숙종 27년(1701년)에 고을 원이 이시필이 처음으로 서보를 수축하였다. 80여년 뒤인 정조 7년(1783년)에 서필수가 개축하고 박래설, 이기도 등이 번갈아 개수했다. 박정준 등이 관리할 때 수원지의 암거 및 수문입구에 대한 대대적 개수가 있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매년 내리는 장마로 인해 보가 허물어져 관개에 막대한 지장이 있으므로 몽리자들의 출자로 임시 보수조치 하였으나 장구한 대책을 수립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1927년에 면(面)에 협력을 얻어 박정열 등 8명이 주도하여 관개조합을 조직하고 공사비를 몽리 지주에게 분담시켜 크게 보수하고 보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 서보가 노랫돌비

이로 볼 때 서보는 약 310년 전에 수축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상주가 곡창지대였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하겠다. 서보의 근원지는 남장동 입구의 냇바닥의 땅속 도랑(암거)이다. 아무리 가물어도 여기에선 물이 솟아올라 이 물을 논에 끌어들이기 위해 보를 축조했으며, 이 봇물이 낙양앞들 약 200ha에 달하는 논밭을 축여 주었다고 한다. 바로 이 서보는 삼백의 고장 상주에 풍요를 가져다 준 젖줄이었던 셈이다.  

          상주서보 유명하다
          서보 수문만 열어놓으면
          상주앞들 수천 두락에
          이 논귀 저 논귀 물이 넘네
          애헤야 얼럴러 상사디야
          애헤야 얼럴러 상사디야
          애헤 애루와 좋고 좋다
          풍년이로구나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풍년을 가져다주는 서보에 대한 고마움을 노래로 표현했는데, 이것이 바로 ‘서보가’다

서보가 있는 북천의 발원지는 백두대간상의 백학산과 윤미지산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내서면 노류리에서 모동, 모서방면으로 조금만 가다보면 그리 높지 않은 산줄기가 하나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백두대간이다. 백두대간이란 백두산에서 지리산(두류산이라고도 함)까지 이어져 있는 산줄기를 말하는데 신기하게도 한 번도 물(강이나 냇가)에 의해 끊기지 않는다. 자고로 ‘물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은 강을 건너지 않는다’란 말이 실감난다.

또 백두대간의 산줄기는 지리산에서 끝나지 않고, 진주와 창원을 거쳐 김해까지 이어지도록 한 번도 물줄기를 만나지 않는데 이 산줄기를 낙동강의 남쪽에 있다 하여 낙남정맥이라 한다. 낙동강은 서쪽과 북쪽으로는 백두대간, 남쪽으로는 낙남정맥, 그리고 동쪽으로는 태백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낙동정맥(낙동강 동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을 울타리로 하여 항아리모양으로 물이 모아져 부산과 김해 사이로 흘러 남해바다로 흐른다.

따라서 내서면 노류리 끝자락에 있는 백두대간의 물은 동쪽으로 흐르는 줄기는 북천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향하고, 서쪽으로 흐르는 줄기는 백두대간을 넘어 올 수 없으므로 모서, 모동을 관통하는 구수천으로 향하는데, 이 구수천은 낙동강이 아니라 금강 줄기다.

이번 탐사팀에는 내서중학교 학생들과 다솜지역아동센터 학생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샨티학교에서 30여명이 대거 합류해 약 70여명이나 되는 대군이었다. 또한 예천에서 중학생과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온 어머님도 계셨다.

▲ 탐사에 앞서 주의사항을 듣고 있다

서보냇가에서 출발한 탐사대는 티동과 남장사입구 잠수교를 지나 남장사 계곡에서 각종 야생화들을 관찰한 후 중궁암에 올랐다. 원래는 남장사 입구 잠수교아래에서 물놀이도 하고 야생화 채집도 하며 놀 생각 이었으나 며칠전 비가 많이 내려 물이 불어 도저히 물놀이는 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남장사 계곡에서 야생화 관찰 시간을 가졌다. 잠깐이었지만 수없이 많은 들풀들이 보였다. 하지만 이름을 알 수 있는 들풀은 거의 없었다. 평소 들풀에 대해 공부하지 않은 나 자신을 탓해 보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냥 ‘이름 모를 풀’로 부르기로 했다. 남장사 계곡에서 채취한 이름 모를 풀들. 아마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 북천을 따라 걷고 있는 탐사대원들

그리고 남장사와 중궁암이 있는 노음산은 북천의 또 다른 발원지(엄밀하게 따지면 발원지가 아니라 근원이라고 해야 맞음)인 셈이다. 노음산의 물은 남쪽으로 흐르는 줄기는 북천으로 합류하고, 동북쪽으로 흐르면 외서천으로 흘러 낙상교 아래쪽에서 동천과 합류한다. 하지만 서북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외서면 우산계곡으로 흘러 이안천과 합류하게 된다. 노음산은 북천과 동천 그리고 이안천 3곳의 근원이 된다.

탐사대는 중궁암에서 주먹밥을 나눠 먹었다. 다솜아동센터에서 준비한 주먹밥인데 너무 맛있었다. 특히 젓가락이 없어 모두 손가락으로 집어 먹어야 했는데, 아이들은 마냥 신나했다.

샨티학교 학생들은 단체로 밥을 주문했기 때문에 함께 먹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었다.
점심을 먹고 내려와서는 샨티학교 학생들과 합류해 퀴즈도 풀고 오락시간을 잠시 가진 후 헤어졌다. 중궁암에 오르는 길이 힘들었는지 ‘강에 왔는지 산에 왔는지 모르겠다’면서 투덜대던 아이들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설명도 제대로 듣지도 않고 옆 사람과 장난만 치는 것 같았던 저 아이들도 나중에 샛강에 대해 질문해 보면 오늘 들은 설명을 하나하나 다 기억한다는 것을 난 알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힘은 위대하며, 아이들에겐 체험이 중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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