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착한 그녀
참 착한 그녀
  • 정순임
  • 승인 2012.04.13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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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임 한문고전 번역가
그녀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그것도 아주 중증이라 걸음걸이는 상하좌우로 심하게 흔들리고 한마디 말을 만들어내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다. 내가 그녀를 안 것은 아마 한 삼십년쯤 전일 것이다. 그녀가 우리 동네 뇌성마비 아저씨에게 시집을 온 것이 그 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녀의 남편은 막내 아들이었지만 장애인이었기에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고, 시집을 온 그녀는 한동네에 사는 맏아들 내외가 있음에도 그 불편한 몸으로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밤톨 같은 아들 둘을 낳아 자기 손으로 다 길러냈고, 술을 좋아하는 남편에게 잔소리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으며 틈틈이 농사일도 거들었다.

그녀의 시어머니가 제일 먼저 세상을 떠났고 그 몇 년 후 남편도 떠났고 몇 해 전 시아버지마저 세상을 버리면서 그녀는 그 집을 지키며 혼자 살았다.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면서 공부를 하러 읍내로 내보냈고,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으니 그녀는 덩그러니 모두가 떠난 집에 혼자 남아 감당하기 버거운 농사일도 혼자서 해야만 했다. 이제 큰아이는 장가를 가서 딸 하나를 낳았다고 한다.
 
나도 외지에 나가 학교를 다닐 때라 방학 때 집에 와서 그녀가 우리 동네로 시집을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 아주 오랫동안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내가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갔던 어느 날, 시골이라 구멍가게 하나도 없던 동네인지라 부녀회에서 과자나 생필품을 팔았는데 그집에서 그 일을 맡아 할 때여서 그녀와 처음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몹시 불편한 걸음인데도 반기며 나오는 것이 느껴지던....한마디를 내뱉기가 힘든데도 아주 오래 안 사람처럼 정이 묻어나는 인사를 건네던....그녀가 참 인상적이었다. 아이들도 이뻐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과자를 골라주었다. 가게를 나오면서 작은아이가 “엄마, 아줌마는 참 힘들겠다. 몸이 불편한대도 저렇게 일을 해서......” 하기에 “그러게 그런데도 참 밝고 좋은 아줌마다 그치?” 했던 기억이 난다.
 
그저께 친정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엄마랑 손을 잡고 천방 길을 걸어 나오는데 저 멀리 사람이 앉아 있다. 엄마가 “상하네 엄마가 나물 뜯는갑다.” 하시더니 “상하네 엄마가 폐암이란다..불쌍해서 우짜노.” 하신다. 순간 내 심장이 덜커덩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세상에 신이 있다면 그런 짓은 하시면 안되는 것이다. 자기 의사와 아무런 상관도 없이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태어나 비장인보다 불편한 삶을 살아야 했지만 어려운 환경과 시집살이에도 인상 한 번 안 쓰고 열심히 살았으며 모든 사람에게 나쁜 감정 한 번 드러낸 적 없는 그녀에게
그것은 너무도 가혹한 처사인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하니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함박웃음으로 반긴다. 씬냉이(꼬들빼기)를 뜯어 한 웅큼 손에 쥐고 있다. 이런 저런 몇 마디 인사를 주고받고 걸어가다 어머니가 “어디 비닐봉지라도 있으면 주면 좋을텐데....”하시고는 가방을 뒤지신다. 엄마 가방에는 없어 나 먹으라고 엄마가 홍삼이며 환약을 싸주시면서 몇 겹으로 겹쳐 넣은 봉지가 생각나서 내 가방을 열어 그녀에게 건네주고 돌아섰다.

그녀보다 너무도 많은 잘못을 하고 살아서일까? 집에 돌아와서도 그녀 생각에 계속 마음이 무겁다. 그나마 살이 많이 빠지지 않고 평상시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던 외형적 모습에 희망이 남아 있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 정말로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고 살았던 참 착한 그녀가 덜 고통스럽고 조금이나마 더 행복하게 세상에 머물다 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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