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만 더 소설을 쓰고 싶다!
한 편만 더 소설을 쓰고 싶다!
  • 이위발
  • 승인 2012.01.20 17: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북인칼럼>이위발 시인·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이위발 시인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새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이루고자 하는 일을 다짐하면서 소원이 성취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여러 가지 덕담들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소망은 일주일쯤 지나면서 서서히 퇴색되어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마음속으로 다시 다짐을 합니다. 아직 음력으론 새해가 되지 않았으니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설날을 기다립니다. 설날을 반기는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새해 소망 중에 매년 제일 앞에 등장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까지 순위가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어느 언론사에서 발표한 설문조사를 보면 매년 순위 첫 번 째에 올라가 있는 것이 건강이었습니다. 건강 중에 남성들이 가장 많이 소망하는 것이 금연입니다.

오늘도 출근한 후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이 “이국장! 담배 어떡하면 끊을 수 있어?”였습니다. 저는 ‘담배’나 ‘금연’이란 단어만 들어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폐암 선고를 받고 금연 캠페인에 앞장섰던 코미디언 ‘이주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죽음 직전 “Don’t smoke!”라고 외친 <왕과 나>의 주인공 ‘율 브리너’도 아닙니다. 올 7월 31일 4주기 기일을 맞는 소설가 이청준입니다.

선생님은 폐암으로 영면하시기 전 마지막 소설집『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를 출간했습니다. 이 소설집을 내면서 그는 “석양녘 장 보따리 거두는 심정으로 책을 꾸몄습니다. 소설을 더 욕심 낼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보니까 부끄럽습니다. 제목에 대해 부끄럽고, 이웃에 대해서도 부끄럽다”라는 말과 함께 마지막 소망은 “한 편만 더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습니다.

선생님하고의 인연은 1991년 삼인행 출판사에서 기획한 인문학 총서 시리즈 중에 『이청준 론』을 출간 할 때입니다. 그 이후 『이문열 론』,『박완서 론』이 출간되기도 했지만, 맨 처음 출간된 『이청준 론』은 저에게 커다란 의미를 남겨 준 소중한 책입니다. 그 때 잠실 운동장 맞은 편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에 살고 계시던 선생님 댁을 자주 방문했었습니다. 백발인 머릿결이 유난히 빛났으며, 말씀은 고저가 없이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음성이 차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갈 때마다 한 번도 집 안에서 작별 인사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문밖까지 나와 제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서 계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 대담 중에 늘 <피네스>라는 가늘고 긴 담배가 손가락에서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줄 담배를 피우고 계셨습니다. 그 다음부터 저도 호기심과 멋스러움을 과장한 채 그 담배를 즐겨 피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책이 출간되고 3년이 지난 뒤 이청준 소설가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 주간! 이번에 제가 산문집을 내려고 하는데 지난번 책에 실린 대담한 글을 산문집에 실으려고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전화를 끊고 난 뒤 기쁨과 부끄러움이 겹쳐져 한동안 어쩔 줄 몰라 허둥대기도 했었습니다. 당대의 대 작가로부터 그런 제의를 받았다는 것이 믿기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담은 저와 선생님과 두 사람이 했기 때문에 수락의사를 받지 않고 실어도 법적으론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 산문집이 1994년 <월간에세이>출판사에서 출간된『사라진 밀실을 찾아서』입니다. 이 책 뒤 쪽에 대담 주제인「문학의 토양을 이룬 반성의 정신』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첫 산문집으로는 1978년에 출간된 『작가의 작은 손』이후 두 번째이자 마지막 산문집이 되어버린 『사라진 밀실을 찾아서』는 선생님이 타계하신 후 2009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재 발간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문단의 말석에 있던 저는 선생님과 가끔씩 문단 모임이나 행사에서 뵙고 술자리를 갖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 참석한 날, 행사가 길어지자 저는 화장실을 찾아 담배를 물고 지루함을 연기로 내뿜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가 저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이 주간! 담배 끊어보게, 힘들겠지만 끊어야 되네...”
언제 오셨는지 선생님이 옆에 서서 간곡하게 말했습니다.
얼떨결에 대답은 그러겠다고 했지만 애연가였던 선생님이 갑자기 그러시는 이유를 그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언론을 통해서 선생님이 폐암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선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2008년 7월 31일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장례식에 올라가서 무릎 꿇고 말씀 드렸습니다.
“선생님! 당신이 원하시던 소설 한편을 더 쓰실 수 없다는 것이 원통할 뿐입니다! 부디 당신의 천국에 가셔서 원 없이 소설 쓰시면서 편히 쉬십시오. 전 선생님의 충고대로 담배 끊었습니다!”
2007년 음력 1월 2일,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한 달 후 첫 생신을 맞이한 날 전 담배를 끊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