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몰러 나간다!
제비 몰러 나간다!
  • 이위발
  • 승인 2012.03.21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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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인칼럼>이위발 시인·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어느 봄날, 툇마루에 누워 처마 위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일하러 나갔는지 부모님은 보이지 않고, 할 일없는 누렁이만 마당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저를 염탐하듯 힐끔거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꿈적도 하지 않고 처마 안쪽에 달린 밥사발만한 둥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속엔 다섯 마리의 제비 새끼가 노란 입을 최대한 벌린 채 어미제비만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유히 둥지 주변을 비행하던 어미제비의 입에는 잠자리 한 마리가 물려 있었습니다. 저의 최대 관심사는 어미제비가 다섯 마리 새끼에게 먹이를 골고루 나누어 주는지를 관찰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미제비는 첫 번 째 새끼에게 먹이를 물려주곤 날렵한 꽁무니를 흔들며 날아갔습니다. 다음 번 먹이는 분명히 두 번째 새끼에게 줄 것인 지 아니면 또다시 첫 번째 새끼에게 줄 것인 지가 궁금했습니다. 그 순간의 떨림과 흥분이 저를 달뜨게 만들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긴장을 해서인지 바지 안에선 방광이 요동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 찰나 제 눈 안에 포착된 것은 어미제비의 잘 빠진 꽁무니였습니다. 허공을 가르며 둥지 앞에서 먹이를 주려고 퍼덕이는 순간, 내심 저는 두 번째 새끼에게 주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기대를 무참히 박살낸 어미제비는 첫 번 째 새끼에게 보란 듯이 먹이를 물려주곤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얼마 후 어미제비가 저에게 남긴 배신감을 지울 수 없어 고민 끝에 어머님에게 털어 놓았습니다. 제 얘길 듣고 난 후 어머님은 장난삼아 그러셨는지는 몰라도 “나도 너한테 떡 하나 더 주고 싶은데...”하시면서 엉덩이를 다독이셨습니다. 그때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진달래처럼 붉게 타오릅니다.

지금은 제비가 환경요인으로 인해 지역마다 다르게 찾아오고 있지만 예전엔 음력 9월9일 중앙절에 강남으로 갔다가 3월3일 삼짇날에 돌아왔습니다. 이와 같이 수가 겹치는 날에 갔다가 수가 겹치는 날에 돌아오는 새라고 해서 조상들은 감각과 신경이 예민하고 총명한 영물로 여겨왔습니다. 사람들은 길조인 제비가 날아오면 곳간을 열어 주기도하고 마당에 물을 뿌려주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제비에게 나눔을 베푼 이유는 귀소본능을 가지고 있는 제비의 영리함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작년 이맘때 쯤 저희 집에도 제비가 날아들었습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된장 숙성실 지붕 밑에 둥지를 트기 시작하더니 얼마 되지 않아 제비집이 만들어졌습니다. 제비가 집에 둥지를 트는 것은 좋은 일이 생길 조짐이라고 옆집 할매가 이야길 하지 않아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요즈음엔 제비 개체수가 줄어들어 도시에선 아예 구경조차 하지 못하고 시골에서도 가끔씩 눈에 뜨일 정도입니다. 현재 제비가 천연기념물 후보로 올라가 있는 원인은 사람들이 뿌린 농약이 제비의 몸에 쌓여 알 껍질이 얇아지면서 부화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 제비가 제 집에 둥지를 틀었으니 얼마나 황홀했던지 아침 저녁으로 확인하고 관심을 쏟았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둥지에 앉아 있어야 할 제비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일주일을 기다려도 제비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제비가 사라진 원인을 알 수가 없어 고민 끝에 인터넷을 통해 그 이유를 찾아냈습니다. 제비는 민감하여 밤에 잠을 잘 때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참지를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원인 제공을 한 주범은 다름 아닌 은 저희 집 아이였습니다. 초콜릿 복근을 만든다고 밤만 되면 제비집 밑에서 줄넘기를 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아픔을 안고 떠나간 그 제비를 잊지 못한 채 돌아 올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제비가 공들여 만들었던 둥지도 떨어져나가 흔적만 남아있는 그곳에 받침대를 달아놓고 기다립니다.

오래전 ‘제비 몰러 나간다’는 광고 CF가 입소문을 통해 유행처럼 번지던 그 때가 생각납니다. 흥부전의 놀부가 부자가 된 흥부의 사연을 듣고 집에 돌아와서 자기 집 처마 밑에 제비집을 지어놓고 제비가 오기만을 빌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자 놀부가 직접 제비를 몰러 나간다는 대목입니다.

이렇듯 흥부전에 등장하는 제비를 상징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은혜를 갚는 제비고, 다른 하나는 구원을 받는 제비입니다. 은혜를 갚는 제비는 하늘의 심부름꾼을 뜻하고, 구원을 받는 제비는 지친 몸을 의지할 곳을 찾아다니는 힘없는 민중으로 상징되기도 합니다.

작년에 강남으로 간 제비들이 돌아 올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이번에 돌아 올 때는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민중들에게 구원을 받는 제비로 찾아와 따뜻하고 포근한 삶의 희망을 안겨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저는 제비 몰러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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