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마당] ① 하늘 향한 유년의 푸른 꿈 - 연鳶
[추억마당] ① 하늘 향한 유년의 푸른 꿈 - 연鳶
  • 김윤한
  • 승인 2009.01.24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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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연날리기

국민학교 적(지금은 초등학교지만) 겨울 방학이라 하면 생각나는 것은 한 해 동안의 성적표와 눈사람과 연 날리는 모습이 그려진 방학책이다.

사실 60년대와 70년대만 해도 먹고 사는 것이 무척 어려웠던 때인 만큼,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은 부잣집을 제외하고는 거의 접해보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나 추운 바람 쌩쌩 불어대는 길고 긴 겨울철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기껏해야 팽이치기를 하거나 얼음지치기 또는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거나 눈싸움을 하기도 했지만 상시적인 것은 못 되었다.

겨울은 바람이 많은 계절이다. 그런 계절의 특성상 겨울 내내 지겹지 않게 놀 수 있는 놀잇감은 단연 연날리기가 으뜸이었다. 길고 긴 추운 겨울은 연 날리기의 계절이다.

구하기 힘들었던 재료

그 당시에는 먹고 사는 것도 어려웠지만 여러 가지 재료도 많이 귀하던 시절이라 연을 만드는 재료도 구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요즈음은 흔한 한지도 그 때는 비싸고 귀한 지라 연을 한지로 만드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매달 한 장씩 뜯어내는 달력 종이라도 있으면 연 만들기에는 아주 좋은 재료를 확보한 셈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약간 두껍기는 하지만 돌가루 종이(시멘트를 돌가루라 불렀다)나 신문지라도 있으면 연날리기의 기본 재료는 이미 확보한 셈이다.

우리가 어릴 때 주로 만들던 연은 길게 꼬리를 늘어뜨린 가오리연이었다. 가끔씩 방패연을 만들기도 했지만 하늘 높이 꼬리를 흔들며 올라가는 가오리연의 멋진 모습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연의 모습을 지탱해 주는 것은 연살이다. 연살은 못 쓰는 비닐우산 살인 대나무를 뜯어내 쪼개 쓰는 것이 가장 좋았지만 그것조차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주로 사용한 연살은 싸리나무였다. 쌩쌩 부는 찬바람을 마다않고 연살을 구하기 위해 뒷산으로 싸리나무를 자르러 다녔다.

하늘 꿈꾸며 연 만들기

내 기억으로(다른 사람들도 대개가 그렇겠지만) 내게 처음 연을 만들어 주신 것은 아버지였다. 내가 국민학교에 들기 오래 전 어느 날인가 추운 겨울날 아버지는 만들기 재료를 준비해서 내게 가오리연을 만들어 주셨고 함께 연을 날렸다. 우리가 만든 연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직접 손끝으로 느끼던 그 감동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가오리연을 만들자면 우선은 종이를 네모지게 오린 다음 그 가운데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중심 살을 붙여야 한다. 살을 붙이기 위해서는 종이를 손가락 길이만큼 잘라서 군데군데 붙여 고정시켰다.

사실 그 때에는 돈을 만지기가 너무나 어려워 연을 만들기 위해 풀을 산다는 것도 어려웠다. 혹시 집에서 문을 바르기 위해 쑤어둔 풀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고 대개 쌀과 보리가 섞인 밥풀이 연을 붙이는 풀의 구실을 했다. 행여 쌀밥 알이 다 떨어지고 보리밥 알만 남았을 때 그 보리밥 알로 연을 붙여 만들면 잘 붙지 않아서 애를 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가오리연의 대각선 연살을 붙인 다음 대각선을 중심으로 좌우측으로 싸릿가지나 대나무가지를 잘라 휘어 붙여야 하는데 그것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빳빳한 살을 위어서 종이를 붙여 고정시키다보면 탄력 때문에 자주 튕겨 나가서 실패하기가 일쑤였다.

사실 대나무나 싸리나무 연살을 자르는 것도 큰 문제였다. 부엌칼이나 낫으로 조심조심 흔들며 나무를 쪼개 나가야지 조금만 잘못하면 균형이 안 맞아서 잘못 쪼개지기가 일쑤였다. 게다가 조금만 잘못하면 칼에 손을 베기가 일쑤여서 연 종이에 피가 묻기도.

