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의 행복
만원의 행복
  • 이위발
  • 승인 2012.07.05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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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인칼럼>이위발(시인,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지난달 와룡면 가매기 마을에 사는 동생 집에 어머님을 모시고 식구들과 함께 딸기를 따러 간적이 있었습니다. 매년 유월이 되면 동생이 사는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마을 전체가 딸기 향으로 진동을 합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딸기 재배 방법을 물을 정도로 동생은 딸기 전문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배후엔 어머님의 간곡한 조언과 땀이 배어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서산의 노을이 소나무를 품은 채 지는 것이 아쉬운 듯 붉은 빛을 더욱더 뿜어내고 개구리 울음소리가 간간히 들릴 때입니다. 모두들 처마 밑 평상에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시작할 무렵입니다. 어머님이 갑자기 지갑을 꺼내시더니 만원을 저에게 주시면서 한마디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어린이날에 한 번도 못 챙겨줘서 미안했는데 이것으로 끝내자 알았지?”
순간적으로 어머님의 속마음을 헤아리기도 전에 저는 당황해서 말을 건넸습니다.
“아니, 어머니! 오늘은 어린이날도 아니고 벌써 내 나이가 오십 중반인데 무슨...”
웃으면서 만원을 받아든 두 손이 부끄러워 내색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엔 동생 그리고 집사람과 손자 손녀들에게도 똑같이 만원을 주었습니다. 어머님의 마음을 간직하기 위해 그 순간을 인증샷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잊고 지냈던 시골에서의 유년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그 시절 어린이날에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이나 선물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기억은 저에겐 하루하루가 어린이날 같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곧바로 뒤안으로 갔습니다. 그곳엔 어머님이 식구들 몰래 만들어 놓은 조그만 항아리 하나가 있었습니다. 어두컴컴한 그곳엔 제가 좋아하는 먹을 것들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누나도 몰랐고 동생도 몰랐던 그 항아리는 어머님이 만들어놓은 비밀스런 요술항아리였습니다. 지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로 떨림과 설레임이 교차합니다.
지금도 고향집터엔 큰 감나무 한그루가 저를 기다리며 서 있습니다. 어릴적 아버님은 고욤나무가 감나무로 변신하는 것을 저에게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그때 접을 부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던 저에겐 큰 충격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술 손으로 인해 고욤나무가 감나무로 변해가는 것을 경이로운 눈으로 쳐다보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어머님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만원을 어떻게 해야할지 행복한 고민 중에 몇 해 전에 돌아가신 아버님이 떠올랐습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늘 아버님의 책상에 놓여있던 한권의 책이 있었습니다. 몇 번인지 모를 정도로 필사를 하시던 그 책이었습니다. 그 책 속에 유독 밑줄 친 부분이 눈에 띠어 읽었던 글이 생각납니다.
“ 어느날 공자가 제자들과 길을 가다가 하루는 몹시 울며 슬퍼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공자는 '그대가 상을 당한 듯한데, 다른 사람보다 유달리 슬프게 곡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곡을 하던 사람은 자신이 우는 까닭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었을 때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집에 와보니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에 공자는 ‘무릇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 잘 날이 없고(樹欲靜而風不止),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자 하나 부모는 이미 안 계시니(子欲養而親不待)’ 효도 할 생각으로 찾아가도 뵈올 수 없는 것이 부모인 것입니다.”
감나무가 베어 지고 난 뒤의 뒤 늦은 존재감처럼 밑줄 친 부분이 뼈에 사무치도록 절절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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