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의 악순환 고리 단호히 끊을 때다
일본과의 악순환 고리 단호히 끊을 때다
  • 유경상
  • 승인 2012.08.1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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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유경상(경북인신문 발행인)

▲ 유경상 경북인신문 발행인
몇 달 전부터 강준만 교수의『미국사산책』(총12권)을 틈틈이 읽고 있다. 1권부터 3권까지는 미국이라는 대륙역사가 형성되기 이전의 유럽사가 주로 서술되어 있다. 유럽의 내부모순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신대륙행이 줄을 이었다. 국민학교 입학 이후부터 민주주의 국가라고 늘 배워왔던 미국은 동경과 선망의 나라였다. 그러나 스무 살 이후 반미 탈미적 관점을 학습한 이래 배격과 극복대상의 패권국가로 단정했었다. 길게 보면 이쪽과 저쪽의 관점을 우왕좌왕해 온 셈이다. 올해 초 조정래의『아리랑』(총12권)을 읽고 난 뒤 일본 또한 꼴도 보기 싫은 나라였을 뿐이다.

그런데 미국이나 일본이 지난 60여 년(길게는 100여 년) 동안 한국의 주도적 지배세력에게는 제1의 파트너였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아니 파트너라기 보다는 두 국가와의 비굴한 동맹 없이는 한국사회가 한순간도 존속하지 못한다는 믿음만이 강요되고 통용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우리는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존의 보수적(때론 극우적) 정부의 외교·국방노선이라는 궤도를 크게 이탈하지 않으면서도, 전혀 다른 평화적이면서도 더 진화(進化)된 외교국방의 길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 차이를 인식은 커녕 전혀 이해도 못한 체 지난 5년간 한반도의 운명을 거머쥐고 온 MB정부에겐 외교와 국방이라는 정책이 아예 전무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백번을 양보해 외교와 국방정책에서는 전두환, 노태우정부 때와 견줘 봐도 비교할 가치도 없는 집권무뢰배에 불과한 것 같다.

한국과 미국의 동맹관계는 60여 년을 넘는 역사를 지닌다. 그러나 군사분야의 지적재산권, 특허권을 보장하는 협정이 체결된 지는 채 20년이 되지 않는다. 1991년 11월에 체결된 특허비밀보호협정이다. 특허는 공개한다는 것이 원칙이지만, 군사적 발명과 기술은 비공개로 한다는 내용이다. 미국의 군사특허가 5천여 건인데 반해 한국은 4건밖에 안됐으니 미국군사비밀을 보호하는 불평등 협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로부터 또 20년이 지난 최근 한일 간의 정보보호협정 문제가 큰 논란의 중심에 섰었다. 일본의 핵심 군사특허를 보호하면서 한국의 군사력을 받아내겠다는 이중포석의 노림수를 어찌 몰랐다고 강변할 수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단순히 북한정보를 교류한다는 것은 사탕발림에 불과했다.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 인근을 어슬렁거리다가 한국군과 합동작전을 펼칠 수 있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현재의 MB정부는 전두환정부 시기부터 노태우, 김영삼 정부에 이르기까지의 외교와 군사노선 조차 계승하지 못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아가 한일 간의 역사청산을 통한 신뢰의 신질서 구축에 대해선 반걸음도 행동하지 못했으니 그냥 청맹과니 집권세력으로 비판받아도 싸다고 보여 질 뿐이다.

마침 지난 8월2일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안동을 방문해 ‘대일 5대 역사현안’에 관한 구상을 발표했다. △독도도발에 대한 비타협 △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에의 법적책임 요구 △전범기업 입찰제한 강화 △일본교과서 왜곡 방지 △ 약탈문화재 회수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항일의 독립정신이 면면이 서린 안동지역에서 한국과 일본의 역사현안 해결 구상을 밝힌 것은 향후 큰 의미를 지닐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80년대 이후 한국정부와 많은 한국인들은 일본과의 관계에서 미약하나마 선순환을 강화하면서도, 역사이래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노력해 온 지난 10년의 민주정부의 원칙은 ‘역사와 영토 및 우경화에 대한 해결’이었다. 일본이 근대이후 우리민족에게 저질렀던 천인공노할 범죄행위에 대한 반성과 배상이 없다면 여전히 분노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것만 강조해 온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의 국제관계가 확연이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 신뢰형성을 위해 노력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북관계와 한일관계는 상호의존하며 발전할 수밖에 없는 메카니즘으로 강고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남북관계의 개선이 한일관계 발전에 영향을 미치고, 북일관계의 개선이 한일관계를 더욱 발전시킨다는 정치적, 지정학적인 연관성을 더욱 깊이 이해해야 한다.

지금까지 일본과의 역사문제를 경시하거나 불철저하게 바라보는 정치지도자들의 행태가 일본의 도발을 유도했다고 보여 진다. 영토수호를 위해 노력하고, 역사범죄를 일으킨 가해자들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아내는데 무슨 보수니, 어떤 진보가 필요하단 말인가? 많은 지식인들이 우리 한반도가 처해있는 현실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엽에 못지않게 어려운 전략구도라고 지적하고 있다. 남북분단으로 60년이 넘게 적대해 왔고, 주변에 4개국이 정립돼 있다. 전략과 전망에 따라 해법이 다르게 도출될 수도 있다. 그럴수록 우리에게는 더 높은 차원에서 역사를 평가하고 현실을 인식하며 미래의 비전을 공유해야 할 필연적 과제가 있을 뿐이다. 분열된 역사가 통합되는 미래를 가로막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때일수록 한국사회 내부의 국민통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겨레와 국민의 통합을 위했던 백범 김구의 간절한 호소가 절절하게 다가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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