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꽃 그녀
데이지 꽃 그녀
  • 정순임
  • 승인 2012.02.29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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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임(한문고전 번역가)

그녀와 내가 만난 것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무렵이었다. 그녀는 우리 시골집에서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곳에 살다가 우리 집 농사를 지으려고 가족들이 모두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왔다.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라 가구 수는 이십여 호가 되지 않았고, 아이들도 그닥 많지 않았으니 그녀와 내가 두 살의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늘 어울려 노는 친구가 되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사남매 중의 맏이여서 언니라고 부르며 날 따라다니는 걸 좋아했다. 언니가 하는 일은 뭐든 멋있어 보였고, 언니를 닮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다고, 언니가 내 우상이었다고, 마흔이 넘은 요즈음에 날마다 고백을 한다.

그렇게 한동네서 십여 년을 같이 살다가 그녀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주무시다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녀의 어머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이사를 갔고, 자연히 그녀와 나는 그 이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작년 어느 날 같은 동네에 사시다 부산 아들네로 가신 친척 아지매를 만나러 갔던 우리 어머니가 그녀의 어머니를 만났고, 그래서 전화번호를 알게 된 그녀가 연락을 해왔다. 그렇게 이십 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우린 날마다 카톡을 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주절주절 풀어놓고 산다. 그녀의 어머니를 만나고 온 우리 어머니께서 ‘가도 사는 게 힘들었나 보더라. 초혼에 실패하고 재혼해서 사는데, 어려운 일이 많았다고 하더라’ 하셨기에 그녀의 삶이 고단했으리라 짐작했는데 정작 그녀는 어리던 날과 똑같이 밝고 명랑하고 낙천적이었다.

아침이면 언제나 씩씩하게 인사를 보내왔고, 가끔 전화를 걸어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날 우리들의 추억을 이야기 해주곤 한다. “언니야, 내가 언니처럼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아마 학교에서 글쓰기 상을 많이 받아서 그렇게 생각했던가보다- 어느 날 내가 진짜 고민 많이 하고 시를 하나 써서 언니한테 보여줬는데, 언니가 뭐랬는줄 아냐. 글쎄 종이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줄을 쫙쫙 그으면서 너무나 근엄한 표정으로 ‘이건 아니지.’ 하는거야. 그래서 내가 또 다시 써서 보여줬더니 아주 덤덤하게 ‘아까보다 났네.’ 그랬다.” 하길래 웃으면서 “고케 자발없이 이야기 하더란 말이지?” 했더니 “근데도 언니는 너무 멋있었어.” 하고는 깔깔거린다.

그렇게 작년 한해, 추억 속의 그녀가 내 삶을 환하게 해주었고, 구정 여행 끝에 나는 그녀를 찾아 청주로 갔다. 버스 정류장에 마중을 나온 그녀와 늦은 점심을 먹고 한참 동안 수다를 떨면서 애써 전화나 카톡으로는 물어보지 않았던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를 만나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했는데, 총각인 줄 알았던 그 남자는 한달만에 아들 하나를 데리고 왔더란다. 그래도 이혼을 할 수가 없어 저도 아들을 하나 낳고 살았는데, 음주와 폭행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집을 나와 몇 년을 피해 다니다가 지금의 신랑을 만나 결혼하면서 서류 정리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지금 신랑은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는데, 그 아이들을 키우면서 하던 사업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괜찮다고 했다. 자기가 낳지는 않았지만 딸이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참 말썽도 많이 부리고 하지만 늘 그 아이 땜에 웃으며 산다고, 아들은 말을 잘 안해서 그렇지 속이 깊다고 은근히 자랑도 해가면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자꾸만 자꾸만 시간 속을 미끄러져 갔다.

그녀는 아주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가 먼저 고백한대로 일단 욕을 아주 잘했다. 그러나 욕을 아주 싫어하는 내게 그녀가 하는 욕은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듣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주 힘든 일을 겪었으면서도, 그것이 본인의 이야기인데도 아주 담담하고 하나도 질척거리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중간중간 섞여 나오는 욕들이 그녀의 말을 더 담백하게 만들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녀는 우리가 친구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자기는 국수가 싫다고 이야기 할 때도 그랬던 거 같다. 그녀의 집은 가난했고, 거의 매일 국수를 먹었는데 세 살 때 풀리지 않고 뭉쳐진 국수를 건져 먹다 목이 막혀 죽을 뻔 했다고 했다. 어린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던 그 이야기를 하던 그녀는 옆집에 누가 그런 일이 있었어 하는 듯했고, 그래서 나도 그다지 오래 그 이야기에 괴로워하지 않았던 거 같다. 그녀는 아주 어렵고 힘겨운 일을 아무렇지 않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자기가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녀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마치 들판을 가득 메운 데이지 꽃처럼 그녀의 미소는 너무도 향기로웠다. 그녀의 통통 튀는 에너지에 감동한 나머지 나는 그녀가 늘 나에게 하던 멘트를 날리고 말았다. “야, 이제는 니가 내 멘토다. 널 만나니 마구 힘이 솟네. 아무리 힘든 일도 잘 이겨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든다.” 했더니 “정말, 내가 언니한테 힘이 된다니 너무 좋아, 행복해. 언니야, 항상 긍정적이고 유쾌, 상쾌, 통쾌 해야지, 우울하면 난 모든 것에 지는 거잖아.” 하면서 베시시 웃는다.

작년 후반기 평생 처음 백수로 지내면서 스스로 많이도 상처내고 많이도 힘들어했던 내 고민이란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녀를 만나면서 알았다. 어떤 일을 머리로만 고민하고 그 고민에 고민을 더해 자신을 혹사하고 있던 내가 얼마나 못나고 어리석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자고 가라고 잡는 그녀를 두고 막차에 올라 바라보니 꼼짝도 않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몸으로 겪고, 몸으로 이겨내면서 어떤 바람이 불어도 언덕을 지키고 서서 꽃을 피워내는 데이지 꽃처럼 그녀는 내게 머리를 비우라고 그래야 비로소 삶이 움직이는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한동안 어쩔 수 없이 동거하던 우울과 마침내 이별 할 수 있었다. 아주 오래된 인연, 데이지 꽃 같은 그녀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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