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忠)과 효(孝)의 현대화를 통해
지역발전 이바지하자
충(忠)과 효(孝)의 현대화를 통해
지역발전 이바지하자
  • 이재업
  • 승인 2012.01.13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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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재업 (주)동성환경산업 대표

▲이재업 (주)동성환경산업 대표
10여 년 전 한때 우리나라에서 일군의 학자들이 ‘유교와 민주주의의 접목’에 대해서 논쟁을 펼쳤던 적이 있었다. 그 비슷한 예로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와 우리나라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교문화권 내의 아시아에서 유교전통의 계승과 발전을 두고 언쟁을 펼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유교적 전통의 복원과 보편타당한 인권과 민주주의를 놓고 어느 쪽에 방점을 먼저 찍을 것인가 하는 논쟁으로 기억난다. 21세기가 10년도 훨씬 지나고 있는 지금 현재, 유교의 긍정적 전통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을 해보는 것이 과연 효율적일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저는 매우 효율적이라고 보고 있다.

유교의 긍정적 전통이란 무엇일까

멀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유교는 주나라의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그 대신 봉건제도를 세우는데 있어서 진보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후 지난 1천년 동안 유교는 백성의 윤리의식과 교육은 물론이고 향촌 질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나아가 삼강오륜을 도입하고 남녀 간의 풍속을 교정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어쩌면 우리의 선현들은 중국보다 더 유교 정신에 철저하고 엄격했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유교는 실용주의와 합리성, ‘백성우선’의 원칙, 질서, 그리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존중과 실천을 강조해 왔다. 맹자가 천심(天心), 즉 민심에 거역하는 폭군을 내쫒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것은 미국의 독립선언문보다 앞선 사상으로 까지 평가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이처럼 유교는 현재의 민주주의적 입장과 그 실행수단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려왕조 이후 천 년이 넘도록 유교의 강력한 영향력과 지배를 받으면서도 그 내부에 민주의식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역사적 전통은 이를 반증할 수 있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첫째, 조선의 건국에서부터 유교정치의 제1정신은 ‘백성우선’이었고, 이는 가장 중요한 정통성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정도전이 ‘민심은 천심(民心卽天心)’이라고 했던 것은 이 원칙을 분명히 밝혀주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둘째로, 조선에서 표현의 자유는 법적으로 보장되었다는 점이다. 비록 양반계급에게만 허용되었지만, 임금조차 맘대로 침범할 수 없는 권리였다. 사간원과 사헌부는 언관(言官)을 담당하고 있었고, 사관(史官)은 누구의 간섭도 없이 역사를 기술할 수 있었다. 성균관 학생들은 시위를 벌이고 조정의 정책을 비판할 권리를 누렸다. 또한 신문고를 통해 긴급한 호소를 전달할 수도 있었다.

셋째로, 과거제도를 통해 일종의 공무원 시험제도를 시행해 왔다는 점이다. 이 제도 덕분에 능력과 자질을 근거로 한 인재등용이 가능했었다. 넷째로는, 지금처럼 지방자치제도를 널리 시행했었다는 것이다. 지방자치의 향약(鄕約)제도는 유교 도덕의 보급과 마을 차원에서의 자치를 목표를 했다. 향약제도의 주요활동으로는 *민간도덕의 장려(德業相勤), *그릇된 행동의 상호견제(過失相規), *예의바른 관습을 통한 우애 증진(禮俗相交), *어려울 때의 상호부조(患難相恤)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조정의 고위층이 부패하고 무능했을 때에도 이러한 법률을 뛰어넘는 규범과 관습 덕분에 지방의 고을들은 상대적으로 그 기능을 원활하게 발휘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18세기 들어 삼정이 문란해지자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실용주의 사상인 실학이념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실학은 ‘백성 우선’의 원칙을 정치의 가장 중요한 신조로 회복시키려고 애썼다. 동시에 농업발전과 그 밖의 사회경제적 개혁을 촉진함으로써 백성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노력했다. 유교를 시대에 맞게 창조시켰던 실학의 유일한 목표는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백성의 실질적 이익을 증진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크게 평가할 수 있다.

