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차를 보고
변영주 감독, 미야베 마유키 원작. 이선균, 김민희 주연의 영화 火車. (火車 : 악행을 저지른 망자를 태워 지옥을 향해 달리는 일본 전설 속의 불수레. 한 번 올라탄 자는 두 번 다시 내릴 수 없다) 그곳에는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자본의 패악이 있었다.
남자....장문호.
강선영... 혹은 또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었던 여자 차경선.
그 남자 장문호는 동물 병원 원장이다. 그 동물 병원 앞에 너무도 아름다운 그녀가 가끔 와서 강아지를 구경한다. 어느 날 문호는 그녀에게 용기를 내 말을 건다. “저는 강문홉니다... 이름이?”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는 “강선영입니다.” 하고 대답한다.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시댁에 인사를 드리러 가던 길, 휴게소에서 문호가 커피를 사러 간 사이 선영은 사라져 버린다. 문호는 선영을 찾기 위해 형사였던, 뇌물 수수로 옷을 벗고 폐인처럼 살고 있던, 고종 사촌 형 종근에게 부탁한다. 그들이 선영을 찾기 시작하면서 진짜 영화는 시작된다.
그 여자의 진짜 이름은 차경선이다. 악덕 사채 업자에게 진 빚만 남기고 행방불명된 아버지와 사채업자에게 끌려가 술집 접대부로 돈을 갚으면서 마약에 쩔어 죽어버린 엄마를 가졌던 아이. 겨우 열 몇 살의 나이에 처참하게 죽은 엄마의 시신을 묻고 성당 고아원에서 생활해야 했던 아이. 스무 살에 경선의 사정을 다 아는 착하고 건실한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식당을 하며 살아가던 그녀에게 사채업자들이 찾아온다. 남편에게 시어머니에게까지 온갖 행패를 부리는 그들을 감당할 수 없었던 그녀는 모두가 잠든 한 밤에 거실에 앉아 "하느님, 제발 저를 불쌍하게 여기신다면 우리 아버지를 죽여주세요! 제발 우리 아버지를 죽여주세요!!"라고 절규한다.
결국 시어머니가 쓰러지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남편과 이혼을 하고 남편이 마련해준 돈 오백만원을 들고 마산에 있던 성당 언니에게 간다던 그녀는 터미널에서 사채업자들에게 잡혀 창녀로 살아야 했다.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아버지란 굴레 때문에 단 한 순간도 행복할 수 없었던 그녀는 누구의 아인지도 모르는 심장 기형인 아이를 낳았지만 그 아이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고, 마약으로 인한 정신적 혼란으로 병원에 입원해야 했으며, 그렇게 사는 동안 아무도 자신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지 않았던 세상 속에서 처절하게 혼자여야 했다.
그녀는 다른 인생을 꿈꾸었고, 삼십오 만원의 카드빚 연채로 수 천 만원의 빚을 지게 되고 술집을 전전하며 살고 있던 여자 강선영으로 살기로 결심하고 의도적으로 강선영에게 접근해 그녀를 살해한다. 피가 범벅이 된 채로 오열하며 뒹굴던 그여자의 광기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피 속에서 파닥이며 죽어가던 호랑나비 한 마리가 차경선이었을까? 강선영이었을까?
그렇게 강선영이 된 그 여자는 좋은 가정에서 보편적인 행복을 누리며 산 문호를 만났고 그 여자는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러나 은행에 근무하던 문호의 친구가 강선영이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을 알고 그녀에게 전화를 하면서 그녀는 사라졌고, 그녀를 찾아 떠났던 문호는 차경선인지 강선영인지 다른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그녀의 과거와 또 누군가가 되고 싶은 그녀의 미래를 만난다.
문호의 동물병원 고객 중 가족이 없이 여러 동물들을 키우고 살아가던 여자가 그녀의 다음 살인 대상임을 알아챈 문호가 그녀를 용산역에서 마주했을 때, 그 남자 문호는 그녀를 안고 오열한다. 너는 누구냐고...나를 사랑하기는 한거냐고...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고....가라고 절대로 잡히지 말라고 그녀를 놓고 문호가 돌아섰을 때 종근과 경찰들이 그녀를 찾아내고 옥상 난간까지 쫒겨간 그녀는 피 속에서 죽어가던 호랑나비처럼 파닥거리면서 허공을 날아 땅위에 구겨진다.
쓰세요. 제발 많이 쓰세요. 마구잡이로 카드를 발급해주고 더 많이 더 많이 돈을 쓰시라고 달콤한 혀를 날름거리던 은행들은 자기들의 악마적 본성을 감춘 채 능력도 없으면서 돈을 쓴 개인의 문제로 모른 책임을 전가하고, 카드대란은 선량했던 많은 사람들을 신용불량자로 낙인찍었으며, 사채업자의 아가리로 몸뚱이를 밀어 넣을 수밖에 없도록 했다. 자기를 지켜줄 가느다란 지푸라기 한 줄도 가지지 못한 수많은 그와 그녀들은 세상이, 자본의 횡포가 때리는 대로 폭력을 당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폭력 속에서 자신을 포기하고 또 누군가는 살기위해서 더 잔인한 폭력을 배운다.
너무도 끔찍한 영화, 내가 좋아하는 부류의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나와 함께 본 사람들과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가슴을 묵직하게 누르는 기분 나쁜 여운 때문에 힘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부류의 영화가 아니지만 그런 일들이 영화가 아닌 현실에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안전장치와 너무도 튼튼한 동아줄과 넘치도록 받았던 사랑들.....햇빛 속에서만 살아온 내 인생에 감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사회활동도 하고 기부도 하고 괜찮게 살았잖아 하는 것으로 위안 삼을 수도 없다. 무엇을 해야 하나. 여전히 지푸라기 하나도 없이 세상의 거친 물살에 맞서 자기를 버리거나 타인을 버릴 수밖에 없는 수많은 차경선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아져 버렸고 여전히 마음도 머리도 무겁다.
더 열심히 살아야한다. 누군가와 삶을 함께하기 위해서는 내 삶이 더 치열해야 하고 나눌 수 있는 더 많은 것들을 축적해야 한다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머리 속을 떠돌고 있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면 화차가 내게 준 화두들은 제자리를 찾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지푸라기 하나라도 건넬 수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아본다. 다만 지금은 그 피비린내에서 좀 벗어나고 싶다. 아직도 속이 울렁거려 먹지도 않은 무엇까지도 게워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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