연 꼬리를 붙이는 일은 연을 만드는 거의 마지막 부분에 속한다. 연 꼬리를 하나씩 붙여 나가는 일은 연 만들기 가운데서도 가장 쉬운 일이다. 그 다음에는 연을 띄울 수 있게 실을 아래위로 꿰어서 균형을 잡아서 실을 연결하면 연 날리기를 위한 준비는 끝난 셈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한 유일한 놀이

어릴 적 딱지치기를 비롯해서 자치기, 등 많은 놀이가 있지만 하늘을 배경으로 한 놀이는 거의 없다. 아마 연 날리기가 거의 유일한 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 만들어진 연을 가지고 우리는 대개 바람이 잘 부는 마을 뒷산 평평한 곳으로 올라가 연을 날렸다. 당시에는 연실을 감은 얼레는 구하기나 만들기도 힘들어 대개가 큰 깡통이나 병 같은 것에다 실을 감아서 얼레 대신에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연을 띄우기 위해서는 언덕 한쪽 끝에서 바람 부는 쪽으로 연을 든 채 힘차게 내달려야 한다. 그리고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륙하듯이 연줄이 풀리며 마침내 연이 꼬리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연날리기는 연을 하늘로 띄우는 그 자체도 재미있지만 여럿이서 누가 연을 멀리 날리느냐, 높이 날리느냐에 대한 시합을 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이다. 물론 서로가 멀리, 높이 날렸다고 우기기도 하지만 그런 것 자체도 또 다른 게임이요 추억이다.

연을 가지고 하는 시험 중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연싸움이다. 연싸움은 내 연과 상대편 연이 서로 줄을 엉키게 해서 줄이 끊어지는 연이 지게 되는 것인데, 그것은 그야 말로 연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게 달려 있어서 참으로 상대방과는 자존심이 걸린 싸움으로 치닫기 일쑤이다.

그러다 보니 연싸움에 이기기 위해서 무명실에다가 사기그릇을 곱게 빻은 가루를 풀에다 섞어 연줄에 먹이기도 하는데 그렇게 할라치면 상대방과의 연싸움에서 항상 이길 수 있었다.

연싸움이 없어진 것은 나일론실이 나오고부터였다. 그 전에는 무명실을 가지고 연을 날릴 때는 조금만 힘을 줘도 끊어지곤 했지만 나일론 실은 얼마나 질긴지 아무리 해도 끊어지지 않았다. 연싸움을 해서 끊어진 연이 양 어깨를 펄럭이며 하늘 저쪽으로 날아가고 그것이 한 해의 액땜이라고 치부하는 풍습은 나일론실이 나오고부터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연을 날리며 겨울 방학을 보냈다. 연을 날리며 올려다보던 창공의 빛깔은 아직까지 내 눈동자나 가슴 속 어딘가에 유년의 아득한 꿈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인생도 연날리기와 같아서

어른이 되고부터는 어릴 적 겨울방학 때처럼 그렇게 심심할 여가도 없고 해서 연날리기는 더 이상 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아마도 고등학교를 들 무렵부터는 연날리기를 더 이상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세상살이를 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 인생도 연날리기와 같다는 것이다. 연을 높이 날리기 위해서는, 세속 말로 내가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연줄을 급하게 팽팽하게 감아야 하지만 너무 급하게 연줄을 감다보면 연줄이 끊어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목적 달성에만 연연한 나머지 상황을 고려 않고 급하게 연줄을 당기다 보면 연은 허공에서 뺑뺑 돌다가 급전직하, 일순간에 땅바닥으로 처박히기도 한다. 그 낭패감과 허망함이란……

반면에 연줄을 너무 느슨하게 하다 보면 연줄을 아무리 멀리 풀어도 연은 도무지 하늘 높이 날아오르지를 않는다. 즉, 팽팽한 긴장감이 없는 삶은 결코 성공한 삶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인생도 연을 날릴 때처럼 연줄을 적절하게 풀며 느슨하게 풀기도 하면서 한평생의 삶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 너무 욕심을 내면 결국 연줄이 끊어지고 만다는 그 교훈을 생각하면서.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아이들에게도 장난감과 놀잇감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이제 아이들은 겨울방학이 되어도 더 이상 심심하지 않게 되었다.

김윤한
그리고 이농현상으로 모든 아이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이제 시골마을에서는 더 이상 연을 날리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겨울이면 높은 미루나무 꼭대기에 끊어진 연이 펄럭이며 걸려 있던 풍경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연 날리는 사람도 없어졌고 이제 연 만들기 기능 보유자들만이 지역 축제나 연날리기 계승 행사 때나 연을 날리는 정도이다. 어릴 적 하늘을 보며 저 하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꿈꾸며 연을 날리던 아이들의 꿈도 이제는 추억 속에 남아서 더 이상 숨쉬지 않는 박제로만 남아 있는 셈이다.

[김윤한은 현재 안동시청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시인이자 수필가 등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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