유교의 현재적 계승은 무엇일까

한편, 최첨단의 정보가 넘쳐나고 있는 현대자본주의 세상에서 ‘유교’를 어떻게 하면 적용· 계승시킬 수 있을까 하는 질문도 매우 긍정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본다.

오늘날 우리 국민의식은 대단히 개방적이고 다원적으로 이뤄져 있다. 여러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사회이다. 또한 서구의 민주주의 사상이 정착해 그 꽃을 피우고 있다. 민주주의가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사상인 것처럼, 유교 또한 그 사상의 핵심은 민(民)에 대한 충(忠)이 중요했었다는 점에 착안할 수 있다. 민주주의라는 사상은 근대적이고 서구적인 것이지만, 이미 우리의 민본사상 안에도 이렇게 볼 만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유교의 교리에 얽매이자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충(忠)과 효(孝)의 사상을 재조명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유교에서 가르치던 충(忠)은 그 대상이 현대사회에서는 국민으로 계승되어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우리 헌법 정신도 국민이 주권자라고 선포하고 있다. 나아가 충의 대상은 바로 내 아내요, 내 남편이요, 내 이웃으로 넓어졌다. 민주는 ‘민(民)’자, 임금 ‘주(主)’자로 풀어낼 수 있다. 즉 백성이 임금이고 백성이 주인이라는 것이다.

이런 정신의 배후에 바로 우리 민족의 고귀한 자산인 선비정신, 유교의 민본주의 전통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유교가 앞으로 이런 전통을 새롭게 계승해나간다면, 우리나라의 민주발전과 지방자치, 발전을 이끌어 가는 데도 크게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유교의 전통은 한국의 전통으로 갈무리되었고, 오늘의 지방자치와 지역발전의 흐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 제도는 분명 서양에서 발전했지만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룬 인권사상, 인간의 존엄성은 동양문화에서도 풍부하게 꽃피웠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심에 유교가 있었다. 우리는 이런 새로운 눈으로 유교 전통을 재해석하며, 서구의 보편적 사상과 당당하게 대화하는 자신감을 가져야 할 때다. 이제 유교에 대한 새로운 눈으로 우리의 미래를 내다보고 개척해야 할 때다.

국가 권력이 바로 국민의 뜻에 기초해 있고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신장하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데 존재이유가 있다는 정신은 공자의 인본주의나 맹자의 사상과 잘 부합할 수 있다고 본다. 공자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사상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아주 큰 교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선조들이 바라보았던 유교에서 더 나아가 그 정신을 재창조하는 지혜가 화급해지고 있는 시기이다. 유교의 정신이 잘 보존되어 있는 우리지역이 좀 더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유교로 나아갈 때, 흔들리고 있는 우리나라의 윤리와 도덕을 재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서양인들이 부러워하고 있는 효(孝)라는 전통가치는 매우 소중한 덕목중 하나이다. 그러나 오늘날 참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효를 수행하는 주체 또한 더 확장돼야 한다. 자식만이 하는 효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식도 효도를 해야 하지만 이제는 국가가 효도를 해야 한다. 자식이 자신을 낳은 어버이를 공경하고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와 떨어져 있는 경우도 많고 생활이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 국가가 경로사상을 이어받아 노인을 보호하고 존경하며 생활을 안정시키는 일을 해야 할 때이다. 말하자면 사회적 효도라고 말할 수 있다.

21세기 우리사회의 통합과 발전을 위해서는 자식의 효도와 국가사회의 효도가 합쳐져서 노인들을 바르게 모시는 새로운 모델이 시급해지고 있다. 이러한 모델들을 세우는 데에 우리지역사회가 앞장서서 노력한다면, 젊은이들이 믿고 따르는 충(忠)과 효(孝)의 현대화, 지역발전이 실현될 날이 앞당겨질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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